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율화의 더팬] 에이스의 맞대결이 그립다

입력 2011-08-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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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가 재미없다. 이렇게 말하면 나를 아는 사람들은 심각하게 아픈 것 아니냐고 묻지만, 어쨌든 야구가 재미없다. 아니, 재미보다는 그 옛날의 야구에 비해 열정과 감동이 덜하다고 해야겠다. 어쩌다 라디오 중계만 있어도 무릎이 떨리도록 황감했으며, 3분에 한번씩 700으로 시작하는 ARS 번호를 눌러 대고, 아침마다 300원짜리 스포츠 신문을 사던 그 시절의 열정이 이제는 없다.

어쩌면 옛날 야구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많은 것들 때문이리라. 연습생 출신의 타자가 홈런왕이 되는 신화, 혜성처럼 나타나 멋지게 시즌을 정복하는 신인, 무명의 타자가 최고의 에이스를 보기 좋게 무너뜨리는 드라마, 그리고 ‘에이스의 맞대결’이 사라졌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에이스의 맞대결은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떨리게 했던가. 염종석과 정민철, 선동열과 송진우, 김상엽과 이대진, …. 쟁쟁한 별들이 서로 맞붙는 날이면 양 팀 팬들의 신경전이며 감독 및 선수들의 각오 또한 대단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멋진 에이스의 맞대결은 1995년 LG 이상훈과 OB 김상진의 승부이리라. 암표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매표소 앞은 텐트로 장사진을 이루었던 최고의 이벤트.

20승 재목으로 손꼽히던 두 투수는 그해 세 번의 맞대결을 펼쳤고 결국 모두 이상훈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매번 피하지 않고 맞붙은 김상진과 OB 김인식 감독의 뚝심 역시 높이 살 만했다. 그 뚝심으로 OB는 결국 그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으니, 영화로 치면 ‘록키’에 버금가는 기승전결이다.

이제 에이스의 맞대결은 없다. 아니, 에이스가 거의 없다. 6이닝을 넘긴 선발투수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감독들은 기다려주지 않으며, 투수는 불펜을 바라본다. 게다가 리그에 몇 안 되는 에이스들의 맞대결은 패배 이후에 받을 타격을 걱정하는 감독들의 배려로 성사되지 않는다. 류현진과 김광현, 그리고 윤석민과 김광현의 맞대결은 과연 우리 시대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을까?

기술과 분업과 데이터 분석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한국의 프로야구. 하지만 야구팬이 바라는 것은 다만 ‘발전’이 아니다.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 하나에 내 심장도 같이 떨어졌다 붙었다 하던 그 시절의 가슴 떨림이 나는 못 견디게 그립다. 영웅과 드라마가 없던 시절, 내게 힘을 준 건 바로 우리 야구의 영웅들과 드라마였으니 말이다.

[여성 열혈 아구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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