[인터뷰] 진해성 “4년 만에 ‘어머님들 女心’ 싹 훔쳤죠”

입력 2018-11-15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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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열정으로 똘똘 뭉친 가수 진해성. 더 많은 이들에게 트로트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 대학가 주변에서 2년간 트로트 버스킹을 벌이기도 했다. 1990년생인 그는 다음 달 디너쇼까지 연다. 사진제공|KDH엔터테인먼트

■ 유도선수 포기하고 트로트계 新 황태자로 뜬 진해성

‘멋진 여자’ ‘연정’ ‘사랑 반 눈물 반’…
노래교실·각종 가요축제 인기몰이
가수 반대 심했던 아버지 이젠 팬
12월18일 데뷔 첫 디너쇼 기대하세요


‘2:8 비율의 가르마로 반듯하게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 뚜렷한 이목구비, 정감 넘치는 사투리. 맛깔스럽게 뽑아내는 트로트 구절….’

어머니 팬들이 열광할 만하다. 가수 진해성(28·본명 이상성)은 요즘 어딜 가도 “트로트 황태자” 대접을 받는다. 트로트 선배 가수들은 “정통 트로트를 잇는 후배가 나왔다”고 반기고, 팬들은 남진의 젊은 모습이 연상된다며 “진해성 왕자님” “트로트 아로마”라는 애칭을 써가며 환호하고 있다.

진해성이 20대답지 않은 음색과 정통 트로트 창법을 구사하며 트로트 장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2012년 진해성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가요 축제나 행사에 나가 노래한 지 4년 만에 이름을 제대로 알렸다. 다른 트로트 가수들이 보낸 무명 시간보다 굉장히 빠른 편에 속한다. 트로트 가수가 여느 대중가요와 달리 길게는 10년 이상 무명생활을 거치고, 더 시간을 쏟는다고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단 한 곡이라도 자신의 히트곡을 가지기 어려울뿐더러 진입장벽 역시 높아 중심으로 올라서기도 어렵다.

그런 점에서 진해성의 행보는 파격에 가깝다. 4년간의 무명시절을 보내고 2016년 본격적으로 가요계에 뛰어든 후 ‘멋진 여자’, ‘연정’, ‘사랑 반 눈물 반’이라는 곡으로 노래 교실과 가요제, 행사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여기에 그는 다음 달 데뷔 후 처음으로 ‘디너쇼’까지 앞두고 있다. 12월18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컨벤션센터 그랜드볼륨에서 ‘추억의 가요 송년 디너쇼’라는 타이틀로 무대에 오른다. 디너쇼는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한 우물을 판 선배가수들이 주로 열고 히트곡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어머님들이 예뻐해 준 게 발판이 된 것 같다. 솔직히 트로트 가수 중에는 가장 빠르게 디너쇼를 여는 것 같다.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처음 제의를 받고 겁도 나고 부담스러웠다. 디너쇼라는 이름에서부터 무게감이 느껴지니까. 트로트 가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다. 내 인생 최고의 무대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가수 진해성. 사진제공|KDH엔터테인먼트


초고속 승진에 가까운 진해성의 성장 뒤에는 ‘피나는’ 노력이 숨어 있다. 모든 노력이 결실을 맺는 건 아니지만 그는 집안의 심한 반대는 물론 어릴 적부터 해왔던 유도까지 포기하며 트로트를 선택했다.

그가 트로트라는 “신세계”에 빠진 건 여덟 살 때다. 어린 나이에 신명나는 멜로디에 이끌려 동요보다 트로트를 입에 달고 살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축제가 열렸다. 다른 친구들은 댄스곡이나 가요를 불렀는데 전 트로트를 불렀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청난 박수와 함성을 받았다. 그때 결정했다. 트로트 가수가 되어야겠다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 진학까지 생각했던 유도도 포기했다. 아버지의 반대가 엄청나게 심했다. 그렇다고 트로트를 포기하면 인생을 포기하는 것만 같았다.”

결국은 아버지의 뜻을 꺾고 트로트 가수가 되기 위해 실용음악과로 대학에 진학했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했다. “젊은 애가 무슨 트로트냐”라는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그럴수록 친구들보다 아버지의 비슷한 연배 어르신들이 주로 모이는 곳만 찾아가며 좋아하던 트로트를 불렀다.

그러다 진해성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트로트의 매력을 알려주고 싶다는 뜻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학가 주변이나 관광지 등에서 ‘트로트 버스킹’을 해야겠다는 아이디어도 트로트를 향한 ‘못 말리는’ 열정에서 나왔다.

“트로트 마니아들은 거의 지방에 사는 분들이 많다. 2014∼2015년쯤 대학가 중심으로 버스킹 열풍이 일어났다. 기타를 치며 트로트를 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거다 싶었다. 처음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점차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놀러온 젊은 친구들까지 좋아해주더라. 새벽에 집에서 나가 밤이 새도록 기타 치며 노래만 불렀다. 손가락 피부가 찢어져 피가 흐르는 줄도 몰랐다. 지금도 그 기타에 핏자국이 남아있는데 영광의 흔적이다.”

가수 진해성. 사진제공|KDH엔터테인먼트


당시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은 이제 그의 팬이 됐고, 진해성이 나온다는 방송이나 무대가 있으면 플랜카드에 “진해성”이라는 이름과 파란색 풍선을 흔들고 응원한다. 그리고 “절대 트로트는 안 된다”며 반대했던 아버지도 ‘1호 팬’이 되어 든든하게 지원해준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지금 이 자리까지 운으로 올라왔다면 디너쇼를 열 자격도 없을 것이다. 열심히 했다는 이야기보다는 보람된 일을 많이 했다고 말하고 싶다. 디너쇼를 성공시켜 내년에는 개인 콘서트도 열어보고 싶다. 침체된 정통 트로트도 다시 붐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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