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베이스볼]명품공끝?“숨겨서던져라…이치로도울었다”

입력 2009-09-03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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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초-종속차·투구회전수로알아본‘공끝의실체’
봉중근 ‘스니키 패스트볼’ 위력 커… 초종속차·회전 공끝과 연관 적어
투구폼·제구력 등 따라 구위 결정… 릴리스포인트 앞에 두면 공끝 살아


야구인들은 투수의 투구를 놓고 “공끝이 좋다”, “공이 무겁다”는 말을 자주 한다. 구속과는 별개로 공이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는 시점에 힘있게 살아 들어오느냐, 아니면 밋밋하게 들어오느냐의 차이에 따라 ‘공끝’에 대한 느낌은 달라진다.

그렇다면 공끝은 무엇이며, 어떤 힘과 요인에 의해 공끝이 결정되는 것일까. 국내 야구중계 사상 처음으로 ‘초고속카메라’를 설치하고 ‘S-존’이라는 ‘투구추적시스템’을 도입, 투구의 초속은 물론 종속까지 중계화면에 구현해내고 있는 스포츠전문 채널 MBC-ESPN으로부터 프로야구 투수들의 초속과 종속, 직구 회전수에 관한 데이터를 입수했다. 이를 토대로 체육과학연구원(KISS)과 야구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공끝의 실체에 대해 해부해봤다.

○투구의 초속과 종속

MBC-ESPN은 잠실구장과 광주구장 2곳에 ‘S-존’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이 곳 경기의 중계화면에 나타나는 초속과 종속은 일반적인 스피드건이 아니라 컴퓨터를 통해 구속이 자동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끝은 초속과 종속, 공의 회전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MBC-ESPN이 축적해놓은 데이터를 살펴봤다. 직구 최고구속으로 한정했으며, 수 차례의 투구를 평균화한 값이다.

우선 8월말까지 측정된 자료만 놓고 보면 초속과 종속 차이가 가장 적은 투수는 히어로즈 송신영이다. 송신영은 초속 142.2km로 평범하지만 종속은 131.6km로 그 차이가 10.6km에 불과하다. 2위는 히어로즈 이정호(초속 149.3km-종속 138.67)로 10.63km, 3위는 히어로즈 황두성(초속 141.5km-종속 129.54km)으로 11.96km였다. SK 김광현 14.5km, KIA 윤석민 15.95km, LG 봉중근 16.44km, 삼성 권혁 18km, 정현욱 18.33km 등으로 나타났다.

국내 투수 중 대표적인 파이어볼러인 KIA 한기주는 초속 152.91km-종속 135.91km로 17km의 차이를 보였다. 가장 공끝이 좋은 투수라는 평가를 듣던 삼성 오승환은 초속 152km-종속 135km로 17km 차이를 보였다. 역시 올 시즌 상대타자들이 “예전보다 오승환의 공끝이 무뎌졌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데이터상으로도 어느 정도 증명이 되고 있는 셈이다. 초속과 종속 차이가 15km 안팎이면 평균적인 수치라는 분석이다.

○직구 회전수

일본프로야구에서 시속 150km 안팎의 구속을 자랑하는 후지카와 규지(한신)는 직구가 1초당 45회전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그렇다면 국내 투수들의 1초당 직구 회전수는 어떨까. 지난해와 올해의 투구를 토대로 보면 KIA 한기주는 지난해 43.32로 가장 많이 회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2008년 SK 김광현(42.18), 2009년 삼성 권혁(41.48)과 윤성환(41.21), 2009년 히어로즈 마일영(40.8) 등이 뒤를 이었다. 9위 KIA 윤석민(40.04)까지 40회 이상 회전을 보였다. 다만 김광현은 올해는 1초당 39.78회전으로 측정됐다. LG 봉중근은 지난해 39.14-올해 38.92회전, 한화 류현진은 지난해 38.07-올해 37.78로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야구인들이 보는 공끝

삼성 선동열 감독은 “초속-종속의 차이는 공끝과 연관이 있겠지만 회전수는 큰 관계가 없을 것이다. 하체를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가 공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종속뿐만 아니라 무브먼트가 좋아야 공끝도 좋다”고 말했다.

