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말’이 ‘사실’이 되는 비겁한 현실…설경구, 세상을 향하다

입력 2013-04-02 12: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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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동아닷컴DB

설경구. 동아닷컴DB

#2013년 4월1일 밤, TV 속.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의 ‘설경구’ 편.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내 송윤아와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는 사이, 카메라는 설경구의 손을 클로즈업했다.

언제 봐도 그의 손은 참 두텁다. 그리고 투박하다.

기자는 2000년 말 영화 ‘단적비연수’의 주연배우였던 설경구와 처음 대면했다. 물론 인터뷰를 위해서였다.

골프를 치느냐는 질문을 왜 던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운동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휘휘 내젓는 그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그해 1월1일 개봉한 영화 ‘박하사탕’ 속 ‘착한 손’이 그의 것임을 단박에 알았다.

영화 속에서 설경구는 이미 험악한 현실에 타협하기 시작한 경찰 초년병으로서 위악을 떨었다. 자신에게서 고문을 당한 노동운동가의 공포 가득한 똥냄새는 손에 잔뜩 묻어 악취를 풍겨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손을 바라보는 첫사랑의 여자는 “손이 뭉툭하고 못 생겼는데, 참 착할 것 같은 손”이라고 말했다.

첫사랑 앞에서 그는 기어코 위악을 떨고 만다. 그리고는 “참 착하지 않으냐”며 자신의 손을 펼쳐 보이고 또 쉽게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 손을 바라본다. 영화 속 그 위악의 미소는 여전히 명징하다.

‘박하사탕’은 그렇게 설경구를 상징하는 또 한 편의 작품으로 남았다.

영화 속 드러난 그의 투박한 손은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TV 속 또 다시 클로즈업됐다. 그 투박함은 여전했다.


#2013년 4월2일 새벽

차창을 소곤소곤 두드리며 흩뿌리는 봄비의 방울을 걷어내는 와이퍼가 삐거덕거리며 갈 길을 훤히 드러내 보여준다.

하지만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의 설경구가 남긴 여운은 미처 걷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설경구는 단 한 마디 말을 하고 싶어서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나왔다고 말했다.

매니저에 따르면 설경구는 이미 6개월 전 제작진의 출연 요청을 받고 오랜 시간 고민했던 터였다. 송윤아가 손편지를 통해 남편에게 전한 “카메라 앞에서 얼마나 진땀을 빼고 있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다”는 말은 진심이고 사실이었다. 적어도 오랜 시간 설경구를 보아온 기자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설경구는 단 한 마디 말을 하고 싶어서 출연했다고 밝혔다.

“미안하다.”
“나라는 사람이 그냥 상처를 주고 사는 것 같다.”

그 상처를 감당해야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아내 송윤아 그리고 가족들을 향한 “자책”과 “미안함”에 그는 눈물을 흘렸다.

송윤아와 결혼을 발표했던 2009년 4월, 축하 인사를 겸한 인터뷰 요청 전화에 설경구는 무척이나 쑥스러워하며 당혹스러워했다. 쏟아지는 관심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사실 내 처지로 보면 (송윤아와 결혼은)언감생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끝까지 고민했다. 내가 너무 뻣뻣한 성격이기도 하니까. 진 빚 갚으며 잘 살겠다.”

이 칼럼을 통해 송윤아와 결혼에 얽힌 온갖 헛말을 새삼 옮기고 또 방송 내용을 다시 반복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의 말대로 무수히 많은 “(헛)말은 말로 통”했고, 말이 말을 “재생산하는 상황”에서 헛말은 기어이 사실처럼 들려오곤 했다.

헛말이 사실이 되고야 마는 ‘비겁한’ 현실 속에 설경구는 놓였고 또 한동안 놓일지도 모른다.

그는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나가지 않더라고도 힘겹게 털어놓았다.


#2012년 12월의 어느 날 밤.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

지인들과 식사를 하다 낯익은 얼굴을 봤다. 그룹 JYJ의 김재중이었다. 그 역시 주위 사람들과 조용히 식사 중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기려 식당을 나서던 차에 설경구가 들어섰다. 그의 곁에는 여고생쯤 되는 소녀가 서 있었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주고 받는 사이 설경구는 자신의 딸이라며 소녀를 가리켰다.

어느새 부쩍 자라 소녀는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기자는 설경구에게 “(공부시키려면)돈 더 많이 벌어야겠다”며 농담처럼 인사를 건넸다. 설경구는 “벌어야지”라며 멋쩍게 웃었다.

설경구는 “(김)재중이를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딸이 JYJ의 열렬한 팬이라며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했던 그의 말 역시 사실 그대로이다.

딸과 함께 저녁을 먹고 마침 인근에 딸이 열광하는 스타가 있다는 말에 설경구는 내친 김에 달려온 것이었다.

아마도 그날 설경구와 딸은 김재중과 길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담소를 나눴을 것이다.

딸이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 설경구는 그렇게 기꺼이 시간을 냈다.

설경구는 그저 그렇게 평범한 아빠였다.

설경구는 방송에서 행복에 대한 생각을 묻자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찾아야 한다”면서 “찾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여전히 투박하지만 진심으로 들려왔다. 오랜 시간 그를 보아온 기자에게는 또 그렇게 들렸다.

스포츠동아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tadada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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