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m공기소총주부사수,여갑순‘베이징행목전침묵하던심장이쿵!쾅!’

입력 2008-06-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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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m공기소총은 ‘잔인한 승부’다. 표적지의 10점은 점 하나. 정중앙을 조준했다가 1cm가 빠지면 6점이 된다. 40발(400점)의 본선이후 8명이 펼치는 결선에서는 점 하나를 10등분, 10.0점부터 10.9점으로 나눈다. 육안으로는 식별조차 불가능하다. 전자표적장치로 0.1점을 가른다. 5월13일 창원종합사격장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여자공기소총대표 최종6차선발전은 ‘잔인함’의 극치였다. 정경숙(17·구정고)은 0.1점 차로 탈락하며 울었고, 4차선발전까지 1위를 달리던 여갑순(34·대구은행)은 5,6차전에서 부진, 눈물을 흘렸다. 남편 김세호(34·한체대) 코치와 함께 사격장을 빠져나간 여갑순은 “또 다시 올림픽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무엇이 여갑순을 다시 잔인한 사선위에 서게 하는가. 2008한화회장배사격대회가 열린 창원에서 여갑순을 만났다. ○ 자책의 눈물 단순히 아쉬움 때문에 흘린 눈물은 아니었다. 여갑순은 “20년 사격인생에서 결선에서 이렇게 부진했던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내가 이것밖에 안되는 선수인가….’ 자신에게 부끄러웠다. 여갑순은 1차선발전에서 399점, 2차 397점, 3차 393점, 4차 398점(이상 400점 만점)을 쐈다. 하지만 5,6차전에서는 본선 395점을 기록한 뒤 결선(109점 만점)에서는 100.7점(5차)과 98.8점(6차)에 그쳤다. 여갑순의 평소 결선기록은 102점을 상회한다. 여갑순은 “잘하면 105점까지도 쏜다”면서 “무엇에 홀린 것 같았다”고 했다. 4차선발전 이후 올림픽이 눈에 보이자 기대감에 심장이 뛰었다. 한국사격에 첫 금메달을 안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결선 때보다 더 떨렸다”고 표현할 정도. 여갑순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선발전 때 소수점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5차선발전에서 부진하자 그 때의 기억도 살아났다. 기대감이라는 잡념이 부담감으로 이름만 바꿔 피어올랐다. 총알은 빗나갔다. ○ 1992년 7월26일처럼 금메달리스트들은 흔히 목표의식을 상실한다고 한다. “왜 그토록 (올림픽을) 갈망하느냐?”고 물었다. 여갑순은 “단지 그곳의 분위기를 다시 한 번만 느껴보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서울체고 3학년이던 여갑순은 마지막 발을 쏘고도 자신이 1등임을 몰랐다. 심지어 “결선 10발에서 한발을 쏠 때마다 장내아나운서가 불러주는 내 점수조차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세상에는 표적과 나,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소총 한 자루뿐. 무아(無我)의 경지였다. 마지막 발을 쏘고 사선을 나서는 순간, 한국 기자 한 명이 여갑순을 붙잡았다. 그 때까지도 자기 등수를 모른 채 멍했다. 도핑검사실 앞. 황의청 코치가 여갑순을 끌어안았다. “잘했어.”, “네?”, “금메달이라고!” 500여 통의 팬레터에 일일이 답장을 할 정도로 순수했던 소녀는 일순간 국민여고생이 됐다. 아직도 7월26일이 되면 친정에서 전화가 온다. “오늘이 그날이야.” 여갑순은 “내 생일과 결혼기념일, 심지어 아들생일보다도 더 소중한 날”이라고 했다. 극도의 긴장과 흥분이 있는 무대에서 다시 한 번 자기를 시험해 보고 싶은 욕심은 금메달리스트만의 특권이었다. ○ 슈퍼우먼 하지만 사격에 전념하기에 9세 짜리 아들을 둔 주부사수는 너무 바쁘다. 인터뷰 중간에도 아들 민수의 영어학원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여갑순은 “대회가 없을 때면 가사 일까지 다 챙긴다”고 했다. 민수를 가졌을 때도 5개월까지는 총을 잡았다. 다행인 것은 사랑의 총알 날린 사격코치 남편과 사격태교(?)를 거친 아들이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한다는 것. 민수의 취미는 엄마의 메달과 상패들을 보물 상자에 넣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다. 대회전에는 “엄마, 이번에도 잘 해”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중국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엄마의 베이징행을 원치 않았다. 남편은 심리와 기술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 다시 무심(無心)으로 기록이 상위권이기 때문에 남편도 선수생활을 만류하지 않는다. 여갑순은 “외국에는 4·50대 선수도 많다”고 했다. 사격은 여갑순에게 직업이면서 일상이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도 사격을 했고, 총을 쏘다가 아들 숙제를 봐주기도 했다. 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총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총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완벽한 선수도 없고, 완벽한 경기도 없어요. 400점 만점을 쐈다고 해도 40발이 모두 완벽한 행위에서 이루어 진 것은 아니거든요.” 여갑순은 “사격의 기술은 단순하지만 20년 동안에도 다 익히지 못했다”고 했다. “다시 처음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할 겁니다.” 여갑순은 채우기 위해 비웠다. 그리고 사격의 기초부터 다시 새긴다. ‘실탄을 넣는다. 어깨 견착. 왼팔로 총을 받치고, 볼을 밀착시킨다. 몸에 힘을 빼고, 조준선을 보고 방아쇠를 당긴다. 총탄이 어디로 나갔는지 추적하고 예언한 것에 따라 다음 발을 준비한다. 40발을 (한꺼번에) 잘 쏠 생각은 하지 않는다. 40발은 40번의 경기다. 단 한 발에 최선을 다한다. 지나간 발은 잊는다. 다른 선수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내 호흡에 총이 정지했을 때 격발할 뿐.’ 여갑순은 16년 전의 무심(無心)을 기억하며 다시 총을 잡았다. 창원=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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