히어로즈 김시진 감독은 “릴리스포인트를 앞으로 끌고 나올수록 초·종속의 차이가 줄어든다. 볼의 회전과는 관련이 없다. 그립에 따라 무빙이 달라질 순 있다”고 설명했다.

히어로즈 정민태 투수코치 코치는 “제구력을 감안하지 않을 때, 이정호가 초·종속 차이가 가장 적은 것은 중심이동이 좋아서 그렇다. 반면 KIA 한기주는 초·종속 차이가 큰데 팔에 의존하는 투구 폼이다. 즉 릴리스포인트는 중심이동에, 중심이동은 밸런스에 달려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삼성 조계현 투수코치는 “초속과 종속의 차이가 적으면 공끝이 좋다는 뜻이겠지만 공이 무겁고 가벼운 것과는 또 다르다. 윤성환은 공끝이 좋지만 무겁지 않다. 대신 타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황두성의 공은 타격시 묵직함을 느낀다고 한다”고 말했다.

○운동역학과 스포츠심리학 박사가 보는 공끝

체육과학연구원의 이순호 박사(운동역학)는 공끝에 대해 과학적인 설명을 들려줬다. 야구공 무게는 똑같지만 공이 갖는 물리량에 따라 공끝이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물리량은 ‘직선속도’와 ‘회전속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 둘은 별개의 개념, 다만 간접적인 영향은 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직선속도는 앞으로 나아가는 힘, 회전속도는 말 그대로 공이 회전하는 힘이다.

이 박사는 “릴리스 포인트에서는 직선속도와 회전속도가 동시에 발휘된다”면서 “처음에는 직선속도가 훨씬 크지만 갈수록 직선속도보다 회전속도가 더 커진다. 이에 따라 초속과 종속, 공의 회전수가 결정되는데 공끝은 둘 중 하나가 기형적으로 커져서는 좋아질 수 없다. 적절한 안배가 이루어질 때 공끝이 좋아지는 것이다. 직선속도에 비해 너무 일찍 회전속도가 발휘될 경우 종속은 떨어지고 변화구가 된다”고 설명했다.

“회전수와 공끝은 큰 관계가 없다”는 야구인들의 말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스포츠심리로 보는 공끝

체육과학연구원의 신정택 박사(스포츠심리학)는 타자가 느끼는 투수의 공끝은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 실제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 박사는 “일반적으로 몸에 기억된 평균속도보다 빠르다는 느낌이 들면, 그러니까 인지적인 패턴보다 타격하는 시점에서 공이 빠르면 공끝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수치상 같은 차이라도 타자의 느낌은 다를 수 있다. 항상 상대하는 국내투수와 처음 상대하는 쿠바투수라면 초·종속이 같아도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투수의 외모나 외형, 타점의 높이, 릴리스포인트의 위치 등에 따라 공끝에 대한 느낌은 달라진다. 선동열은 릴리스 포인트가 앞에 형성됐고, 구대성은 공을 숨겨서 던진다. 타자들이 이들의 공끝을 더 위력적으로 느끼는 이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끝이 좋으면 타자는 심리적으로 빨리 타격을 하려는 부담감을 가진다.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기도 하지만 보통의 타자는 적정 각성 수준을 넘어가면 근육이 긴장되고, 시야가 좁아지게 된다. 그래서 공끝이 좋은 투수를 만나면 타자가 더 못 치게 되는 것이다”고 풀이했다.

○구속과 구위는 별개

초속과 종속의 차이가 적고, 공끝이 좋다고 좋은 투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투수와 타자의 대결은 타이밍의 싸움이다. 초속-종속이 같은 공이라도 구종을 알면 타자가 칠 수 있다. WBC에서 이치로가 봉중근을 보고 ‘스니키 패스트볼(Sneaky Fastball-투수의 몸에서 최대한 숨겨서 나오는 직구로 실제 스피드건의 구속보다 빨라 보이는 직구)’ 때문에 정말 치기 힘들다는 얘기를 했다. 초속-종속은 속도만을 뜻한다. 투수의 구위와는 별개다. 구속도 중요하지만 투구폼과 무브먼트, 각도, 제구력 등에 따라 구위가 결정된다”고 말했다.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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