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서재덕. 스포츠동아DB
하지만 선수 입장에선 힘들다. 자신의 주 포지션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게 모든 선수의 목표인데, 팀의 취약 포지션을 메우기 위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게 달가울 리 없다. 특히 서재덕은 외국인 포지션에 따라 위치가 바뀌었다. 지난 시즌엔 다우디(우간다)가 아포짓 스파이커여서 서재덕은 주로 왼쪽을 커버했다. 이번 시즌 영입한 타이스(네덜란드)는 아웃사이드 히터(레프트)다. 이에 따라 서재덕은 오른쪽으로 옮겼다. 오른쪽은 자신의 주 포지션이자 국가대표팀에서도 맡았다.
권영민 한국전력 감독은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좌우 모두를 준비하는 게 힘들다는 것은 권 감독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서재덕이) 컨디션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아포짓에만 전념토록 했다”고 밝혔다.
서재덕이 올 시즌 첫 경기에서 에이스의 본능을 되찾았다. 그는 23일 안산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2~2023 V리그’ 남자부 1라운드 OK금융그룹과 경기에서 서브 3점, 블로킹 2점 포함 13점으로 펄펄 날았다. 타이스(15점) 임성진(11점)과 함께 좌우 균형을 맞추며 상대를 압도했다. 팀은 세트스코어 3-0 완승을 거뒀다. 권 감독의 데뷔전이기도 해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승리였다. 권 감독은 수훈 선수로 서재덕을 꼽으며 “공격과 리시브는 물론이고 파이팅까지 에이스 역할을 잘 해줬다”고 칭찬했다.
서재덕은 아포짓 스파이커이면서도 리시브에 적극 가담했다. 타이스의 수비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서재덕은 “오늘은 무조건 이기려는 마음이 컸다”면서 “아직 만족한 수준까지 감을 못 잡았지만, 시즌을 치르면서 그런 감이 잡히지 않을까 싶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서재덕은 후배 임성진도 챙겼다. 그는 “성진이가 국가대표팀 갔다 와서 한 단계가 아니라 두 단계는 올라온 것 같다. 순간순간 풀어나가는 판단력도 그렇고, 우리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성진이 덕분에 나도 자연스럽게 아포짓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2011~2012시즌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로 한국전력에 입단한 서재덕은 ‘원 클럽맨’이다. 2차례의 자유계약(FA) 자격을 얻고도 팀을 떠나지 않았다. 한국전력에서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국전력은 지난 시즌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 우리카드를 꺾었지만 PO에서 KB손해보험에 졌다. 서재덕의 목표는 PO를 넘어 챔피언결정전 진출이다. 이제 첫 걸음을 뗐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