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가 간다-바이애슬론 체험] 설설 긴 설원의 건맨 “울고 싶어라~”

입력 2010-01-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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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격선수에게 심박수를 안정시키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심지어 맥박수를 낮추는 약물을 복용했다가 도핑에서 걸리는 경우도 있다. 반면, 바이애슬론에서의 사격은 폭풍 같은 질주 이후 이어진다. 사대 앞에서 속도를 줄이다가 벌러덩 나자빠진 전영희 기자(오른쪽). 선수들의 눈초리가 애처롭기만 하다.

대표후보 전훈, 체감온도 영하30도 마음부터 얼고
강풍속 스키 엉덩방아 쿵쿵! 오르막선 제자리 맴맴
사격서 만회해보자! 가쁜 호흡 가다듬고 소총 조준
허공에다 탕탕탕탕…맞힌 한발 알고봤더니 옆표적
낭만의 상징이던 눈(雪)은 군입대 이후 악마의 배설물이 되었다. 오전 내내 제설작업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고 나면, 어느새 연병장을 뒤덮은 하얀 오물. 오후 내내 또 치우고 나면, 밤새 세상은 하얗게 변해있었다. 무한히 반복되는 시지프스의 노동.
그 때 누군가가 말했다. “야, 스키부대에서는 눈을 안 치워도 된대. 도리어 눈이 내리면 제대로 훈련을 할 수 있으니 더 좋은 거지.” ‘월남스키부대’라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되는 얘기란 걸 알면서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TV를 켜니, 동계올림픽 중계방송이 나왔다. 등에 소총을 메고, 안간힘을 쓰며 폴을 움직이는 모습. 군복을 입지 않은 스키부대가 설원을 달리고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바이애슬론 선수들.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바이애슬론에 대한 꿈을 꾼 것이….
2010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2장의 출전권을 획득한 한국 바이애슬론의 미래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2009년 12월19일부터 2010년 1월8일까지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바이애슬론 경기장에서 열린 국가대표 후보 선수 동계강화훈련에 참가했다.


○바이애슬론 선수들은 역전의 명수

들숨 한 모금에 폐부까지 얼어붙는 날이었다. 2009년 12월31일. 한 해의 끝자락에 걸맞는 스산함이 강원도 평창을 감싸고 있었다. 영하 20도를 밑도는 수은주. 아침방송의 기상캐스터는 “강풍으로 인해 강원도 일부지역의 체감온도는 영하 30도에 이른다”고 강조했다.

바이애슬론은 ‘설원위의 마라톤’으로 불리는 크로스컨트리와 사격을 혼합한 경기다. 6∼20km의 거리를 스키로 주행하면서, 주행 중 회당 5발씩 2∼4회 사격을 한다. 표적을 맞히지 못한 경우 개인경기는 1발 당 1분의 주행기록에서 더해지고, 그 외 종목은 150m의 벌칙코스를 추가로 주행한다. 대한바이애슬론연맹 이근로(49) 경기이사는 “바이애슬론이 동계올림픽에서 인기 종목이 된 이유는 특유의 박진감 때문”이라고 했다.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들 사이에서는 10km에서 1분을 앞서는 것도 쉽지 않다. 1분이면 400m를 날아갈 수 있는 시간. 단 한 발의 실수로 메달권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스케이팅 주법으로 설원 위 걸음마


빨리 총을 잡아보고 싶었지만, 걸음마부터. 대중화된 알파인 스키와는 달리 바이애슬론의 스키 플레이트는 폭이 좁고 가볍다. 이동성이 중요하기 때문. 내려오기만 하면 되는 알파인과는 달리, 바이애슬론은 내리막은 물론 평지와 오르막까지 통과해야 한다.

이근로 경기이사는 “바이애슬론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스포츠”라고 했다. 이미 노르웨이의 5000년 전 동굴벽화에서는 스키와 무기를 들고 사냥하던 모습을 볼 수 있다. 생존을 위해 험난한 대지를 누비던 것이 바이애슬론의 원형.

