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진 “오빠 같은 선수 될래요”… 양동근 “나보다 더 잘해야지”

입력 2015-04-1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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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스 양동근(왼쪽)과 우리은행 박혜진은 2014∼2015시즌 남녀프로농구에서 정규리그-플레이오프 통합 MVP(최우수선수)를 차지했다. 프로농구 역사상 남녀 모두 통합 MVP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남녀프로농구 통합 MVP, 양동근·박혜진의 유쾌한 수다

모비스 양동근(34)과 우리은행 박혜진(25)은 남녀프로농구의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유재학(52·모비스), 위성우(44·우리은행) 감독의 지도 아래 리그 최고의 선수로 성장했다. ‘명장의 손길’을 거친 둘은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이들은 팀 우승과 함께 나란히 정규리그-플레이오프 통합 MVP(최우수선수)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남녀프로농구에서 동시에 통합 MVP가 탄생하기는 2014∼2015시즌이 처음이다. 양동근과 박혜진을 함께 만나봤다.


● 모비스 양동근
정규리그 MVP만 세 번째…유 감독님 덕
긴 출전시간? 선수는 뛰어야 행복합니다

● 우리은행 박혜진
AG 땐 부상으로 휴식만…언니들에 미안
정규리그 MVP 받고 챔프전서 힘냈어요



-우승과 MVP 수상을 축하한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두 선수에게 감독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유재학, 위성우 감독은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사령탑으로 이름 나 있다. 어떻게 버텼는지 궁금하다. 제일 힘들었던 때를 꼽는다면.


▲양동근(이하 양)=아무래도 신인 때(2004∼2005시즌)가 가장 힘들었다. 감독님 밑에서 처음 운동을 하는 것이라 스타일을 알아가야 했고, 받아들일 것도 많았다. 신인이라 내 플레이를 하기도 급급한데, 우리 팀 외국인선수들이 어디서 볼을 잡는 것을 좋아하는지 등의 성향을 다 알아야 해서 무척 힘들었다.


▲박혜진(이하 박)=감독님이 처음 오셨을 때(2012년)였다. 그동안 해왔던 훈련 스타일을 모두 바꿔야 했다.


-우리은행은 훈련이 힘들어서 도중에 그만둔 선수도 많지 않나.


▲박=맞다. 하지만 나는 운동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다. 다만 처음에는 너무 많이 혼나다보니 기가 죽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심리적인 부분에서 더 힘들었다.


-출전시간이 엄청 많은 편인데, 감독님께 너무하다 싶을 때는 없었나.


▲양=전혀. 선수는 뛰어야 행복한 것 아닌가. 출전시간을 두고 불만을 갖는 것은 선수의 도리가 아니다. 언제까지 팀의 주축선수로 뛸 수 있을지 모른다. 40분을 풀로 뛰면 행복한 것 아닌가.


▲박=챔피언 결정전 1∼3차전을 40분 풀로 뛰었다. 3차전 막바지에는 점수차가 좀 벌어져서 바꿔달라고 벤치에 사인을 보냈는데 안 바꿔주시더라.(웃음) ‘뛸 수 있을 때 많이 뛰어야한다’고 하시더라.


-양동근에게 유재학 감독, 박혜진에게 위성우 감독이 없었다면?


▲양=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정규리그 MVP를 세 번 받았는데, 감독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상은 은퇴할 때까지 못 받았을 것이다.


▲박=마찬가지다. 위성우 감독님을 만나고 난 뒤에 주변에서 ‘농구가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표팀에서도 소속팀 감독과 함께했다. 솔직히 지겨울 때도 있지 않았나.

▲양=
익숙한 훈련을 했기 때문에 괜찮다. 주장으로서도 편했다. 감독님이 뭘 원하는지 동료들에게 알려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역할에 따른 움직임에 대해 후배들이 헷갈려할 때도 내가 짚어줄 수 있고….


