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정재광 “배우 안 하려고 할 때 만난 ‘버티고’, 내겐 천사 같은 존재”

입력 2019-10-25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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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인터뷰] 정재광 “배우 안 하려고 할 때 만난 ‘버티고’, 내겐 천사 같은 존재”

배우 정재광은 큰 태블릿을 챙겨왔다. 왜 가져왔는지 물어보니 “인터뷰가 처음이라 긴장했다”라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써온 것들이 있다고 답했다. 긴장이 될 만도 하다. 사실, 그는 이번 ‘버티고’가 상업영화로는 첫 주연이다. 베테랑 배우들도 가장 떨린다는 언론시사회 등을 처음 경험했고 인터뷰도 생경하다. 그럼에도 그는 출연한 영화 제목처럼 잘 ‘버티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재광이 출연한 ‘버티고’는 현기증 나는 일상,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서영’(천우희)이 창 밖의 로프공과 마주하게 되는 아찔한 고공 감성 무비다. 극 중에서 그가 맡은 역할을 로프공 ‘관우’ 역이다. ‘서영’(천우희 분)이 근무하는 랜드마크 타워의 외벽청소업체 직원인 관우는 창문 너머에 있는 서영을 바라보다 그의 아픔에 공감하며 위로가 되는 인물이다. 정재광은 ‘버티고’ 시나리오와 관우 캐릭터를 보며 ‘천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가끔 단 하나의 문장 때문에 위로를 받을 때가 있잖아요. 이 영화가 한 편이 그런 것 같아요. 영화에 나오는 고층 빌딩이 사회의 틀 같고 서영은 그 안에서 버티는 사람이고 창문 밖에 있는 관우는 그 틀 안에서 벗어난 인물 같아 보였죠. 서영에게 점점 손을 내미는 관우의 모습을 보며 마치 서영을 구원할 천사 같아 보였어요. 너무 힘들게 버티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는 것 같았죠. 저도 이 영화를 하며 치유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참여를 하게 된 것 같아요.”


관우의 대사는 그리 많지 않다. 건물 밖 외줄에 의지한 채 있는 로프공 역할이라 정재광은 눈빛과 표정으로 연기를 많이 해야 했다. 그는 “원래 말하는 걸 좋아하는데 대사가 없으니 좀 답답했다”라며 “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라고 웃으며 말했다.

“관우가 왜 말이 없는지도 많이 생각했어요. 그는 삶의 의지가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도 우울해지면 말을 안 하게 되잖아요. 관우도 마찬가지였을 거라 생각해요. 소중한 친누나가 안 좋게 세상을 떠났잖아요. 그런 아픔을 갖고 있는 인물이 로프공이 되려고 했던 것은 자칫 잘못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고 누나를 위해서라도 더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재광은 ‘버티고’를 위해 로프 인명구조 자격증을 취득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는 “소방대원들이 고층 건물에서 하는 인명구조 훈련을 2주간 받았다. (그분들이)하시는 것을 보니 허투루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과정 자체가 인물에 빠져드는 포인트가 돼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라고 말했다.

“로프를 타려면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나중에 문제가 될까봐 소방훈련을 받기로 했어요. 4층에서 내려오는 게 첫 번째 훈련이었는데 살면서 제일 무서웠던 순간이었어요.(웃음) 첫날 훈련을 받고 근육이 뭉치고 줄이 몸에 쓸려서 되게 아프더라고요.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하하. 훈련을 받으면서 소방대원 분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신지 알게 됐어요.”


이 외에도 ‘버티고’에는 그의 재능이 숨겨져 있다. 평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정재광은 직접 그린 일러스트로 제작한 텀블러를 영화 제작진들에게 선물했고 이 그림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배포된 ‘버티고’ 엽서에도 사용됐다. 그리고 극 중에서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하는 분장 역시 정재광이 직접 페이스 페인팅을 한 것이다.

“영화 첫 미팅 때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 말을 잘 못하니 미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캐릭터를 이해하고자 했어요. 그러던 중 직접 얼굴에 그림을 그려줄 수 있겠냐고 하셔서 그리게 됐어요. 그림은 제게 ‘탈출구’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요.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명상하는 것처럼 그림을 그려요. 언젠간 기회가 된다면 전시회도 꼭 해보고 싶어요.”

상업영화로는 ‘버티고’로 첫 주연의 자리를 꿰찬 정재광은 “용기를 얻었다”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버티고’를 만나기 전, 배우를 그만 할까도 생각했다. OCN ‘구해줘’(2017)이후 스스로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그는 “회사 생활을 하며 행복해하며 만족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이제라도 다른 일을 찾는 게 나은 게 아닐지 생각해보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다 포기하려고 하던 중 만난 게 ‘버티고’예요. 다시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 같았고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어떻게 보면 ‘버티고’가 제게는 ‘관우’예요. 의지가 없던 제게 손 내밀어주는 천사였죠. 여전히 집채 만 한 파도와 같은 의심이 제 마음 속에 있지만 그 파도를 잘 견뎌내려고 해요.”

정재광의 차기작은 유하 감독의 ‘파이프라인’이다. 대한민국 수십미터 지하 땅굴에 숨겨진 검은 다이아몬드 ‘기름’을 훔쳐 인생 역전을 꿈꾸는 도유범들이 목숨 걸고 펼치는 범죄 오락 영화로 4년간 프리 프로덕션을 거친 유하 감독의 야심작이다. 극 중에서 정재광은 서인국을 쫓는 ‘상구’역을 맡으며 극의 긴장감을 더할 예정이다.

“열심히 뛰면서 촬영하고 있어요. 최근에 ‘파이프라인’ 팀과 ‘조커’를 함께 봤는데 ‘호아킨 피닉스’를 보며 ‘우리 배우 그만 해야겠다’라고 웃으며 말했어요.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지. 큰 한숨이 쉬어지면서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이 촬영이 마치면 독립영화를 한 편 촬영해요. 스포츠 영화인데 잘 준비해서 좋은 연기 보여드려야죠.”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엘줄라이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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