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잠수함 김진욱이 보는 잠수함 고영표의 완봉투

입력 2017-05-0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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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투수였던 김진욱 감독의 현역 시절-kt 고영표(오른족). 사진|스포츠동아DB·두산 베어스

“상상만 했던 일이었는데, 현실이 되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내가 정말 완봉승을 했나’ 싶어서 잠을 한숨도 못 잤습니다.”

kt 고영표(26)는 하루가 지났지만 아직도 생애 첫 완봉승을 해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 듯했다. 그는 29일 수원 LG전에서 9이닝 동안 113구를 던지며 볼넷 없이 6안타 2사구 6삼진 무실점으로 팀의 6-0 승리를 이끌었다. 자신의 최근 3연패와 팀의 5연패를 끊는 역투였다. 2014년 프로에 데뷔해 처음 기록한 완봉승으로 그는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 석자를 강하게 심어줬다. 30일 LG전을 앞두고 취재진 앞에 선 고영표는 계속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며 수줍게 웃었다.

kt 고영표.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태어나서 처음 맛본 완봉승의 감격

보통 프로 데뷔 첫 완봉승이면 ‘생애 첫 완봉승’이라고 얘기하곤 하지만, 실제로 그는 야구를 시작한 뒤로 처음 경험해 본 완봉승이었다. 광주대성초~동성중~화순고~동국대를 나온 그는 학창 시절에도 완봉승은 없었다고 한다.

“대학 때 9회 1아웃까지 무실점을 해보기는 했지만, 완봉승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항상 상상은 했다. 완봉승을 하면 어떨까. 마무리투수가 아닌 내가 승리를 확정하고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꿈…. 그런데 거기까지만 상상했지, 어떻게 하이파이브를 할 건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빨리 완봉승을 할줄 몰랐다.”

동국대 시절 대학 최고투수로 평가받으며 2014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전체 10순위)에 지명돼 kt 유니폼을 입은 그는 신생팀 kt가 1군리그에 진입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불펜에서 활약했다. 당연히 지난해까지 선발등판이 한번도 없었다. 99경기에 등판해 5승8패, 5홀드, 방어율 5.64를 기록했다.

그러나 올 시즌 선발로 전환해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개막전인 3월 31일 인천 SK전에서는 불펜으로 나와 1.2이닝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한 그는 그 다음부터 선발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4월 6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투수로 데뷔해 6이닝 1실점으로 승리까지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이후 3경기에서 내리 패하고 말았다. 자칫 선발 자리를 내놓아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생애 첫 완봉투로 발전의 큰 동력을 얻었다.

더욱 기분 좋은 것은 부모님에게 큰 선물을 안겼기 때문이었다. 고영표는 “부모님이 오늘(30일) 결혼기념일인데, 하루 전에 선물을 드린 것 같다”며 웃었다. 그의 친형은 KIA 내야수 고장혁(개명전 고영우). 형은 이날 1군 엔트리에 등록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전에서 NC전을 치르고 있었다. 경기 도중 구장 전광판을 통해 수원 경기 스코어를 보고 속으로 ‘동생이 좀 잘 던졌나 보다’라고 짐작만 했다. 그런데 경기 후 기사를 보고 완봉승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전화를 했다고 한다.

kt 고영표. 스포츠동아DB



● 김진욱 감독이 보는 고영표의 장점

고영표의 선발 전환은 김진욱 감독의 큰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김 감독 역시 현역 시절 잠수함 투수 출신으로, 고영표의 선발 잠재력과 가능성을 알아봤기에 선발 한 자리를 맡길 수 있었다.

같은 잠수함 투수로 보는 고영표의 장점은 무엇일까. ‘현역 시절과 비교하면 어떤가’라는 질문에 김 감독은 “난 현역 시절 직구, 커브, 슬라이더 위주의 피칭이었다. 당시엔 체인지업을 던지면 직구 구속이 줄어든다고 못 던지게 하던 시절이었다”며 웃더니 “고영표는 커브와 체인지업이 좋다. 잠수함투수는 흔히 좌타자에 약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커브의 스핀이 굉장히 좋고 체인지업이 날카롭기 때문에 좌타자들도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테이크백에서 피니시 동작까지 한번에 연결이 되면 좋겠는데, 제구에 너무 신경을 쓰면서 중간에 동작이 한번 끊어졌다가 신중하게 공을 놓는 동작이 있었다. 그 부분에서 지난 등판 후에 ‘넌 감각이 있으니 그냥 한번에 가보자’고 했는데, 이번에 볼끝이 살아나면서 좋은 투구가 나온 것 같다”고 평가했다. 상대팀 LG 양상문 감독도 “체인지업이 정말 날카롭더라. 한참 좋을 때 이재학(NC)의 체인지업을 보는 것 같았다”며 극찬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올 시즌 고영표에게 지나친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김 감독은 “올해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시즌 후에는 2018년을 위해 캠프 때부터 어깨도 단련해야한다. 아니면 내년도 과정이라고 봐야한다”며 취재진에게 고영표가 선발로 안착하기까지 긴 안목으로 봐줄 것을 당부했다.

완봉승을 했으니 이제 주변의 기대도 클 수밖에 없다. 그도 이를 잘 안다. 그러나 그는 “완봉승의 기쁨은 어제로 끝내고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다짐했다.

수원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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