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기성용이 본받아야 할 대표팀 주장의 리더십

입력 2017-11-1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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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 기성용. 스포츠동아DB

내가 경험한 역대 축구대표팀 주장 가운데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이는 홍명보다. 2002한일월드컵이 정점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에 홍명보의 리더십 등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면서 4강이라는 기적을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역대 최고 성적이라는 결과 덕분에 모든 게 좋게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실제로 월드컵 현장에서 만난 태극전사들은 홍명보를 ‘존경심을 갖게 만드는 주장’이라고 평가했다.

홍명보의 특징은 앞서 얘기한 강력한 카리스마다. 선으로 치면 굵은 직선이다. 후배들과 나이차가 많다보니 보수적인 면도 있었다. 극도의 긴장감을 극복해야하는 월드컵에서 조별 예선~16강~8강~4강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감독도, 주장도 선 굵은 리더십이 필요했다. 강렬한 눈빛으로 후배들을 독려하고, 헌신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게 홍명보였다.

선수 시절 홍명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평소 웃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지만 스페인과 8강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서 4강행을 확정지었을 때의 활짝 웃는 모습을 기억하는가. 그가 월드컵 내내 얼마나 긴장하고 치열했는지를 그 한 장면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2010남아공월드컵 때 완장을 찬 박지성은 홍명보와 비교된다. 포지션도, 팀 내 역할도 달랐다. 대표팀 내의 나이도 박지성은 중간 정도였다. 그런데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줬다.

주장으로서 모든 걸 보여줬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캡틴 박’이었다.

우선 부드러웠다. 직선이 아니라 곡선의 리더십이었다. 자신의 성격처럼 부드러움으로 동료들을 소통시키고, 팀을 융화시켰다. 최고 수준의 기량과 성실한 자세, 그리고 항상 솔선수범하는 마음가짐은 동료들을 따르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었다. 남아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성과를 낸 것도 이런 박지성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아공 월드컵 당시 박지성.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축구는 팀 스포츠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조직력이 우선이다. 이런 조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중간 장치가 바로 주장의 역할이다. 소통 능력과 친화력, 판단력, 경기력, 정신력 등 모든 걸 고루 갖춘 선수만이 존경받는 주장이 될 수 있다. 홍명보와 박지성이 평가받는 이유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의 주장은 기성용(28·스완지시티)이다.

2008년 9월5일 요르단과 평가전을 통해 A매치 데뷔전을 가졌으니 벌써 10년차다. 95회의 A매치 기록도 대표선수 중 최다 기록이다. 그만큼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신 감독의 신망도 두텁다.

하지만 주장 기성용에 대한 평가는 우호적이지 않다. 성적이나 경기력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주장의 평가가 좋을 리는 없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주장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기성용이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찾고 행동으로 보여줄 때 비로소 동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

우선 팀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팀 분위기와 경기력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외부 요인을 최대한 차단하고 선수들끼리 똘똘 뭉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기성용의 몫이다. 부상으로 최근 몇 개월간 힘든 시기를 거쳤지만, 이제 프리미어리그에서 3경기 연속 풀타임 출전할 정도로 컨디션을 회복했다. 주장으로 경기장에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경기력 논란을 잠재워야만 대표팀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당장 콜롬비아, 세르비아와의 11월 평가전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했다. 그 위대한 팀을 만드는 데 기성용이 큰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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