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욕망하고 있습니까” 울산문수오페라단의 70분짜리 창작 오페라 ‘3과 1/2 A’ [일일공프로젝트]

입력 2024-01-14 1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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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희한하다. 3과 1/2 A.

“검은 것은 숫자요, 하얀 것은 종이”급의 수학치인 문과 출신에게는 가혹할 수준의 제목이다.

게다가 창작 오페라란다. 오페라의 제목이라 하면 자고로 ‘아이다’, ‘리골레토’, ‘나비부인’, ‘라 트라비아타’ 쯤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수학자가 어느날 갑자기 목청이 트여 테너 경연대회에 나가는 내용일까.

창작 오페라 ‘3과 1/2 A’가 서울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1월 11, 12일 이틀간 막을 올렸다. 요즘 연극뿐만 아니라 뮤지컬에 오페라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는 작가 신성우가 대본과 가사를 쓰고, 양상진이 작곡을, 김관이 연출을 맡았다. 2006년 창단해 울산 지역 공연예술 활성화와 대중화를 위해 애써 온 울산문수오페라단(단장 양은서)의 야심작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이기도 하다.

국립극장 하늘극장은 원형극장처럼 생긴 곳으로 마당놀이에 적합할 듯싶은 공연장이다. 아담한 사이즈의 창작 오페라를 올리기에는 꽤 괜찮은 선택.
이제 오페라 ‘3과 1/2 A’ 얘기를 해보자.

이 작품은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아니라 작가의 말이니 믿어도 될 것이다. 신성우 작가는 “욕망은 지금 내게 없는 것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했다. 한 인간이 욕망을 갖는다는 것은 현재의 자신에게 결핍을 느낀다는 것이고, 그것은 지금까지의 자기를 버리고 다른 누군가가 되려는 자기 부정을 내포한다. 인간은 이러한 자기부정을 통해 더 나은 존재로 발전할 수 있지만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한 부정은 채워지지 않는 갈증만 일으킬 수도 있다. 역시 작가의 말이다.


최대한, 정성을 다해 이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해 보자면 이런 것이다.

‘3과 1/2 A’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빨래 물기짜듯 비틀어 놓았다. 일단 신데렐라가 아닌, 두 명의 언니(기억하겠지만 의붓언니다)가 주인공이다. 훤칠한 외모를 지닌 왕자의 신하가 번쩍번쩍 조명을 받아 빛나는 유리구두 한짝을 들고 나타나 “발이 구두에 맞는 아가씨가 왕자님과 결혼을 하게 될 것이요”하고 우렁차게 노래한다. 여기서 비밀 하나가 풀린다. 이 작품의 제목 ‘3과 1/2 A’는 이 유리구두의 사이즈였다.

두 언니가 욕망의 눈을 반짝이지만 걸림돌은 이들의 ‘너~무나 큰 발’. 이들은 발이 큰 여자들인 것이다.
“발이 큰 님들은 아웃”하는 왕자의 신하에게 신데렐라의 의붓엄마는 돈을 찔러주며 하루의 시간을 벌고, 두 딸에게 “꿈을 버리지 말라”,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압박한다. 결론은 발을 자르라는 것.
언니 메조 소프라노와 동생 소프라노는 솔로로, 듀엣으로 “발을 잘라야 해”, “발을 잘라야 해”를 관객들의 귀에 딱지가 앉도록 되풀이해 소리치지만(물론 아리아다) 실패하고 만다. 결국 신데렐라의 발에 유리구두가 들어가는 순간 ‘참혹한’ 대반전이 벌어지고 만다.

문과생으로서는 ‘발을 잘라야 해’가 더 좋은 제목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오페라 ‘3과 1/2 A’는 신성우 작가 특유의 비틀기, 유머, 킬링 포인트와 AI 알고리즘마저 당황할 반전이 음표를 타고 흐른 수작이다. 연극, 뮤지컬적인 분위기도 곳곳에서 느껴진다.

메조 소프라노 강연희(언니)와 소프라노 김미실(동생)은 노래 못지않게 연기도 좋았다. 욕망을 가졌고, 욕망을 요구 당하고, 욕망을 욕망하는 여인의 모습과 심리를 노래와 연기로 잘 표현했다. 욕망에 불타는 의붓엄마 서미선(메조 소프라노)은 ‘밤의 여왕’과 같은 카리스마를 보여주었고, 신하를 맡은 바리톤 이병웅의 노래는 시원하게 공연장을 울렸다.


신데렐라(강혜림)와 왕자(서보권)를 성악가가 아닌 발레리나에게 맡긴 것도 흥미로운 연출. 70분짜리 길지 않은 작품이지만 소품들에도 눈이 간다. 예를 들어 신데렐라가 신고 있는 신발은 이 작품에서 욕망을 상징하는 붉은 색이다.

공연 전 “스마트폰은 반드시 꺼달라”가 아닌, “아무 때나 박수 치셔도 된다”고 안내했던, 활기찬 지휘자 황성진이 이끈 오케스트라도 분발해 주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창작 오페라는 처음”이라는 어느 관객의 평처럼 재미있고, 독특했던 오페라. “오페라가 갖고 있는 역사적 진중함보다는 오페라 장르를 대하는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고, 영화를 보러 가는 것처럼 편안한 감상을 전달하고 싶었다”던 작곡가 양상진의 의도는 적중한 듯싶다.

늦은 밤, 샤워를 하면서 발을 정성껏 씻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옥상훈

※ 일일공프로젝트는 ‘일주일에 한 편은 공연을 보자’는 대국민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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