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율화의 더 팬] 내 혈액형은 B형!

입력 2011-09-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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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라는 영화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열성팬인 남자와 야구 문외한인 여자의 사랑 이야기이다. 남자 주인공은 야구 시즌만 되면 데이트 약속은 잊기 예사에 여자친구가 파울볼에 맞았는데도 공을 잡았다며 환호작약하는 특이한 캐릭터로, 게임·일·술 등에 빠져 ‘나를 미치게 하는’ 연인을 둔 여성들의 공감을 샀다.

하지만 여성 야구팬인 나는 여성의 피보다 야구팬의 피가 더 진한가보다. 어쩜 남자주인공의 모든 행동이 그리 공감이 가던지. 주인공이 여자 친구의 간청에 못 이겨 유럽여행을 가느라 레드삭스의 대 역전승을 놓치는 장면은 내 손이 다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안타까왔고, 그녀와 헤어진 후 자책감을 못 이겨 연간 입장권을 파는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울화통이 터졌다. 세상에! 저건 심장을 쪼개 파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그래. 내가 왜 그를 이해 못하랴. 나 또한 야구 때문에 족보에도 없는 친척을 수없이 고인으로 만들었고, 좋아하는 야구선수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그의 집 앞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은 돌이켜 보면 코웃음도 안 나온다. 뿐인가. 오로지 야구 때문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경험도 있다. (당시 1위 팀의 팬이던 그는 7위 팀 팬인 내게 가을에 신경 쓸 일 없어 좋겠다는 폭언을 했는데, 지금도 난 그를 용서할 수 없다!)

어쩌면 누군가의 눈에는 나도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로 보이겠지만 야구에는 정말이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마지막 3아웃을 잡기 전에는 결코 끝나지 않으며 이제는 끝이구나 싶은 순간에 기사회생 하는 묘미와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의외성, 18.44미터의 거리를 두고 투수와 타자가 서로를 노려볼 때의 그 팽팽한 긴장감은 열 일 제치고 야구를 보게 하는 마력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야구에는 눈물과 감동이 있다. 투구폼 만큼이나 불꽃같은 인생을 살다간 최동원,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길고 긴 부진을 홈런 한방으로 씻어내며 대한민국에 금메달을 선사한 이승엽, 한국시리즈 7차전 9회말 끝내기 홈런으로 11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KIA 타이거즈! 우직하지만 무모하게 달려온 전설들이 일구어낸 꿈같은 드라마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쩌면 야구를 보지 않았다면 대단히 평범했을 나는 ‘나를 미치게 하는 야구’ 덕분에 때로 주위의 빈축을 사기도 하고 호기심 어린 시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리멸렬한 일상에 열정적으로 몰입할 대상이 있다는 것 또한 행운이자 축복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누가 뭐래도, 나를 미치게 하는 야구를 미치게 사랑한다.

여성 열혈 야구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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