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김기태 감독. 스포츠동아DB
# 데뷔 9년차 KIA 정용운이 승리를 얻을 때의 에피소드다. ‘양현종과 헥터가 정용운의 승리를 지켜주겠다’고 서로 불펜 등판을 자청한 것이다. 투구리듬이 깨질 것을 우려한 김 감독의 만류로 성사되진 않았지만 그 마음은 이미 통했다. 헥터는 14일 사직 롯데전에서 7이닝 3실점으로 시즌 10승을 달성한 날 밤, 김 감독의 방문을 두드렸다. 영문을 모르는 김 감독에게 헥터는 “‘나를 믿어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투구수 123구를 던질 때까지 교체하지 않은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는 감사 표시였다. 김 감독은 “네가 길게 던져줘 오히려 내가 고맙다”고 웃으며 돌려보냈다. 김 감독은 가급적이면 이닝 중간에 투수나 야수를 바꾸지 않는다. “선수 가족들도 보고 있다”는 것이 소박한 이유다.
KIA 헥터-김기태 감독(오른쪽).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인스타그램
# 헥터에 관해 말할 때, 마침 통역이 지나갔다. 김 감독은 헥터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통역의 개인적 신상에 관해 물었다. 평상시 관심을 두지 않으면 작위적으로 할 수 없는 영역이다. 훈련보조원, 청소 아주머니 등, 잘 보이지 않는 곳까지 김 감독의 눈길은 머문다. 김 감독의 관계 맺기는 의식적인 노력의 산물에 가깝다.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을 따르도록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인간적 매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지도자의 자질이다.’ 역시 시바 료타로의 말이다. 어떤 면에서 김 감독은 계산으로 잡히지 않는 신의, 예의 같은 가치를 중시하는 중세적인 사고의 소유자다. 합리성의 시대에 김 감독의 방식이 더 매력적으로 비치는 현실은 역설적이다. 그만큼 사람을 비용 혹은 효율로 취급하는 우리 시대에 ‘휴머니즘’이 희소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