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오키나와 다이어리] ‘3번 유니폼’에 담긴 롯데 민병헌의 배려

입력 2018-03-0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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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는 선수에게 제2의 이름과도 같다. 종종 이름보다 더 큰 상징성을 갖기도 한다. 민병헌의 상징은 49번이었다. 대형 프리에이전트(FA)계약으로 롯데로 이적한 민병헌은 동기생 배장호를 존중하며 3번으로 번호를 바꿨다. 사진제공 | 롯데 자이언츠

롯데의 일본 오키나와캠프에서 민병헌(31)은 ‘3번’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처음엔 두산 유니폼이 아닌 것만으로도 어색했는데 백넘버까지 바뀐 것이다. 두산에서 민병헌은 49번 유니폼을 입었다. 프로야구 선수에게 등번호는 ‘분신’과 같은 존재감을 갖는다. 자부심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만 봐도 백넘버를 둘러싼 애착은 돈으로 설명할 수 없다. 전설적 투수 로저 클레멘스는 21번 유니폼으로 각인됐다. 이런 클레멘스가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다. 별들이 집결된 양키스에서도 클레멘스는 21번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21번 유니폼은 이미 외야수 폴 오닐의 차지였다. 클레멘스는 “롤렉스 시계를 선물할 테니 21번을 양보해 달라”고 청했지만 오닐은 거절했다. 결국 클레멘스는 22번을 달고 양키스에서 던졌다.

메이저리그에 비해 서열문화가 강한 KBO리그에서는 선배가 부탁을 하면 후배가 뿌리치기 어렵다. 아무래도 스타 플레이어들에게도 우선권이 있다.

롯데 사이드암 투수 배장호(31)도 그랬다. 5일 오키나와 이시카와 구장에서 만난 배장호는 “학교 다닐 때부터 김병현 선배의 팬이었다. 그래서 49번을 달고 싶었다. 학교에서는 ‘겉멋 든다’는 이유로 큰 번호 유니폼을 못 입게 했다. 그래서 롯데에 와서야 이 등번호를 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롯데 배장호. 스포츠동아DB


그러나 배장호의 49번은 익숙할 만하면, 그의 곁을 떠났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 시절 마해영 선배가 롯데로 오셨다. 선배의 백넘버였는데 내가 계속 49번 유니폼을 입을 순 없었다”고 말했다. 마해영은 2008년, 한 시즌 만 뛰고 롯데를 떠났다. 이제 다시 49번을 되찾겠구나 싶었는데 이번엔 프리에이전트(FA) 타자 홍성흔이 롯데로 왔다.

태산 같았던 홍성흔의 위상을 고려할 때, 배장호에게 49번 유니폼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흘렀고, 정말 간절히 바라던 일은 이뤄지는 법이다. 홍성흔이 두산으로 이적하면서 49번은 다시 배장호의 품으로 돌아왔다. 배장호가 군 입대한 기간, 홍성민이 잠깐 49번을 달았지만 복귀 후 돌려받았다.

배장호는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49번 유니폼을 입을 때, 심적 안정감이 생기는 것 같다”고 웃었다. 실제 2017시즌 배장호는 72경기(66.1이닝) 등판해서 8승1패 6홀드 방어율 4.34를 기록했다. 2006년 데뷔 이래 최고 성적이었다. 처음 억대 연봉(1억3000만원)에도 진입했다.

두산 시절 49번을 달았던 민병헌. 스포츠동아DB


이런 상황에서 ‘49번 경쟁자’ 민병헌이 온 것이다. 배장호는 지난해 11월말 납회 때 큰마음을 먹었다. 처음 롯데 선수단에 합류한 민병헌에게 ‘왜 내가 49번을 계속 달았으면 하는지’를 부탁했다. 진심을 접한 민병헌은 선뜻 “그럼 내가 다른 번호를 달겠다”고 답했다. 그런 배려 속에서 ‘롯데 3번 민병헌’이 탄생한 것이다. 남자들 사이에서 많은 말은 필요 없었다. 민병헌의 양보와 배장호의 고마움 사이에서 팀 롯데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오키나와(일본)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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