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듯 새로운 매력…‘익산’에 반하다 [김재범 기자의 투얼로지]

입력 2022-12-23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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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면 구룡마을의 대나무숲. 한강 이남 최대 대나무 군락지로 왕대와 오죽(검은 대나무), 솜대가 주류를 이룬다. 다른 곳보다 가는 대나무들이 바람이 일렁이는 숲의 전경과 그 과정에서 들리는 나무 부딪치는 소리와 댓잎 바람소리가 일품이다. 익산|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연말 떠나기 좋은 여행지

5만㎡ 규모 ‘구룡마을 대나무 숲’ 장관
바람따라 흘러가는 아름다운 선율 힐링
원불교·천주교 성지도 이색 관광 코스
미륵사지·왕궁리유적 등도 발길 잇달아
전에 가보지 못했던 곳을 찾아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건 우리가 여행을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반대로 전혀 낯설지 않은 친숙한 곳을 또 방문할 때도 있다. 예전 추억을 되살리며 그때 즐거움을 다시 느끼기 기대하는 것이다. 2022년의 끝자락에 찾아간 이번 익산여행이 그랬다. 꽤 여러 번 찾았던 고장, 하지만 다양한 역사유적과 종교 성지, 그리고 지역 특유의 여유로움을 조금 헛헛해지는 연말 정서에 다시 느끼고 싶었다.


●바람에 굽이치는 대숲의 노래

‘어, 이런 곳에 볼만한 게 있나’ 싶을 정도로 숲 초입까지는 평범한 농촌 풍경이다. 하지만 작은 표지판 뒤로 수줍게 시작하는 숲속 오솔길로 접어들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하늘로 우뚝 솟은 대나무들로 빼곡한 숲 속은 한없이 고요하다. 간간히 눈에 띠는 표지판을 따라 완만하게 굽어지는 길 외에는 별다른 시설도 없는데 그 담백함이 또 마음을 끈다.

미륵산 자락 금마면 구룡마을 대나무 숲은 5만m² 규모로 한강 이남 최대의 대나무 군락지이다. 드라마 ‘추노’를 여기서 찍었다. 이곳 대나무들은 대체로 다른 곳보다 굵지 않아 바람이 불면 숲 전체가 느린 속도로 출렁인다. 그 때 대나무들끼리 퉁 퉁 부딪치는데, 그 소리와 댓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어우러지면서 한 편의 음악처럼 다가온다. 겨울철 정취도 기막힌데 여름에는 반딧불이의 군무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고 한다.


●이리로 불리던 그 시절 자취

익산시 중앙동 익산근대역사관은 과거 ‘이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 고장의 1900년대 이후 발자취를 사료와 유적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역사관 건물은 독립운동가 삼산 김병수 선생이 1922년 개원한 삼산의원 건물이다. 아치형 포치 등 근대 건축 양식이 외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내부에는 한때 은행 건물로도 쓰였던 역사를 말해주듯 거대한 낡은 금고가 벽면에 자리해 눈길을 끈다.

여산면 가람문학관은 익산 출신의 시조시인이자 국문학자 가람 이병기 선생을 기리기 위해 2017년 개관했다. 문학관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인 가람 선생의 생가 수우재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가람의 시조 음미하기(가람실)’에서는 대표작을 영상과 낭송 및 도폭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왕궁리유적의 오층석탑. 초록이 짙었던 여름과 봄날의 느낌과는 다른 겨울 저녁하늘을 이고 선 석탑의 모습이 색다른 감흥을 준다. 익산|김재범 기자oldfield@donga.com



●마음에 깊은 여운 남긴 두 성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원광대학교와 마주한 곳에 원불교 익산성지 중앙총부가 있다.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이곳에서 18년간 교화를 펴다가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종교시설이지만 일반에 관내 대부분을 개방해 자유롭게 볼 수 있다. 입구 안내실에서 신청하면 해설투어도 가능하다. 대부분이 일제강점기 주택인 적산가옥들인데 33만578m² 부지에 비교적 원형이 잘 보전되어 있다. 원불교의 대표 성지임에도 별다른 꾸밈없는 소박한 모습들이 종교와 상관없이 찾는 이에게 가볍지 않은 여운을 전해준다.

망성면 화산에는 나바위성당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성인이 처음 전도한 한국 천주교의 성지다. 1906년 첫 건축 이후 증축을 거듭하면서 초기 한옥 양식에 서구식 고딕양식이 더해졌다. 그 결과 정면은 3층 종탑과 아치형 출입구의 고딕양식이고, 지붕과 벽면은 전통 목조한옥인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왕궁리와 미륵사지의 새로운 감흥

미륵사지와 석탑, 그리고 왕궁리유적은 국내 최대 백제유적으로 익산 여행객에는 필수방문코스이다. 익산을 찾을 때마다 당연스레 늘 두 곳을 방문했다. 하지만 2022년이 저물어가는 12월의 방문길은 햇살 화사했던 봄날이나 여름에 찾아간 이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너른 벌판 위에 시나브로 어두워지는 겨울 하늘을 이고 홀연히 서 있는 오층석탑의 왕궁리유적, 살짝 살얼음이 낀 호수에 희미한 반영을 드리운 미륵사지 석탑. 모두 여행의 들뜸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고즈넉한 회상을 여행객의 마음에 불러 일으켰다. 그 새로운 감흥이 참 좋았다.

익산|김재범 기자oldfiel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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