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 다그나츠우, 풀코스 2번 만에 깜짝 우승 ‘2시간11분31초’

입력 2023-10-22 17: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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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 안터나여후 다그나츠우. 경주 | 송은석·박형기 동아일보 기자 silverstone@donga.com

2023 경주국제마라톤 l 9000여 건각들 ‘경주의 가을’을 달렸다

24세 에티오피아 출신…장거리·하프 주종목
“35km 지점서 우승 확신…한국대회 큰 인기”
신현수, 2번 수술 극복하고 국내 엘리트 정상
‘경주의 여왕’ 이숙정, 경주마라톤 5회 월계관
스물네 살, 신예의 상큼한 반란.

21일 경북 경주시에서 열린 2023 경주국제마라톤에서 깜짝 이변이 일어났다. 에티오피아의 ‘다크호스’ 이스마 안터나여후 다그나츠우가 그 주인공이다.

다그나츠우는 이번 경주국제마라톤 42.195km 풀코스 레이스 국제 남자부에서 2시간11분31초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 마라톤 풀코스를 처음 뛴 ‘초보 마라토너’가 두 번째 도전이었던 이번 대회에서 쟁쟁한 스타들을 제치고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선 것이다.


●두 번째 풀코스 도전에 우승한 다그나츠우

고교시절까지 축구선수를 꿈꾸던 다그나츠우는 선생님의 권유로 학교 대표로 나간 육상 대회에서 입상한 것을 계기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 5000m, 1만m, 하프 마라톤 선수로 뛴 다그나츠우는 ‘더 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올해 4월 밀라노 마라톤에서 풀코스에 처음 도전해 2시간11분55초로 10위에 올랐다.

그동안 2022 바르셀로나 하프마라톤 4위(59분17초) 2021 리스본 하프마라톤 7위(59분48초) 2019 이스탄불 하프마라톤 1위(1시간32초) 등이 그의 주요 성적표였다.

경기가 열리기 전까지 다그나츠우의 우승을 점치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 올 경주마라톤 초청선수 중 기록 순위로 18명 중 13위에 그쳤기 때문이다. 모두의 관심은 지난해 우승자인 케냐의 에번스 킵코에치 코리르(36¤개인최고기록 2시간06분35초), 2시간06분31초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다니엘 킵코스게이 켐보이(36), 에반스 킵치르치르 삼부(30¤케냐) 등 케냐 선수들에게 쏠렸다.

2023 경주국제마라톤’이 국내외 정상급 마라토너들이 참가한 가운데 막을 내렸다. 이날 9000여 명의 참가자들이 가을단풍처럼 화려한 복장으로 힘차게 출발선을 달리고 있다. 경주 | 송은석·박형기 동아일보 기자 silverstone@donga.com


그러나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 경기 중반까지 케냐와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선두권을 형성하며 경기를 이끌었다. 40km 구간 이후 코리르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기권했고 선두그룹이 4명까지 줄자 다그나츠우가 치고 나와 결승선까지 골인했다.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허리 한번 숙이지 않을 만큼 체력이 충분한 모습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월계관을 쓴 다그나츠우는 “기회만 되면 늘 한국에 오고 싶었다. 에티오피아가 한국 전쟁 참전국이라 아직도 에티오피아에 와 고마움을 표하는 한국 분들이 많아 에티오피아에서도 한국의 인식이 좋다. 함께 훈련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한국 대회가 인기가 많다. 잘 뛰고 싶었는데 두 번째 만에 우승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쁘다”고 소감을 말했다.

깜짝 우승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다그나츠우는 “몸 상태가 정말 좋았다. 출발할 땐 좀 쌀쌀했는데 날이 점점 따뜻해졌고 35km 지나면서 우승을 확신했다”며 “평소 훈련하는 곳과 경주의 날씨도 비슷해서 편했다”고 했다.



