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18.44m] 김성근, 우리들의 일그러진 아큐

입력 2016-09-0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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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김성근 감독. 스포츠동아DB

# 인간(人間)을 풀어쓰면 ‘사람 사이’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사람다울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 맥락에서 영웅 혹은 초인도 결국 그 시대의 구성원들이 필요에 의해 만드는 것이다. 유한적 인간이 초월적 존재가 되는 것은 결코 개인의 역량으로 이뤄질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인간은 어쩌다 한번 영웅의 지위에 도취되면 자기가 잘 나서 이 세상이 움직인다고 과신하고 싶어 한다. 일시적 성공의 방식을 또 적용하려 든다. 그러다 파멸한다. 이런 비극은 역사의 귀결이다.

# 한화 김성근 감독이 자주 쓰는 레퍼토리가 “김성근이니까 당한다”다. ‘왜 나만 가지고 이러느냐’다. 그런데 정작 이 질문은 언론이 아니라 자신한테 할 말이다. ‘대체 세상은 왜 그럴까?’ 김 감독의 말과 글을 접하면 일관되게 추구하려는 미학(美學)이 엿보인다. 신념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비장미다. 문제는 김성근의 사고체계가 나름 완결적이지만 극도로 편협하다는 데 있다. 어려운 말로 ‘도그마’, 즉 독단적인 신념이자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비판과 증명을 허용하지 않는 교리에 가깝다. 결국 김 감독은 자기 영업의 자유에 해를 끼친다고 판단하면 사정없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 이 폭력성의 반작용이 지금 ‘김성근 때리기’의 본질이다. 그 결과 김성근이 평생에 걸쳐 쌓아올린 권위는 해체됐고, 희화화되고 있다.

한화 김성근 감독. 스포츠동아DB


# 김성근이 극복해야할 적은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음은 멀리 갈 것도 없이 김 감독의 분신과 같은 아들 김정준 코치가 썼다는 ‘김성근 그리고 SK 와이번스’라는 책에 있다. 이 책에서 김정준은 “지금까지 맡았던 팀 중에서 최악이야. 이 선수들 데리고 어떻게 야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김성근의 말을 담았다. 이 팀은 2006년 겨울 SK였고, 김 감독에게 이런 ‘형편없는’ 팀을 넘겨준 ‘무능한’ 지도자는 제자 조범현 감독(현 kt 감독)이었다. 이러고도 이 부자(父子)가 조 감독 얼굴을 무슨 낯으로 보는지 범인(凡人)의 짐작으로는 헤아릴 길이 없다. 이렇게 자기들 이익만 챙기려니까 ‘왜 NC 김경문 감독은 퇴장시키지 않느냐’, ‘넥센 염경엽 감독의 혹사는 지적하지 않느냐’고 따질 수 있을 터다. 나아가 김정준은 그 책에서 “SK 야구가 재미있고, 없고는 야구를 보는 눈의 차이 때문”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전했다. 그러니까 ‘김성근 야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야구 보는 눈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현대판 아큐의 정신승리가 따로 없다. 세상에서 관용할 수 없는 가치가 딱 하나 있다. 바로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 불관용이다. 이 부자(父子)가 딱 여기에 해당한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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