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딛고 성공적인 루키 시즌 마친 방신실, “내년엔 더 단단한 선수 될 것” [인터뷰]

입력 2023-11-22 08: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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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부 시드란 한계를 딛고 2023시즌 KLPGA 투어 신인 중 유일하게 다승(2승) 고지에 오르며 성공적인 한 해를 마무리한 방신실. 사진제공 | KLPGA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조건부 시드인 탓에 드림투어(2부)를 병행하다 첫 출전한 지난 4월 메이저대회 KLPGA 챔피언십. 1라운드 1번(파5) 홀 보기, 2번(파3) 홀 더블보기로 초반 두 홀에서 3타를 잃었지만 나머지 16개 홀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8개를 낚았다. 14번(파4)~18번(파4) 홀 5연속 버디로 공동 선두로 뛰어올랐다. 이튿날 공동 4위로 밀리고도 3라운드에서 다시 공동 1위에 복귀했고 결국 최종합계 8언더파 공동 4위에 자리했다. 2주 뒤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선 최종 3라운드 16번(파3) 홀까지 1타 차 단독 선두를 달리다 17번(파5), 18번(파4) 홀 연속 보기로 2타 차 공동 3위에 머물렀다.

다시 2주 뒤 열린 5월 말 E1 채리티 오픈. 두 번이나 우승을 놓친 아쉬움을 이번엔 되풀이 하지 않았다. 세 번째 챔피언조 도전은 ‘완벽한 승리’로 끝을 맺었다. 사흘 내내 리더보드 최상단을 지키고 신지애(2006년), 유소연(2008년) 등에 이어 역대 10번째 와이어 투 와이어 데뷔 첫 승을 ‘쟁취’했다. 올 시즌 루키 1호 챔피언이었다.

5개 대회 만에 첫 우승을 달성한 성적도 인상적이지만 300야드를 넘나드는 드라이버, 긴 파5 홀에서 아이언 세컨 샷으로 투온에 성공하는 강력한 장타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여자 골프선수로는 보기 드문 173㎝ 큰 키에서 나오는 호쾌한 샷은 팬들을 매료시켰다. 조건부 시드의 한계를 딛고 우승으로 단숨에 풀 시드를 획득한 역동적 스토리, 여기에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오뚝이처럼 극복했다는 사연까지 곁들여지면서 그야말로 신드롬이 일었다.

2023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신인 중 유일하게 2승을 거둔 방신실(KB금융그룹) 이야기다.

2004년생 열아홉살 방신실은 아마추어 시절 또래들을 압도하는 에이스였다. 지난해 오거스타 내셔널 여자 아마추어 대회에선 당시 역대 한국 선수 최고인 8위를 기록했다. 국가대표 3년차였던 작년에는 주장까지 맡아 항저우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1위(아시안게임이 1년 미뤄지면서 태극마크 반납 후 지난해 말 프로 전향)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 전향 후 정규투어 시드전에서 예상을 깨고 40위에 그쳤다. 동갑내기 친구 김민별, 한 살 위 황유민 등 국가대표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동료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규 투어에 데뷔할 때 2부 투어를 뛰며 남모를 눈물도 흘렸다. 한발 늦게 시작한 정규투어, 그래서 더 간절했는지 모른다.

달콤했던 첫 우승 이후 또 다른 시행착오도 겪었다. 6~8월, 3개월 간 9개 대회에서 4번이나 컷 탈락하는 등 주춤했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았다. 9월 하나금융챔피언십 공동 8위, 대보하우시디 오픈 공동 9위 등 재차 상승곡선을 그렸고, 10월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 챔피언십에서 마침내 시즌 2승을 달성했다. 3라운드까지 선두였던 황유민을 마지막 날 압도하고 짜릿한 역전승을 일궈냈다. 스트로크 플레이가 아닌 변형 스테이블포드 방식에서 ‘공격 본능’을 맘껏 발휘한 결과였다.

