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김호곤의 월드컵 한(恨)과 숫자 ‘32’의 기운

입력 2017-09-1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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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곤 기술위원장. 스포츠동아DB

축구기자를 하면서 만난 지도자나 선수들 대부분은 한두 가지 맺힌 ‘한(恨)’을 품고 있었다. 누구든 완벽한 인생을 살 수 없듯이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자기가 원하는 걸 모두 가질 수는 없다. 리그 우승을 못해봤거나 득점왕 등 개인 타이틀이 없거나, 또는 월드컵 본선무대와 인연이 없었다는 응어리가 박제처럼 가슴에 박혀 있었다. 천하의 메시(FC바르셀로나)도 자신의 조국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정상에 올려놓지 못해 월드컵 얘기만 나오면 기가 죽는 판이다. 그런 마음의 상처는 쉽게 가시지 않는다.

국가대표팀 신태용 감독도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선수로서 본선 무대는커녕 예선전 출전도 하지 못했다. 이번에 2018러시아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따낸 건 어쩌면 응어리진 한을 조금은 풀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 김호곤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도 월드컵만 생각하면 속이 탄다. 선수로서 1974서독월드컵 및 1978아르헨티나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뛰었지만 결국엔 본선무대를 밟지 못했다. 1971~1979년 태극마크를 달고 A매치(대표팀 간 경기) 124경기에 출전한 베테랑 수비수 김호곤은 중앙 수비는 물론 좌우측 수비를 다 설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1979년 선수생활을 그만둔 뒤 이듬해 국가대표팀 코치로 부임했는데, 그 때 나이 만 29세였다. 선수로서 한창 뛰어야할 나이에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지도자로서 월드컵과의 첫 인연은 순조로웠다. 1986멕시코월드컵 최종예선은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계기였다.

1986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 코치 시절 김호곤(가운데).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1985년 말 열린 최종예선 상대는 일본이었다. 10월 26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한국은 정용환의 선제골과 이태호의 결승골로 2-1로 이겼다. 11월 3일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운명의 2차전. 8만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은 후반 16분 박창선의 크로스를 받은 최순호가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슈팅을 날렸고, 볼이 골포스트를 맞고 튕겨 나오자 허정무가 득달같이 달려들며 골네트를 흔들어 1-0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한국은 54스위스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당시 대표팀 감독이 김정남, 코치는 김호곤이었다.

“나도 젊었으니 왜 선수로 뛰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나. 하지만 그런 마음을 누르고 코치로서 소임을 다하는 게 더 중요했다. 선수는 자기 것만 하면 되지만 지도자는 모두를 관리해야하기 때문에 어렵더라.”

멕시코월드컵 본선에서 1무2패로 조별예선 탈락했지만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세계의 축구 수준을 경험하면서 한국축구도 가능성을 발견했다.

“본선에 간 코칭스태프는 나와 김정남 감독 딱 2명뿐이었다. 내가 골키퍼 훈련을 시켰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당시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정보가 없어 처음에는 상대팀과 실력 차가 많은 줄 알았는데, 막상 부딪혀보니 꼭 그렇지는 않았다. 잘만 준비하면 격차를 확실히 줄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김정남 감독-김호곤 코치는 1986서울아시안게임에서 정상에 오르며 주가를 높였고, 1988서울올림픽에도 함께 했다. 김호곤은 1992바르셀로나올림픽 대표팀 코치를 맡는 등 코치로서 10년 이상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1990년대 중반 연세대학교에서 감독생활을 했고, 2000년 부산의 창단 감독을 하다가 대표팀 사령탑을 처음 맡은 건 2004아테네올림픽 때다. 비록 월드컵은 아니었지만 올림픽 8강 진출이라는 큰 성과를 올리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몇 차례 월드컵대표팀과 인연을 맺을 뻔했지만 번번이 미역국을 먹었다. 결국 대권은 잡지 못했다.

김호곤 감독은 아테네 올림픽 축구 대표팀을 8강으로 이끌고 8강에 올랐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코치로서 월드컵 본선티켓을 따는데 기여한 지 32년이 흐른 2017년 9월, 김호곤은 기술위원장의 신분으로 최종예선을 맞았다. 기술위원장은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기술위원회의 수장이다.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하고, 한국축구의 중장기 발전을 위해 큰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다. 그만큼 권한과 책임이 막강하다.

김호곤은 9월 5일 열린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경기에 선수단 단장 자격으로 갔다. 헹가래 논란과 기대 이하의 경기력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신태용호는 본선행 티켓을 따냈다.

거기에 김호곤도 함께 했다. 32년의 세월을 두고 본선행이 결정된 두 곳의 공간에 모두 발을 딛고 선 이는 아마도 그가 유일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으로 원정 갈 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32년이라는 숫자가 자꾸 떠올랐다. 코치할 때 32년 만에 본선티켓을 땄는데, 그 32년 후에 기술위원장으로 그런 운명을 맞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했다. 평생 축구를 했지만 그 날이 가장 가슴 떨렸다.”

이제 시선은 본선으로 향해 있다. 현재 대표팀이 보완해야할 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그는 ‘공수 전환’을 먼저 언급했다.

축구국가대표팀 신태용 감독(오른쪽) 대한축구협회 김호곤 기술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수원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우리는 스피드를 가지고 승부를 해야 한다. 우리보다 전력이 센 팀과 상대하기 위해서는 특히 더 공수전환이 빨라야 한다. 그리고 수비 쪽 훈련을 많이 해 안정감을 가져야한다.”

월드컵대표팀 감독을 못해 봤고, 또 이제 그 한을 풀 기회도 사실상 사라졌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희망을 얘기했다. “비록 대표팀 감독은 아니지만 기술위원장으로서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해내야한다. 내 경험을 다 활용해서 대표팀을 도울 생각이다. 신 감독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 본선 무대에서 대표팀이 좋은 경기를 하는 것, 최선을 다해 한국축구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 그게 내 목표다.” 자신이 못한 것을 후배가 잘 이룰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겠다는 의지가 확연했다.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예선을 치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본선에서는 좋은 결과가 있도록 노력하겠다.” 김호곤의 월드컵 응어리가 러시아 본선 무대를 통해 완전히 해소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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