▲박=감독님의 운동스타일을 잘 알고 있으니까 다른 팀 언니들한테 말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대표팀에 막내로 들어간 입장이어서 언니들을 대하기가 어려웠는데, 훈련 때 이야기를 하면서 평소 생활 때도 쉽게 언니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대표팀에서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모두 금메달을 땄다.


▲양=금메달을 딴 순간은 무척 행복했지만, 새 시즌에 들어갈 때가 너무 힘들었다. 긴장이 풀어지니 경기력이 나오지 않았다. 그 때 감독님이 동기부여를 통해 마음을 바로잡아주셨다. ‘KBL 최초의 챔프전 3연패’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고, 내가 경기력이 떨어질 때마다 전술에 변화를 줘서 부담을 덜어주셨다.


▲박=아시안게임 때 부상 때문에 운동을 많이 하지 못했다. 감독님이나 언니들에게 미안했다.


▲양=맞다. 혜진이는 대표팀에서 푹 쉬었다. 여자 팀 훈련을 잠깐 보고 있으면 혜진이는 자전거 타고 있더라.


▲박=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부상을 당해서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감독님이 마음을 잘 잡아주셨다. ‘마음 급하게 먹지 말라’며 위로해주셨고, 시즌에 앞서서도 자신감을 심어주셨다.


-박혜진 선수 또래들은 대부분 세계선수권대회(터키·2014년 9월)에 나갔다.


▲박=대표팀 소집 때 솔직히 인천아시안게임보다는 세계선수권에 나가고 싶었다. 세계무대에 나설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 감독님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다’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포함시키더라.


▲양=위 감독님이 너 군대 면제 시키고 싶었나본데.(웃음)


▲박=하하하. 그런데 세계선수권 나갔다온 선수들이 전부 실력이 늘어서 왔다. (이)승아(우리은행)도 그랬고. 남자팀은 농구월드컵(스페인·2014년 8월) 나갔다 와서 분위기가 완전히 다운됐던데….


▲양=센터들은 좀 나았는데 나, (김)태술(KCC)이, (조)성민(kt)이 같은 외곽선수들은 엄청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농구를 왜 했나’ 싶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충격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는 데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다. 세계무대에 나가서 부딪쳐 봐야 한다.


-MVP라는 큰 상을 받았다. 그것도 통합 MVP다.

▲양=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정규리그 MVP고, 통합 MVP는 두 번째다. KBL 기록이라고 하니 영광스럽다. 나 혼자 잘해서 탄 상이 아니다. 좋은 팀 동료, 코칭스태프를 만났기 때문에 이룰 수 있는 영광이다. 언제 또 이런 영광을 누려보겠는가. 그래서 시상식(14일) 때도 두 아이를 함께 데려갔다.


-박혜진 선수는 정규리그 MVP를 받고 울기도 했다.


▲박=(임)영희(우리은행) 언니가 될 줄 알았는데 내가 받게 돼서 깜짝 놀랐고, 언니한테 너무 미안했다. 다같이 고생했는데 나만 상을 받는 기분이랄까.


▲양=네가 잘해서 받은 거니깐, 동료들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줬을 걸. 미안해할 것 없다. 동료들한테 더 고마워하고, 더 책임감을 갖고 경기하면 된다.


▲박=오빠 말이 맞다. 정규리그 MVP를 받고 책임감이 많이 생겼다. 지난해 정규리그 MVP를 받을 때는 부담도 되고, 사람들이 ‘박혜진 얼마나 잘하나 보자’라는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아서 걱정이었다. 이번에는 챔프전을 뛸 때 동기부여가 정말 많이 됐다.


▲양=네 나이가 스물다섯이던가.


▲박=우리 나이로 스물여섯이다.


▲양=스물여섯에 정규리그 MVP 2연패면, 앞으로 엄청 타겠다.


▲박=더 잘해서 오빠 같은 선수가 되겠다.


▲양=나 같은 선수가 아니라 훨씬 더 좋은 선수가 되어야 한다.

정리|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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