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중일 감독, 트레이드 요청에도 “그래, 얘기 해봐”

입력 2012-11-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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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류중일 감독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지시하는 것보다 지켜봐주는 것을 즐긴다. 삼성의 탄탄한 신구조화 중심에는 류 감독 리더십이 있다. 류 감독이 1일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한 뒤 선수들의 축하를 받으며 팬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류중일의 리더십을 말한다

1. 사람 좋으면 꼴찌라고?
2. 귀가 왜 2개인지 아십니까?
3. 기다리면 복이 오나니
4. 미소 속에 숨은 승부욕
5. 변하면 류중일이 아니다!


류중일 감독이 즐겨하는 질문이 있다. “눈이 왜 두 개인지 아십니까?” 그리고 그는 “이쪽도 보고 저쪽도 보라고 그런 겁니다”라며 웃는다. 눈이 두 개여서 덕아웃에서 기자들을 보고 얘기를 나누면서도 선수들의 훈련을 기민하게 체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하나 있다. “귀가 왜 두 개인지 아십니까?”다. 그는 “이 사람 말도 듣고 저 사람 말도 들으라고 그런 겁니다”라며 껄껄 웃는다.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지만, 그는 실생활에서 이 말을 실천하고 있다. 코치들에게도, 선수들에게도 그는 묻고 듣는다. 한마디로 자신보다 못하거나 아래 있는 사람에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의 자세를 갖추고 있다. 심지어 기자들이 자신에게 전날의 작전이나 선수기용 등에 대해 질문하면 그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되묻곤 한다. 일단 듣고 나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성사 안 되면 나하고 야구하는 거다”
끝까지 듣고 선수 위한 해결책 제시

타팀에 전화해 훈련 노하우 묻기도
들을 줄 아는 ‘소통의 리더십’ 발군


지난해 말 삼성의 A 선수가 밤늦게 류중일 감독의 집 앞으로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외출을 한 뒤 귀가하던 류 감독은 A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시간에 니가 웬일이고?”

“감독님, 저 트레이드시켜 주십시오.”

A는 1군 경기 출장이 뜸해지면서 감독에게 트레이드를 요청한 것이었다. 웬만한 감독 같으면 무례한 선수를 보고 불같이 화를 냈겠지만, 류 감독은 A의 얘기를 들어줬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야, 트레이드라는 건 니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이다. 카드도 맞아야 한다. 니 뜻이 정 그러면 트레이드를 추진은 해보겠다. 그렇지만 트레이드가 성사 안 되면 잔말 말고 나하고 같이 야구 하는 거다. 알겠나.”

‘들을 줄 안다’는 것은 ‘물을 줄도 안다’는 뜻이다. 2004년 현대 박진만이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은 뒤 삼성 유니폼을 입게 됐다. 당시 삼성 수비코치였던 그는 현대에서 오랫동안 수비코치를 지낸 정진호 수석코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석코치님, 진만이는 어떻게 수비훈련을 시켰습니까?”

현대로선 전력의 핵 박진만이, 그것도 삼성으로 빠져나가 뼈아팠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 코치는 전화를 받고는 훈련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해줬다. “진만이는 무릎이 좀 안 좋아. 체력도 좀 약해서 일주일에 한번쯤은 쉬게 해주는 게 좋을 거야.” 평소에 항상 궁금한 점이 있으면 자신에게 묻고 들어왔던 후배였기에 정 코치도 마음을 연 것이었다.

그는 삼성에서 수비코치로 명성을 쌓아왔다. 게다가 그는 명 유격수 출신이다. 그만의 노하우로 박진만을 훈련시킬 수 있었지만, 그는 귀를 열고 들었다. 감독이 된 뒤에도 마찬가지다. 최종 결정이야 수장인 자신이 하지만,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의 리더십은 두 귀로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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