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규. 스포츠동아DB
그는 예비 엔트리다. 등번호도 없고, 벤치에도 앉지 못한다. 오직 만약을 대비한 포석이다. 월드컵은 부상과 질병 등으로 선수가 뛰지 못할 경우 조별리그 첫 경기 24시간 전까지 교체가 가능하다.
물론 오현규가 한국축구의 첫 예비 엔트리는 아니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 때도 있었다. 당시 엔트리는 22명이었는데, 2명을 추가해 동행했다. 고려대 재학 중이던 서정원과 서울시청 소속의 송영록이 그 주인공이다.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부상당했던 조민국이 합류하면서 엔트리에 변화가 생긴 가운데 대표팀은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예비 멤버를 데려갔다.
1998년 프랑스 대회에서는 ‘22+1’을 구성했다. 엔트리 22명에는 수문장이 김병지, 서동명 2명뿐이었는데, 골키퍼 김봉수가 예비 멤버로 추가로 함께 했다.
2002년 한·일 대회부터 엔트리가 23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한국은 ‘23+4’를 구성했다. 엔트리 말고도 정조국, 최성국, 여효진, 염동균 등 4명을 서귀포 훈련캠프에 합류시켰다. 이들은 예비 엔트리 개념보다는 훈련파트너의 의미가 더 컸다.
이들은 최강의 멤버들과 함께 최고 수준의 파워프로그램이나 전술 훈련을 소화하면서 개인적인 성장도 이뤘다. 여기엔 거스 히딩크 대표팀 감독의 배려가 담겨 있다. 한국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들에게 미리 기회를 준 것이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히딩크 감독이 따로 불러 개인 전술을 가르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후 대회에선 예비 엔트리가 동행하지 않았다. 당시 분위기는 선수 간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아울러 최종 엔트리만으로 팀워크를 단단히 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었다.
오현규. 사진제공 | 대한축구협회
올해 카타르 대회 엔트리는 26명으로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유럽 리그 등이 시즌을 치르는 11월에 열려 선수보호 차원에서 국제축구연맹(FIFA)이 내린 결정이다.
한국이 ‘26+1’을 구성한 것은 손흥민(토트넘)의 부상과 관련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안와골절 수술을 받은 손흥민(토트넘)은 물론이고 혹시 못 뛰는 선수가 생기면 오현규의 이름을 올리겠다는 계산이다.
오현규는 버리기 아까운 카드다. 올 시즌 36경기에서 13골을 넣었고, 강등권 수원 삼성을 구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투지 넘친 공격력이 벤투 감독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예비 엔트리에만 머문다고 해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꿈의 무대’ 월드컵을 준비했다는 자체가 큰 경험이다. 중국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서정원 감독(청두 룽청)은 예전 스포츠동아와 인터뷰에서 “월드컵 동행은 개인의 성장에 엄청난 도움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오현규도 마찬가지다. 이번 예비 엔트리는 성장의 발판이 되기에 충분하다. 좋은 경험 쌓고 오기를 바란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