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죽여주는 여자’ 윤여정 “촬영 내내 감독 욕만…”

입력 2016-10-04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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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은 올해로 연기 생활 50년을 맞고 있다. 그 사이 자신이 원하는 감독과 작업해 대표작이 될 만한 또 한 편의 영화를 내놓는다.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 영화 ‘죽여주는 여자’ 윤 여 정

몸 파는 할머니들의 처연한 삶
배우로서 할 수 있는 ‘보시’같은 영화
이재용 감독? 미우나 고우나 밥 친구


배우 윤여정(69)은 “예순이 넘고 나서 사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의 ‘사치’는 조금 남다르다. 돈을 마음껏 쓰겠다는 1차원적인 결심이 아니다. 배우라는 직업에 충실하겠다는 다짐,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하고픈 연기를 하겠다는 결단이다.

“환갑 전까지 돈을 열심히 벌었다. 그래야 했다. 내 임무를 완수한 순간, ‘이제 사치스럽게 살리라’ 결심한 거다. 좋아하는 작가, 감독과 마음껏 작업하는 일이 내겐 사치다.”

그렇게 따지면 6일 개봉하는 ‘죽여주는 여자’(제작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윤여정의 ‘사치심’이 극에 달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노년에 이른, 처연한 한 여인의 삶을 이처럼 쓸쓸하게 그려낼 배우가 또 있을까. 윤여정의 대표작으로 남을 영화다.

‘죽여주는 여자’는 몸을 파는 할머니, 소위 ‘박카스 할머니’로 불리는 소영의 이야기다. 한 때 자신을 찾았던 ‘손님들’이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에 함께 마음 아파하던 그는 끝내 영화 제목처럼 손님들의 죽음을 돕는다.

윤여정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지 않아도 될 일을 (영화로)경험해 버렸다”고 했다.

“내가 인권운동가는 아니지만 배우로서 ‘보시’라는 게 있지 않을까. 영화가 회자된다면 소영이 겪는 문제가 실제로 해결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힘겨운 작업이었지만 영화는 윤여정에게 성과를 안겼다. 8월 캐나다에서 열린 제20회 판타지아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도 그 중하나다. “시상식에 가지 않았는데 상을 주는 걸 보니, 그 영화제 참 공정하구나 싶었다”고 웃던 윤여정은 “촬영 초반에는 우울증이 심했다”고 돌이켰다. 가상의 상황과 허구의 인물을 연기하는 일이 배우의 숙명이라고 해도 이번엔 달랐다. 상황을 극복한 방법은 뜻밖이다.

“연출자 이재용 감독 욕하는 걸로 풀었다.(웃음) 뒤에서 욕할 필요도 없지. 뭐가 무서워서.”

배우 윤여정.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윤여정은 최근 10년간 이재용 감독을 비롯해 임상수, 홍상수 감독과 주로 작업해 왔다. 작품세계가 확실한 감독들과 협업은 그가 작심한 ‘사치’의 일환. 그래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더 가는 감독과 덜 가는 이가 나뉜다.

“가장 잘 맞는 사람은 임상수 감독이다. 이재용과는 늘 논쟁한다. 주변에선 우리더러 ‘장소팔과 고춘자’(만담 커플) 같다던데. 요즘 사람들이 누군지 알까 몰라.”

말은 이렇게 해도 이재용 감독과 벌써 3편을 함께 했다.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 이런 의견에도 윤여정의 반응은 일관된다.

“이재용의 뭘 보고 믿어?”

그런데도 왜 다시 함께 했을까.

“우리는 밥 친구이다. 독거노인 비슷한 사람에게 같이 밥 먹어주는 사람이 제일이다. 함께 영화 보는 영화 친구이기도 하고. 그래서 헤어지질 못한다. 자주 함께 있다보니 이재용이 내 컨디션을 가장 잘 안다. 충분히 쉬었다 싶은 타이밍에 시나리오를 건네더라.”

이재용 감독과 논쟁은 영화의 결말을 두고도 계속됐다. 서로 원하는 내용이 달랐기 때문이다. 결국 감독의 뜻에 따랐다. 윤여정은 “감독들은 원래 배우 말은 절대 듣지 않는다”고 했다.

“영화를 본 소설가 김영하가 이런 말을 하더라. 소영은 늘 사람을 상대하지 않느냐, 결말 부분에서 혼자 밥을 먹는 소영의 모습이 성스럽기까지 하다고. 김영하가 ‘구라’를 잘 푸는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하하!”

윤여정은 올해 연기를 시작한 지 50년을 맞았다. 도전은 계속된다. 최근에는 라나·앤디 워쇼스키 감독의 미국드라마 ‘센스8’ 시즌2 촬영을 마쳤다. 세계 안방극장에까지 진출한다.

“‘센스8’ 찍고서 할리우드 진출은 힘들어서 포기했다. 한 장면 촬영하러 베를린 가고, 대본 연습하러 또 베를린 가고. 너무 힘들어!”


● 배우 윤여정

▲1947년 6월19일생 ▲한양대 국문과 중퇴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 ▲1971년 영화 ‘화녀’로 스크린 데뷔,시체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1972년 영화 ‘충녀’ 주연, 같은 해 드라마 ‘새엄마’로 인기 ▲1984년 10년의 미국 생활 마무리, 연기 복귀 ▲2003년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으로 스크린 활동 재개, 대한민국 영화대상 여우조연상 ▲2012년 영화 ‘돈의 맛’·‘다른 나라에서’로 제65회 칸 국제영화제 동시 경쟁부문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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