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 박성훈 “김은숙vs박지은? 두 분이 절 낳고 키웠죠” (종합)[DA:인터뷰]

입력 2024-05-04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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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같던 무명의 시절을 지나 알록달록해진 유명의 전성기를 맞는다. 말간 얼굴에서 이따금 드러나는 강렬한 인상. 선악이 공존하는 전천후라는 수식어가 어울린다. 배우 박성훈의 이야기다.

2019년 3월 종영된 KBS 2TV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극본 김사경 연출 홍석구)에서 세상 착한 치과의사 장고래 역을 맡아 ‘엄마들의 고래’로 불리던 박성훈은 지난해 화제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극본 김은숙 연출 안길호)에서 파격적인 캐릭터로 주목받았다. 과거 학교 폭력 가해자이자 성인이 되어서도 ‘갑질’이 일상인 ‘인성 쓰레기’ 전재준 역으로 다시 한번 인생 캐릭터를 갈아치웠다. 여기에 지난달 tvN 역대 드라마 시청률 1위로 막을 내린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극본 박지은 연출 장영우 김희원) 속 윤은성 캐릭터는 현재 박성훈 필모그래피의 정점이다. 시쳇말로 최근 ‘화제작’, ‘대박작’으로 꼽히는 작품에는 박성훈 이름 석 자가 엔딩 크레딧에 담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 대중에게 박성훈은 자신 이름보다 가장 크게 주목받은 ‘더 글로리’ 속 전재준으로 불린다.

“연이어 악역을 맡은 터라 전재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배우라는 직업은 신체를 악기처럼 사용해야 해요. 악역이라도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분위기와 감정이 다르죠. 배우로서 그런 점을 강조했지만,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연이어 악역을 연기하니 비슷한 느낌을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재준 이야기가 계속 나오지 않을까 해요. 사실 제 이름이 흔하기도 하고요. 포털사이트에서 제 이름을 검색하면 동명인이 많이 나와요. (웃음) 데뷔 초기에는 예명을 써볼까도 생각했는데, 당시 예명 쓰는 게 유행이라 저는 본명으로 성공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이름 잃은 배우’요? 조정석 형도 처음에는 이름보다 ‘납득이’로 불렸어요. 연기로, 캐릭터로 제 이름을 찾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천천히 전재준에서 박성훈으로 대중에게 각인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작품 속 캐릭터와 달리 박성훈은 밝다. 어두운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오히려 코미디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툭툭 농담도 던질 정도로 개구쟁이다. 이런 그가 악역을 맡아 연거푸 작품에서 죽음을 맞는다. 작품 속 ‘단명 전문 배우’로 유명한 김갑수가 목표가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심지어 촬영 중이거나 공개를 앞둔 작품에서도 죽을 수도 있는 설정이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죽는 설정이 많아 회사에서도 ‘단명 전문 배우’로 소문나는 게 아니냐고 하세요. (웃음) 작품에서 계속 죽다 보니 ‘죽는 맛’이 있어요. 어감은 이상한데 어떻게 죽느냐도 중요한 것 같아요. (웃음) ‘눈물의 여왕’ 속 윤은성은 죽어야 했어요. 백현우(김수현 분), 홍해인(김지원 분)을 위해서요. 윤은성이 살아서 감옥에 갔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홍해인을 차지하려고 했을 거예요. 윤은성은 홍해인을 갖지 못한다면 죽여서라도 갖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완벽한 해피엔딩을 위해서라도 윤은성이 죽는 게 맞아요. 죽는 과정도 깔끔했어요. ‘더 글로리’에서 전재준 사망 장면을 찍을 때 힘들었거든요. 당시 갯벌 흙을 가져와 촬영했는데 며칠간 귀 같은 곳에서 흙이 나오더라고요. 윤은성 사망 장면을 찍을 땐 춥긴 했어도 후폭풍은 없었던 것 같아요. (웃음)”

박성훈은 운이 좋은 배우다. 드라마 업계에서 스타 작가로 통하는 김은숙 작가와 박지은 작가를 연거푸 만났다. 웬만한 톱스타도 두 작가를 동시에 만나는 경우는 없다. 다작하는 조연 배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기에 박성훈에게 두 작가는 특별하다. 그리고 어렵다. 두 작가 스타일을 너무 잘 알기에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지점이 그렇다.

“제 인생 캐릭터를 꼽자면 크게 세 인물입니다. 장고래, 전재준, 윤은성입니다. 그렇기에 각 캐릭터를 써준 작가님들을 비교하기는 어려워요.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같은 물음이라고 생각해요. 혹자는 그러더라고요. ‘박성훈을 김은숙이 낳았고, 박지은이 키웠다’고요. (웃음) 장고래요? 음, 정자나 수정체쯤이지 않을까요. (박장대소) 진짜 어려워요. 작가님마다 스타일이 있으세요. 그런데도 분명한 공통점은 애드리브를 허하지 않으세요. 작품 속 모든 제스처와 대사가 다 대본에 있어요. 촬영 중간 피드백도 ‘대본대로 찍어 달라’는 말 외에는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으세요. 두 작가님이 다시 부르면 언제든 해야죠. 다시 악역을 연기하게 되더라도요. (웃음)”

박성훈은 소처럼 일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2’, 영화 ‘열대야’ 촬영에 한창이다. 여기에 연극 공연도 앞둔다.



“사실 취미가 없어요. 운동이야 체력 관리를 위해서 하는 거고, 평소 사우나를 좋아했는데 요즘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 보니 이마저도 못해요. 혼자 집에서 ‘불멍’ 영상을 보는 게 다예요. 그래서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아요. 촬영장 특유의 현장감이 있어요. 연기하면서 얻는 성취감이랄까요. 악역을 연기할 때는 대리만족도 느껴요.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이다 보니 ‘화나는 감정’, ‘분노하는 감정’을 연기할 때 담아 분출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이 연기에 묻어나와 작품을 보는 사람들도 강한 인상을 받는 것 같고요. 악역을 연기하다 보니 급한 일이 있을 때 급히 가야 하는데 사람들이 선뜻 다가오지 못하는 이점도 있고요. (웃음) 쉬지 않고 일하고 싶어요. 늘 해왔던 것처럼 꾸준하고 싶어요.”

2008년 영화 ‘쌍화점’으로 데뷔한 박성훈은 올해 매체 연기 16년 차다.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연극 무대로 시작해 이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작품에도 줄줄이 출연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나이도 어느새 40대에 접어들었다. 박성훈에게 ‘불혹’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을까.

“나이가 드는 게 싫지 않아요. 오히려 좋아요. 전에는 저 스스로 애송이 같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주름도 자연스럽게 생기면서 얼굴에 나이가 드러나니 풋내가 사라지는 기분이더라고요. 재미 삼아 본 사주에서도 40대에 굉장히 잘된다고 해요. (웃음) 더 즐겁지 않은가요?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박성훈이 나오면 보게 된다’는 말이요. 어떤 작품인지 궁금한데 제가 나오면 본다는 말이 나오면 흡족할 것 같아요. ‘믿보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홍세영 동아닷컴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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