올해 최종 성적은 25개 대회 출전에 18번 컷 통과, 톱10 9번. 출발이 늦었던 탓에 생애 단 한번만 받을 수 있는 신인왕 영광은 김민별에게 넘겨줬지만 우승 2번, 3위 1번에 대상 8위, 상금 9위는 좌절을 딛고 일어선 루키 시즌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스스로는 조금 부족하게 느끼는 듯 했다. 20일 KLPGA 대상 시상식을 마친 뒤 서울 강남구 한 커피숍에서 마주한 방신실은 “처음 목표로 했던 2승을 했으니 100점 이상을 줄 수 있는 만족할만한 한 해였다. 하지만 시즌 중반 기복 있는 모습을 보였던 점은 무척 아쉽다”고 돌아봤다.

지난해 이맘 때 시드전에서 맛봤던 좌절감, 올해 초 드림투어에서 겪었던 마음고생도 털어놨다.

방신실이 20일 KLPGA 대상 시상식을 마치고 스포츠동아와 만나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김도헌 기자


“시드전을 마친 뒤 스스로에게 실망을 많이 했다. 하루하루 견디기 어려웠다. 지옥 같았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동계 전지훈련을 열심히 했다. 정말 힘들게, 울면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전지훈련을 마쳤을 때) 내 스스로 뿌듯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렇게 올 초 드림투어에 나섰는데 성적이 좋지 않았다. KLPGA 챔피언십을 앞두고 출전한 드림투어 대회에서도 컷 탈락을 했다. 나름 중요한 대회였는데 ‘예탈’(예선탈락)을 해버렸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나도 힘들고 가족들도 힘들었다. 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좀처럼 그런 생각을 안 하는데 KLPGA 챔피언십에서 성적을 못 내면 골프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골프란 게 참 신기하다. 내려놓으면 건저주고, 될 것 같으면 또 떨어뜨리고.” 방신실을 처음으로 팬들에게 각인시킨 KLPGA 챔피언십에는 이런 뒷얘기가 숨어있었던 셈이다.

주변에 대한 감사함도 잊지 않았다.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면 올 시즌 이런 결과를 얻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면서 “항상 나를 믿고 응원해주시는 부모님, KB금융그룹 등 나를 후원해주시는 스폰서 그리고 팬들 덕분”이라고 했다.

방신실의 ‘트레이드 마크’는 장타다. 드라이버 평균비거리(262.47야드) 1위는 지난 동계 훈련 때 피나는 노력으로 스윙스피드를 늘린 결과물이다. 방신실은 “골프 선수로서 장타는 큰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거리 장점을 살리면서 앞으로는 ‘멀리 똑바로’ 갈 수 있도록 정확성을 더 높이고 싶다”고 했다.

우승 경쟁을 벌이다 6위로 마무리한 시즌 최종전 SK쉴더스·SK텔레콤 챔피언십. 버디 찬스에서 4퍼트를 해 더블보기를 적어내는 등 연이은 퍼트 실수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퍼트 실력이 나쁘지 않은데 가끔 어이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은 없다. 오히려 후련하다”고 최종전을 돌아본 그는 퍼트 얘기를 꺼내자 “나는 평소 오로지 라인하고 스피드만 생각하고 퍼트를 한다. 그럴 때는 오히려 잘 되는데, 가끔 너무 욕심을 부리면 실수가 나온다”면서 “욕심을 부리든, 실수를 하든 그것도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냉혹하게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장타가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지만 난 사실 장타자보다도 ‘퍼팅을 잘 하는 선수’, ‘멘털이 강한 선수’로 인정받고 싶다”며 “내년에는 그런 아쉬운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올 동계 훈련 때는 그린 주변 숏 게임과 퍼트 연습에 작년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골프 선수로서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꿈도 덧붙였다. “언젠가 내 스스로 준비가 됐다고 판단하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도 도전할 것”이라면서 “골프선수로서 최종 목표는 세계랭킹 1위와 올림픽 금메달”이라고 힘줘 말했다.

아마추어 시절 최고의 자리에 있다 프로 입문 후 아픔을 맛본 뒤 다시 일어선 방신실. 루키 시즌을 마친 그의 골프 인생은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꿈을 이루기 위해 내년엔 더 단단한 선수가 돼 팬들 앞에 설 것이다. 지난 겨울보다 이번 동계 훈련 때는 더 열심히 땀을 흘릴 것”이라는 말에서 더 밝은 미래를 그리는 굳은 다짐이 느껴졌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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