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ML? 후회나 미련 없다” 한화 김진영, ‘스토리’를 말하다

입력 2017-07-14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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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와 계약했지만 마이너리그에만 머물다 2013시즌 직후 방출의 설움을 겪었던 김진영. 4년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침내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한화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한화 우투수 김진영(25)의 KBO리그 입성은 동기들과 견줘 조금 늦었다. 덕수고 3학년 시절인 2010년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컵스와 계약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지만, 마이너리그에만 머물다 2013시즌 직후 방출의 설움을 겪었다. 이후 한화 유니폼을 입기까지 무려 4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 기간에 팔꿈치 수술 후 재활을 마쳤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며 군 문제를 해결했다. 아무런 제약 없이 KBO리그 무대를 밟을 준비를 마친 것이다.

7월7일 1군에 등록된 것은 김진영에게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꿈에 그리던 ‘프로무대’에 진입해서다. 7월9일 잠실 LG전에서는 구원등판해 1.1이닝을 2삼진 퍼펙트로 막아내며 프로야구선수 김진영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한화 이상군 감독대행도 “공격적인 투구를 하는 투수라 어떤 상황에든 잘할 것으로 믿고 투입했다. 제구력도 좋고, 슬라이더가 빠르게 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의 덕아웃 한켠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김진영의 어조는 매우 차분했다. 말 마디마디에 진지함이 묻어났다. 4년의 공백기를 거치며 ‘스토리’를 써낸 그는 또 다른 ‘스토리’를 꿈꾸고 있었다.

한화 김진영. 스포츠동아DB



● 뒤늦은 프로 데뷔, 꿈에 그리던 1군 마운드

-프로야구선수로서 첫 등판(7월9일 잠실 LG전)을 마친 순간을 돌아보자.


“3회 2사에 마운드에 올랐는데, 이닝을 끝낸 아웃카운트가 모두 삼진이었다. 그래서 더 당당하게 마운드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2점차, 주자 1·3루의 위기였다. 실점을 막고 주먹을 불끈 쥐는 세리머니가 인상적이었다.

“사실 세리머니를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나온 것이다. 무엇보다 내 뒤에 (심)수창 선배님이 계신다는 생각에 확실하게 내 공을 던지고 아웃카운트를 잡자고 생각한 것이 통했다. 볼카운트를 어렵게 끌고 간 것도 최대한 실투 없이 낮은 코스에 공을 던지려고 한 것인데, 결과가 좋아 다행이었다. 큰 틀을 보기보다는 타자를 상대할 때 어떤 구종을 어떻게 던지느냐가 중요했다. 감독님과 코치님께서도 ‘자신 있게 던지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구종을 던지고, 가장 자신 있는 무기는 무엇인가.

“직구와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투심패스트볼을 던진다. 사실 포수 (최)재훈이 형이 워낙 리드를 잘해주신다. 내가 원하는 구종을 던진다는 개념보다는 재훈이 형의 리드대로 따라간다. 가장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는 구종은 슬라이더다.”


-그 슬라이더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어렸을 때도 슬라이더로 승부를 많이 했다. 내가 타점이 그렇게 높은 투수는 아닌데, 커브는 떨어지는 각도가 밋밋하더라. 내 팔각도에 가장 좋은 변화구는 슬라이더와 서클체인지업이었다. 슬라이더 그립도 다양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투수들이 던지는 슬라이더의 궤적을 봤다. 카운트를 잡는 슬라이더는 횡으로 휘는 느낌으로, 2스트라이크 이후 승부구는 공을 더 강하게 눌러주면서 종으로 떨어트린다는 느낌으로 던진다.”


-2군에서는 무엇을 가다듬는 데 주력했나.

“내게 가장 부족했던 부분이 경기운영능력과 실전감각이었다. 2군에서 타자에게 많이 맞기도 했고, 그만큼 위기상황도 겪었다. 그 경험이 지금 편안하게 던지는데 도움이 됐다.”


-1군에 등록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나.

“사실 (1군 등록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2군에서 많은 분들이 워낙 잘 챙겨주셨다. 힘들어할 때도 ‘너는 언제든 1군에 올라갈 수 있는 기량을 갖고 있다’고 격려해주셨다. 1군 등록 소식을 들었을 때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기대에 부응해야한다는 마음뿐이었다.”

한화 김진영. 스포츠동아DB



● “한화의 선택, 틀리지 않았다는 것 증명하겠다”

-ML 도전을 멈춘 순간부터 한화에 지명되기까지의 시간은 야구인생에서 어떤 의미인가.


“다시 생각해도 후회나 미련은 없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KBO리그에서 뛰었다면 ‘내가 야구를 잘하는 선수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안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정말 잘하는 선수들, 더 자세히 말하자면 한국인이 갖지 못하는 타고난 힘과 체격을 갖춘 선수들과 같이 야구를 해보니 알겠더라. 내가 야구를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여기서 야구를 할 게 아니구나. 더 배운 뒤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뭔가를 배우면서 야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야구가 뒤처진다는 얘기가 아니다. 어디서든 감독, 코치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하나라도 더 배우고, 도전하면 좋겠다는 뜻이다. 귀국 후 올해 2군에서 뛴 시간까지 4년의 공백기가 있었는데, 그 기간에 사회생활을 하며 많은 경험을 했다.”


-현실의 벽에 부딪친 것인가.

“그 기간에 정말 많은 일을 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는 동안 아버지께서 건강이 좋지 않으셨고, 동생은 대학생이었다. 그때의 나는 안 해본 일이 없었는데, 그때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만 했으니 다른 일을 하면서 ‘이런 삶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1년간 신인드래프트를 준비하며 느낀 점이 있다. 3년간 야구를 쉬면서 열정이 더 커졌다. 모든 것이 좋은 경험이자 추억이었다.”


-마음고생도 컸겠다. 어떤 일을 했는지 말해줄 수 있나.

“모교 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했고, 여기저기서 재능기부도 했다. 선수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니 뭔가 다르더라. 내가 지도한 선수가 경험을 쌓으면서 달라지고, 여유가 생기고, 자신감을 얻는 것을 보니 느낌이 색다르더라. 좋은 경험이었다.”


-스스로 느끼는 장점과 앞으로 더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아직 내가 완성된 투구를 보여드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짧은 이닝이었고,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언제 밸런스가 무너질지 모르는 일이다. 선배들께 많이 여쭤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기복이 없는 투수가 되고 싶다. 중요한 것은 부상 없이 선수생활을 이어가며 이기는 경기에서 잘 던져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게 하려면 내가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서야 한다. 선수들은 모두 스토리가 있다. 그 스토리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는 시기는 내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 마음껏 실력을 뽐낼 때다. 그때는 더 많은 이들이 내 스토리를 듣고 희망과 열정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선수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한화는 나를 믿고 뽑아준 팀이다.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팀의 기대에 보답하는 선수가 되겠다. 위치에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도 잘 던질 수 있는 준비된 투수가 되겠다.”


● 한화 김진영


▲생년월일=1992년 4월16일

▲출신교=경희초(도봉구리틀)∼홍은중∼덕수고

▲키·몸무게=180cm·89kg

▲프로 입단=2017년 한화(2차 1라운드 전체 5순위)

▲2017시즌 연봉=2700만원

▲2017시즌 성적=2경기, 방어율 5.40(1.2이닝 1자책점)

대전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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