●신현수 2번의 수술 끝에 국내부 정상

국내 엘리트 부문 남자부에선 2시간21분01초를 기록한 신현수(32·한국전력공사)가, 여자부에선 이숙정(32·K-water)이 2시간36분1초로 각각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2011년 오른발 복사뼈 수술과 2022년 왼발 복사뼈 수술 등 2차례 수술과 재활 등 ‘병마와의 마라톤’에서 승리 후 복귀한 신현수는 “30km 지점까지 함께 뛰어주기로 했던 페이스메이커가 컨디션 난조로 12km만 뛰고 말았다. 남은 거리를 혼자 달리다보니 33km 지점에서 한계가 왔다”며 “그 순간 다음 달 출산 예정인 아들이 떠올랐다.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자’는 생각으로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일주일에 250km 이상을 달린 신현수는 “케냐 선수들이 일주일에 220km가량을 달린다고 해서 나는 그 이상을 뛰었다”며 “양쪽 발 모두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아플 발도 없다. 앞으로 훈련량을 더 끌어올릴 것”이라고 했다.

여자부 우승을 거머쥔 이숙정은 2015, 2017, 2018, 2022년에 이어 대회 통산 5번째 우승을 일군 ‘경주의 여왕’이다. 이숙정은 “‘경주마라톤 5회 우승’이란 목표가 부담이 됐지만 좋은 날씨 덕분에 이번에도 우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첨성대 코스를 달리는 마라토너들. 경주 | 송은석·박형기 동아일보 기자 silverstone@donga.com



●마스터스 김용범·김하나 씨 우승

마스터스 남자부 풀코스 정상엔 2시간33분10초의 기록으로 맨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버스운전사’ 김용범 씨(46)가 차지했다. 2011년 10월 마라톤을 처음 시작한 김 씨가 국제마라톤 대회에서 마스터스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 씨는 “마라톤을 시작한 이후로 부상을 당했던 2개월을 빼고 11년간 한번도 새벽 달리기를 쉰 적이 없다”며 “나처럼 엘리트 선수가 아닌 일반인도 성실하게 노력하면 목표한 일을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걸 자녀들에게 보여주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마스터스 여자부에서는 김하나 씨(37)가 직전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2시간59분59초)보다 2분가량 빠른 2시간57분47초를 기록해 국내 엘리트 여자부에서도 6위에 올랐다.

그는 “대회 도중 배가 아파오면서 기록이 생각보다 좋지 않게 나왔다”면서도 “일본 홋카이도 마라톤(8월), 공주백제마라톤(9월) 등 최근 서브3에 연달아 실패해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는데 오늘 배가 아팠던 것치고는 잘 뛴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엄마와 아들이 함께 가을 마라톤 축제를 즐기며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경주 | 송은석·박형기 동아일보 기자 silverstone@donga.com



●앞당긴 출발시간·최적의 날씨

이날 대회는 출발 시간이 오전 8시로 예년보다 1시간 빨라졌다. 출발 때 기온은 10도, 종반부인 10시 이후에도 체감온도가 12도로 시원해 마라톤에 최적인 날씨였다.

이번 대회 중계도 화제를 모았다. 생중계를 맡은 채널A는 대회 일부 구간을 삼성전화 휴대전화 갤럭시 S23로 찍어 중계했다. 휴대전화 세로 화면 세 개를 나란히 띄워 국제 엘리트, 국내 엘리트 남자·여자 선두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했다. 또 S-슬로우모션 기능으로 급수대에서 물병을 낚아채는 선수들의 순간을 포착하기도 했다. 기아는 친환경 전기차 EV9을 중계차로 지원했다.

한편 이날 주낙영 경주시장, 육현표 육상연맹 회장, 김석기 국회의원(경주), 이철우 경주시의회 의장, 여준기 경주시체육회장, 동아일보 천광암 논설주간은 출발지에서 풀코스와 하프코스, 10km, 5km 참가자 9000여명을 격려했다. 육현표 회장은 5km를 직접 뛰었다. 경주경찰서는 교통순찰차와 등 장비 25대를 비롯해 경찰 및 공무원 인력 600명을 배치해 대회의 안전 개최를 도왔다.

권재민 기자 jmart220@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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