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국의사커에세이]“한국선수영입안해”…이천수후폭풍

입력 2009-07-03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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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7회 연속 본선 진출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난데없는 이천수의 이적 파동으로 축구계의 불쾌지수가 높아가고 있다.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이적 당시 울산 현대의 대리인 자격으로 구단 간 이적 협상을 진행했던 필자로선 ‘이천수’란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릴 때마다 왠지 ‘자라보고 놀란 가슴’ 마냥 마음 한구석이 편치 못하다. 어떤 배경에서 사우디 이적 건이 터져 나왔으며, 강제이적 옵션의 조작여부, 이후 진행되고 있는 선수와 전 에이전트 간의 위약금 떠넘기기 공방은 내가 왈가왈부할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잇단 악수로 사면초가에 놓여있는 선수 측이 이번 파동의 진원지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놀라운 것은 아직도 ‘연봉이 얼마 이상이면 선수의 의사와 무관하게 구단이 이적을 추진할 수 있다’는 식의 이면합의가, 특히 유럽구단과의 합의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선수나 대리인, 혹은 구단이나 언론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를 좌절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이러한 ‘인식의 후진성’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이름을 걸고 국제 이적을 한번이라도 진행해본 에이전트나 구단이라면 이러한 옵션 자체가 얼마나 무식하고 말도 안 되는 것인가를 알고도 남는다.

FIFA의 기본 정신은 어떤 경우에든 선수보호가 먼저다. 페예노르트가 마지못해 문서를 전남에 보내면서도 두루 뭉술한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던 까닭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칼럼의 관심사는 이천수의 이적과정이 옳은가 그른가에 있지 않다. 페예노르트 이적 후 현지에서 쏟아지는 비난에 덩달아 마음을 졸였던 사람으로서, 그의 이적행보가 또다시 한국축구에 ‘불행의 씨앗’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 그것이 오늘의 화두다.

이천수가 페예노르트에서 실패한 후, 아니 미스터리 같은 행보로 구단의 버림을 받은 후, 박지성ㆍ이영표 같은 한국산 유럽 리거의 산실을 자부하던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Eredivisieㆍ1부리그)는 사실상 한국축구를 버렸다. 아니, 한국선수들을 경원하기 시작했다. ‘다시는 한국선수를 영입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페예노르트 디렉터 피터 보스의 말은 에레디비지에 구단들은 물론 인근 프랑스까지 메아리가 돼 퍼져나갔다. 이근호의 빌렘Ⅱ 이적이 불발된 이면에는 이 같은 정서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천수의 행선지로 유력한 사우디에서도 만일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두말 할 필요도 없이 향후 한국선수들의 사우디행, 아니 중동행은 급브레이크가 걸린다고 보면 틀림없다. 특히 걸프지역은 정보에 관한 한 한나라나 다름없다. 설기현이 심어놓은 괜찮은 이미지는 한순간에 날아갈 수밖에 없다. 걸프지역에서도 사우디는 특히 적응이 어려운 나라다. 축구 아니면 할 게 전혀 없다. 술도 없고, 여성들은 경기장 출입도 금지다. 끊임없이 뉴스를 몰고 다니는데 익숙한 선수에겐 감옥이나 다름없다. ‘멘털’이 약한 선수는 한 두 달도 버티기 힘든 곳이다.

스포츠 스타는 해외에서 외교관 20명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국가 이미지, 또는 인지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잘못하면 그만큼 순식간에 어두운 이미지를 심을 수도 있다. 이천수의 기량을 아까워하면서도 대륙을 넘나드는 그의 이적행보가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쎈 사장. 스포츠전문지에서 10여 년간 축구기자와 축구팀장을 거쳤다. 현재 이영표 설기현 등 굵직한 선수들을 데리고 있는 중견 에이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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