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레이더] 용병 몸값 줄여 유소년 지원? KOVO-구단 ‘동상이몽’

입력 2016-01-05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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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VO는 올 시즌을 앞두고 여자부부터 먼저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을 미국에서 실시했다. 외국인선수의 몸값 거품을 걷어내자는 취지였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2015~2016시즌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뽑힌 직후 인삼공사 헤일리(오른쪽 2번째)가 이성희 감독(오른쪽 끝)을 비롯한 구단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KOVO

4월 여자부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실시
연봉 15만달러·승리수당 등 밑그림 확정
인건비 절약 구단들 유소년 지원엔 ‘난색’

4월 실시되는 V리그 여자부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의 밑그림이 확정됐다. 가장 중요한 선수선발 방식은 6위 팀이 30개의 구슬을 가지고, 이후 순위에 따라 구슬이 4개씩 줄어드는 확률추첨으로 정해졌다. 연봉은 이번 시즌과 같은 15만달러다. 승리수당은 구단이 따로 정한 기준에 따라 30만부터 100만원 사이에서 준다. 챔피언 결정전 우승 시 1만달러, 준우승 시 5000달러가 보너스다. 기존에는 1∼6순위에 따라 연봉에 차등을 뒀지만, 각 구단이 자기 선수의 사기를 올려주려고 15만달러에 맞췄다.

트라이아웃 장소는 지난해와 같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의 미국대표팀 훈련장이다. 일정은 당초보다 앞당겨져서 인천 송림체육관에서 실시되는 남자부 트라이아웃보다 앞선 4월 27일부터다.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최종예선에 출전할 여자대표팀과 코칭스태프를 배려한 조치다. 지난해와 달리 각 팀이 세터를 트라이아웃에 데려가지 않고, 현지에서 세터를 구해 트라이아웃 지원자들과 손발을 맞추게 했다.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토종 세터와 트라이아웃 지원자들 사이의 신뢰도와 커뮤니케이션에서 기대했던 만큼 효과가 없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 과거보다 넓어진 국적과 기존 선수 재계약 문제가 변수

각 구단 실무자 회의에서 많은 검토가 이뤄진 사안은 기존 외국인선수와의 재계약 문제였다. 새로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선수가 어느 수준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기존 선수의 처리 문제는 중요했다. 변수는 지난번과는 달라진 국적 조항이었다. 미국 국적의 선수뿐 아니라 캐나다, 도미니카공화국 등 NORCECA(북중미카리브해배구연맹)에 포함된 35개국 가운데 상위 6개국 선수를 대상으로 했다. 선수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 현장 감독들은 같은 조건이라면 탄력이 좋은 중남미 선수를 뽑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나 V리그에서 한 시즌을 경험하면서 기량을 가다듬은 외국인선수를 쉽게 포기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각 구단은 재계약 조항에 민감했다.

현재까지 확정된 방안에 따르면, 우선 한국배구연맹(KOVO)이 준비한 후보 선수들의 영상자료를 본 뒤 각 구단이 일정시한까지 선택해 KOVO에 결과를 통보한다. 1차 선택 때 기존 선수를 원하는 구단은 트라이아웃 전까지 가계약을 해야 한다. 물론 그 구단과 선수도 트라이아웃에는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만일 트라이아웃에서 더 좋은 선수가 나올 경우 구단은 가계약을 포기하고 새 선수를 뽑을 수도 있다. 최종 선택의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것이다. 그 경우 가계약을 맺었다가 갈 곳이 없어진 외국인선수가 너무 불리하기 때문에 보상은 필요하다. V리그의 신뢰도에 손상이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판단은 하고 있다.


● 트라이아웃 최초 구상에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유소년배구 지원

이번 트라이아웃의 밑그림을 위해 여자부 각 구단의 사무국장은 2주에 한 번꼴로 모여 의견을 수렴했다. 아쉬운 것은 트라이아웃과 함께 논의돼야 했던 유소년배구 지원 문제가 빠진 것이다. 당초 KOVO가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을 실시하려고 했을 때는 2가지 명분이 있었다. 첫 번째는 지나친 외국인선수 집중현상을 막아 국내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외국인선수 영입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 그 돈으로 유소년배구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명분은 현장 감독들의 노력 덕분에 찾을 수 있었다. 올 시즌 팀마다 특색 있는 배구를 하고 국내선수들의 공격점유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최소한 여자부에선 외국인선수 혼자의 힘으로는 우승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배구팬들에게 확실히 심어주고 있다. 이제 남은 숙제는 유소년배구 지원인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구단의 얘기가 달라졌다.

KOVO는 유소년배구 지원을 위해 각 구단이 1억5000만원씩 해마다 투자해주면 이 돈을 모아 배구 꿈나무를 발굴하는 데 쓰겠다고 했다. 이사회에서 관련 논의도 진행했지만, 각 구단은 기금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컸다. KOVO는 지원액수를 줄여서라도 구단의 협조를 바라고 있지만, 현재 돌아가는 형편으로는 쉽지 않을 듯하다.


● 순진한 KOVO? 구단의 다른 생각


외국인선수 때문에 허리가 휘었던 각 구단이 새로운 제도 덕분에 형편이 좋아졌으니 절약한 돈을 뜻있는 곳에 쓰자는 것이 KOVO의 뜻이지만, 구단들은 KOVO의 이런 발상을 순진하다고 본다. 구단은 기업이다. 이익이 되지 않는 곳에는 돈을 쓰지 않는 것이 생리다. 회계처리상 외국인선수 인건비와 유소년배구 지원비용은 전혀 다른 돈이기 때문에 이 주머니에서 빼내 저 주머니로 돈이 간다는 생각 자체가 기업을 너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KOVO는 트라이아웃과 유소년배구 지원을 시행할 때부터 함께 움직이도록 하지 않았다. 트라이아웃의 성공에만 매달리느라 정작 필요한 사항은 뒤로 미루다 구단들로부터 뒤통수를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구단들은 유소년배구 지원에 대해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 굳이 KOVO가 나서지 않아도 구단에 이익이 되도록 규정만 정해주면 알아서 움직일 텐데, 그런 노력은 없이 돈만 달라고 한다는 시각이다.

현재 구단이 원하는 것은 연고지 우선지명제도와 각 구단이 발굴해 키운 육성선수에 대한 권리보호다. 이 두 가지 조항만 규약에 정해두면 KOVO가 시키지 않아도 구단이 알아서 돈을 투자해 선수를 키우고 발굴하고 육성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 생각의 차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유소년배구 지원과 관련한 해법이 나오기는 어려운 구조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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