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에도 모차르트가 있습니까” 연극 아마데우스 [양형모의 일일공프로젝트 8]

입력 2023-03-06 09: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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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욕망을 주셨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죠”
김재범, 살리에리 완벽히 표현한 ‘겸손’의 연기
전성우, 당대의 아이돌 같은 모차르트 완성
클래식 음악사의 대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질투한 안토니오 살리에리에 관한 아이디어는 꽤 역사가 깊습니다.

러시아 근대문학의 창시자이자 국민시인으로 불린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의 짧은 희곡(제목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이 원조로 알려져 있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명시를 남긴 바로 그 푸시킨입니다.

푸시킨의 희곡을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가 1898년 오페라로 작곡했지요. 오스트리아 사람인 모차르트 얘기에 러시아 예술가들이 매료되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사실 모차르트의 독살설은 모차르트 사망 직후부터 빈 음악계에 떠돌던 풍문이라고 합니다. 설상가상 훗날 살리에리가 죽기 전 요양소에 있을 때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일파만파 퍼져나가면서 호사가들과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하튼 이 ‘모차르트를 죽인 사람은 살리에리’라는 설정은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1984)’로 인해 전 세계인의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되어버렸고, 지금까지도 살리에리가 모차르트 살인범이라 굳게 믿는 사람들이 많지요.

이 영화의 원작은 영국의 극작가 피터 셰퍼의 희곡 ‘아마데우스’입니다. 저 유명한 ‘에쿠우스’의 작가, 그 피터 셰퍼 맞습니다. ‘아마데우스’는 1979년에 발표했지요.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연극 ‘아마데우스’를 보았습니다. 영화 속 명대사, 명장면이 곳곳에 등장하여 더욱 흥미롭게 볼 수 있는데요. “신이시여, 욕망을 갖게 하셨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죠!”라는 살리에리의 대사는 매우 유명하죠.


‘천재에 대한 비천재의 질투’라는 전형적인 구도에서 살짝 벗어나서 본다면 좀 더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살리에리는 신이 자신이 아닌 모차르트를 왜 선택했는지 정말 몰랐을까’라는 질문도 그 중 하나가 되겠네요.

제 개인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연극 ‘아마데우스’의 주인공은 셋.

살리에리와 모차르트 그리고 보기에 따라선 ‘의문의 1패’인 신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이 극을 지지하는 가장 굳건한 기둥인 모차르트의 음악이되겠지요.

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음악들이 누군가에게는 두려움과 좌절, 질투의 ‘대못’이 되었다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연극 ‘아마데우스’를 보면서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당신의 인생에도 모차르트가 있습니까” 혹은
“당신도 누군가의 모차르트일 수 있습니다” 라는.

앞서 이야기를 하다 만 감이 있습니다만, 사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죽음과 별 관련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심지어 모차르트의 라이벌도 아니었지요.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1750년에 태어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보다 여섯 살 연상입니다. 1791년 35세의 나이로 죽은 모차르트와 달리 살리에리는 75세까지 장수하고 죽었지요.

사회적 위치도 달랐습니다. 모차르트가 대중의 스타 연예인 이미지라면 살리에리는 국립음악원의 원장님 같은 느낌이었으니까요. 그는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당대의 음악 거장 중 한 명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모차르트 사후 그의 아들에게 음악을 가르친 선생이기도 했습니다. 살리에리가 진짜 모차르트를 죽인 인물이라면 모차르트의 미망인인 콘스탄체 베버가 아들의 교육을 그에게 맡겼을 리가 없겠지요. 콘스탄체에 대해서도 역사적 오해가 많습니다만, 요건 다음 기회에.

여하튼 살리에리야말로 ‘예수님을 죽인 인물’로 사도신경에까지 등장하는 유대의 제5대 로마총독 빌라도만큼이나 할 말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제가 연극 ‘아마데우스’를 본 날의 살리에리는 김재범 배우였습니다. 김재범 배우의 연기를 보면 한결같이 ‘겸손’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묻어버리는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누구 못지않게 강한 개성을 지닌 배우이지만 종종 (특정한 의미에서) 무색, 무취의 연기를 보여주곤 합니다. 그 결과 그가 연기한 캐릭터에서는 ‘김재범’의 색깔과 냄새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오롯이 캐릭터만 피어오르지요.

그래서 저는 김재범 배우가 출연한 작품을 떠올리면 ‘김재범’이 아니라 그가 연기한 ‘캐릭터’가 100미터쯤 앞서 달려 나오곤 합니다.

여담입니다만 김재범 배우는 무대 위에서의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저는 김재범 배우가 무대 위에서 보여주었던 독특한 개그감에 탄복한 나머지 한동안 그를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라 제 멋대로 상상했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그 탓에 실제로 만났을 때는 꽤 당황하고 말았지요. 김재범 배우는 의외로 참 조용한 사람이었거든요. 농담을 피하지는 않지만, 차분하고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솔직히 인터뷰 초반에 살짝 고전했음을 고백합니다.

전성우 배우의 ‘모차르트’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당대의 아이돌 스타 같은 모차르트를 보여주었거든요. 영화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톰 헐스가 연기했죠)를 참고했겠지만 결코 추종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후반에 무너져가는 모차르트가 그러했죠.

임춘길 배우가 있어 극이 더욱 든든했습니다. 덕분에 살리에리와 모차르트가 펄펄 날아다닐 수 있었지요. 마치 든든한 골키퍼 같은 느낌입니다.

“어이, 후방은 맡겨두라고. 다들 나가서 관객들에게 멋진 슛을 보여주란 말이야”하며 공격수들을 격려하는 큰형님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장면은 마지막 레퀴엠을 작곡하는 모차르트와 그를 방문한 살리에르입니다.
돈에 쪼들려 악보를 너무 많이 그린 나머지 손에 힘이 빠져 펜을 쥐기조차 힘들어진 모차르트의 간청에 살리에리는 대신 악보를 그려주기로 합니다.

한번 구술이 시작되자 음악에 도취되어 음표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모차르트. “조금 천천히”를 외치며 받아 적는 살리에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화해갑니다.

증오, 질투와 함께 예술가로서의 동질감, 예술의 성취, 걸작에의 동참.
이 장면은 그야말로 인생의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수미상관 구성에 따라 노년의 살리에리가 극을 닫습니다.
살리에리가 죽음을 앞두고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요.

“신은 원망의 대상도 아니지만, 이해의 대상도 아니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 PAGE1

※ 일일공프로젝트는 ‘일주일에 한 편은 공연을 보자’는 대국민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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