바인더에 부츠를 밀어 넣고, 적막한 동토(凍土)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근로 경기이사는 스케이팅 주법을 전수했다. 플레이트를 V자로 놓고, 스케이트를 타듯 전진하면서 폴로 지면을 미는 기술. 80년대 초반 탄생한 스케이팅 주법은 뛰어난 스피드 때문에 보편적인 주행기술이 됐다.

스케이트를 타듯, 외발로 잠시 버텨야 하는 시점이 고비다. 강풍과 함께 안면을 때리는 눈보라는 중심잡기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엉덩방아를 수차례. 이근로 경기이사는 “중심을 더욱 낮추라”고 주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왜 저는 중심을 낮춰도 넘어지나요?”, “이미 몸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중심을 낮춰봐야 넘어지기 밖에 더하겠어요?”



○오르락내리락, 언제나 제자리걸음

주행훈련의 마지막은 오르막 도전. 장광민(21·경기도연맹)은 “선수들도 가장 힘들어하는 코스”라며 겁을 줬다. 언덕의 시작점. 옆에서는 선수들이 기합소리를 터보엔진 삼아 날아올랐다. 보통 20km 경기가 55분 이내에 승부가 나니, 마라톤 선수가 뛰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

오르막을 지날 때는 V자를 더 넓게 벌려, 뒤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포인트다. 하지만 역바람까지 겹쳐 한 발을 떼면, 또 한발이 뒤로 밀리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오르락내리락 제자리걸음. 이것 역시 제설작업 못지않은 시지프스의 노동이다.

점점 하체에는 힘이 빠졌다. 20km 코스에는 오르막이 여러 차례. 웨이트트레이닝과 사이클 등으로 몸을 다져야 난코스도 거뜬하다. 김서라(17·전북안성고)는 “여자선수들은 굵은 다리가 콤플렉스”라며 웃었다.

“잠시 휴식”이라는 반가운 소리. 실내로 들어가자, 선수들의 몸에서 모락모락 김이 났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이광로(19·포천일동고)는 “귀, 발가락, 손가락 동상 경험은 다 있다”고 했다. 난로에 몸을 녹인 뒤, 소총을 멨다. 본격적인 사격훈련이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명사수

50m에서 입사 또는 복사로 표적을 맞히는 소총사격은 명중 순간, 표적이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바뀐다. 표적의 지름은 입사 115mm, 복사45mm. 세계정상급 선수들도 총 20발 가운데 1∼2발은 놓칠 정도로 애를 먹는다. 이유는 스키 주행으로 호흡이 가빠진 상태에서 사선에 서야하기 때문이다. 스키 주행 중 보통 심박수는 분당 170∼180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사격 시에는 분당 120∼130까지 심박수를 떨어뜨려야 한다. 보통, 선수들은 사선 100∼200m 지점에서 속도를 줄여 심박수를 낮춘다. 이 때 심폐지구력과 회복력이 우수하다면, 보다 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바이애슬론 선수들은 러닝과 인터벌 트레이닝 등 심폐기능을 향상시키는 유산소성 훈련을 많이 한다.

스키주행에는 이제 재미가 들렸다. 눈오는 날 강아지처럼 경기장을 누빈 뒤 표적 앞에 섰다. 강렬한 신체적 고갈. 하지만 이제 섬세한 컨트롤과 안정성이 필요하다. 정(靜)과 동(動). 모순적 신체상태를 의지대로 조절하는 경지에 다가서야 한다.

입사. 숨을 고르려는데 너무 추워서 몸이 떨린다. ‘탕.’ 아직도 표적은 검은색. 또 ‘탕.’ 또 검은색. 바람에 몸이 다시 흔들린다. 이제 5개의 표적 중 어느 것을 조준하는 지도 모르겠다. 4번째 발. 5개중 맨 오른쪽 표적의 색이 바뀌었다. 하지만 마지막 발은 또 다시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기록에서 4분 추가. “사격에는 소질이 있는 모양”이라는 이근로 경기이사의 칭찬에 어깨를 들썩이며, 훈련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찜찜한 마음 한 구석. 이제야 털어 놓는다. 사실, 4번째 발은 맨 오른쪽에서 2번째 표적을 조준한 것이었다. ‘헉헉’ 거리다 조준점이 흐트러져,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듯’ 옆 표적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평창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평창 |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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