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에서 알라이얀까지…기적을 불러온 김영권, “아주 작은 가능성을 우린 믿었다” [사커피플]

입력 2022-12-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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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 사진 | 주현희 기자 teth1147@donga.com

승점 3이 무조건 필요했다. 그런데 상황이 꼬였다. 전반 5분 만에 먼저 실점하면서 더욱 어렵게 됐다. 분위기가 식었다. 그러나 태극전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힘겹게 4년을 달려온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버티고 이겨내야 했다.

간절함이 닿아서였을까. 전반 27분 이강인(21·마요르카)이 왼쪽 코너에서 차 올린 볼이 포르투갈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등을 맞고 흐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세트피스 공격에 가담한 베테랑 중앙수비수 김영권(32·울산 현대)이 미끄러지듯 달려들어 골네트를 가르며 균형을 맞췄다.

사기가 오른 한국은 해냈다. 후반 추가시간 주장 손흥민(30·토트넘)의 킬 패스를 받은 황희찬(26·울버햄턴)이 역전 결승골을 터트려 2-1 승리와 함께 승점 4(1승1무1패)를 만들어 12년만의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2022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H조 최종전(3차전)이 벌어진 3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 일어난 기적이다.

‘미라클 사나이’ 김영권은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했다. 14일 스포츠동아와 만난 그는 “그 자리, 그 위치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운도 좋았으나, 축구는 예측불허의 게임이다. 항상 생각대로 이뤄지진 않는다. 딱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그날 우리가 그랬다”며 환하게 웃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런데 이날의 골이 김영권에게 첫 ‘월드컵 축포’는 아니다. 4년 전 러시아에서도 거의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당시 디펜딩 챔피언 독일과 조별리그 3차전이었다. 이미 2패를 안은 한국은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라도 이겨야 했다. 0-0으로 팽팽한 후반 추가시간 3분, 손흥민의 낮은 코너킥이 굴절돼 흐른 것을 김영권이 골로 연결했다. 독일을 귀가시킨 ‘카잔의 기적’이 그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수비수의 월드컵 2회 연속 득점이다. 두 골 모두 대단한 가치가 있지만, 김영권은 포르투갈전 골에 더 높은 점수를 줬다. “굳이 따지면 올해가 더 값졌다. 결국 목표를 이뤘으니까. 만약 이기고 16강에 가지 못했다면 ‘카잔의 기적’을 더 오래 떠올릴 것같긴 하다.”

그런데 선수들은 ‘좋은 느낌’을 일찌감치 가졌단다. 그는 “(숙소에서 경기장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우리만 이기면 16강에 간다는 생각이 있었다. 가나-우루과이전에 꽤 복잡한 ‘경우의 수’가 걸렸어도 이기면 된다 싶었다”며 “아무리 포르투갈이 힘을 뺐어도 전력상 우위다. 물론 열세를 뒤집는 것도 축구다. 그 작은 가능성을 우린 확신했다”고 털어놓았다.

공교롭게도 김영권의 골은 자신에게도 엄청난 선물을 줬다. 브라질과 16강전(1-4 패)에서 그는 센추리클럽(A매치 100회 출전)에 가입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53·포르투갈)이 이끄는 월드컵대표팀에 뽑혀 카타르로 향할 때부터 기록을 알고 있었다. 내색은 못했으나 약간(?) 기대는 했단다. 최상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다.

김영권. 사진 | 주현희 기자 teth1147@donga.com


월드컵 3회 연속 출전이었다. 그런데 매 대회 감정은 달랐다. 김영권은 “우린 체계적 시스템으로 4년을 함께 했다. 과거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부담보단 자신감과 즐거움이 더 컸다. 압박을 덜 받으며 준비한, 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하자 결과가 따랐다. 벤투 감독님 역시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하셨다”고 떠올렸다.

이제 미래를 고민할 시기다. 캐나다, 미국, 멕시코 등 북중미 3개국이 공동 개최할 4년 뒤 월드컵은 장담할 수 없다. 단, 지금은 태극마크를 반납할 시기가 아니다. “당장 내년 말에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이 열린다. 조별리그 통과가 아닌, 우승을 향해 달릴 시간이다가온다. 매 순간 모든 걸 쏟아 붓겠다. 언젠가 내 경쟁력이 밀린다는 걸 느낄 때 후회 없이 웃으며 떠날 것 같다”고 김영권은 말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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