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마을] 풍랑에 남편 잃은 각시여, 등대섬 돼 뇌섬 밝히네

입력 2017-09-14 05:45:00

고흥군 봉래면 사양마을 앞바다는 마치 호수같이 잔잔하다. 현재는 등대섬이 된 각시여(작은 사진)와 뇌섬 사이에 흐르는 바다 물 아래로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녀의 애틋한 사랑이 흐르고 있다. 고흥(전남)|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⑨ 사양마을 ‘각시여와 뇌섬 설화’

혼례 치르고 섬마을 향하던 중 강한 풍랑
돌섬에 남은 신부, 파도에 떠내려간 신랑
바람 불때면 두 섬 사이에서 노 젖는 소리
신랑이 노 저으며, 신부에게 가는 것이랴


오랜 세월 척박했던 땅. 그만큼 사람들의 세상살이에 대한 의지는 강했다. 강하고 질긴 태도와 능력으로써만 세상은 살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이야기는 쌓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산한 삶을 이어가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밝고 슬프고 아름답고 비극적이어서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 설화는 그렇게 오래도록 쌓여 전해져오고 있다. 전남 고흥군을 다시 찾는 이유다. 지난해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고흥의 이곳저곳 땅을 밟으며 다양한 이들을 만난 스포츠동아는 올해에도 그곳으로 간다. 사람들이 전하는 오랜 삶의 또렷한 흔적을 확인해가며 그 깊은 울림을 함께 나누려 한다. 매달 두 차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고흥군 봉래면 사양리의 사양도는 면적 0.78 km2, 해안선 길이 4km에 달하는 작은 섬이다. 뇌섬 또는 노섬으로 불리는 사양도는 선창마을, 사양마을 두 개의 마을로 이뤄져 있다. 섬의 북쪽에 자리한 사양마을 앞바다에는 각시여라 불리는 작은 돌섬(여)이 있다. 뇌섬과 각시여 사이에는 살아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두 남녀의 애틋한 사연이 흐르고 있다.



● 각시여와 뇌섬,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

섬마을 총각이 바다 건너 작은 마을의 처녀와 사귀었다. 사랑이 무르익어 둘은 결혼을 약속했다. 총각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처녀의 존재를 알리고 결혼승낙을 청했다. 같은 마을 진사 댁 처자와 결혼시키고 싶었던 어머니는 못마땅했다. 더욱이 처녀의 집안 형편이 별로 좋지 않았다. 총각은 “결혼만 허락해 주신다면, 공부 열심히 해서 꼭 벼슬길에 오르겠다”고 약속했다.

평소 장사꾼이 되겠다고 고집을 피우던 아들이 공부를 하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흔들렸다. 마지못해 허락을 하는 대신 조건 하나를 걸었다.

“용하다는 무당에게 너희들의 궁합을 볼 것이다. 궁합이 안 좋으면 깨끗이 포기해야 한다.”

총각은 조건을 수용했지만, 궁합이 안 좋게 나온다면 큰일이었다. 무당을 찾아갔다. 어머니 먼저 궁합을 보려는 심산이었다. 사주를 풀어보던 무당은 총각을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둘은 아니야. 같이 붙어서 살 팔자가 못 돼.”

총각의 가슴은 무너졌다. 같이 살 팔자가 못된다는 말은 총각을 절망에 빠트렸다. 그러나 무당의 한 마디에 처녀와 헤어질 수는 없었다. 설사 그럴 운명이라도 이겨내야 했다.

“우리 어머님이 찾아오시거든 제발 좋은 인연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총각은 무당에게 간청했다. “거짓을 말할 수 없다”는 무당에게 거액을 주고 다시 청했다. 무당은 흔들렸다.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정말 후회 안 하겠소? 둘은 같이 있지 못하고 서로 바라만 봐야 하는 안타까운 인연인데….”

무당의 “좋은 인연”이란 말에 총각의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아들의 결혼을 허락했다. 총각은 처녀가 사는 마을로 가서 혼례를 치르고, 신부와 함께 섬으로 되돌아오기 위해 배를 탔다. 역경을 이겨내고 곡절 끝에 혼례를 치른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들 딸 낳고 잘 살아봅시다.”

배가 신랑의 섬마을로 향하던 중 갑자기 심한 풍랑이 일었다. 배는 요동쳤다. 신랑은 문득 “서로 바라만 봐야한다”는 무당의 말이 생각났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린 영원히 함께 하는 거요.”

총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대한 파도가 배를 덮쳤다. 부둥켜안고 있던 신랑과 신부는 그대로 물속으로 빠졌다. 신부가 물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신랑은 마침 옆으로 떠내려가는 노를 발견했다. 그 노에 의지해 앞에 보이는 작은 돌섬으로 헤엄쳤다.

힘들게 돌섬 위로 신부를 밀어올린 신랑이 거친 숨을 고르던 순간, 다시 거대한 파도가 신랑을 덮쳤다. 놀란 신부가 옆에 있는 노를 던졌다. 신랑은 가까스로 노를 잡았지만, 신부를 돌섬으로 밀어 올리느라 힘을 소진해 파도에 힘없이 휩쓸려 떠내려가고 말았다.

신부는 돌섬에 앉아 떠내려가는 신랑을 보며 울부짖었다. 신랑은 끝내 물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풍랑이 멈추고, 섬마을엔 평화로운 바람이 불었다. 신랑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잡고 있던 노가 신랑이 살던 마을 앞 바다에서 발견되었다. 신부는 그 돌섬에서 하염없이 신랑을 그리며 울다가 그대로 죽어버렸다. 이후 그 돌섬은 각시여로 불렸다. 노가 떠밀려간 마을은 뇌섬(노섬)이 됐다.




● 섬과 바위가 되어, 영원히 둘이서

사양도는 내나로도와 외나로도 사이 해협을 마주보고 있다. 사양도의 동쪽 바다는 네 갈래의 물길이 만나는 곳이다. 수심이 깊고, 물살이 세다. 과거 일제가 어종이 풍부한 이 곳의 수산물을 수탈하기 위하여 나로도항을 개발했다. 지금도 사양도의 동쪽 바다는 물길이 험하다. 사양마을 앞을 지키는 각시여는 현재 등대섬이 돼 고깃배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사양도가 한눈에 보이는 외나로도항 진기마을 임선심(여·70) 씨는 “각시여가 있는 그 바다는 물길이 험해, 처녀들이 그 섬마을로 시집가는 길에 많이 죽었다대. 그래서 거기다 등대를 세워놓은 것이야”라고 말했다.

각시여에 얽힌 슬픈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지금도 바람 부는 날이면 각시여와 뇌섬 사이에서 노 젓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한다. 이들은 “신랑이 바람에 치는 파도를 노로 저으며 신부에게 가는 것”이라 여긴다. 신랑, 신부가 영원히 함께 하자던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설화 참조 및 인용: ‘각시여와 뇌섬의 슬픈 언약’ 안오일, ‘고흥군 설화 동화’ 중


■ 설화란?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구전(口傳)돼 내려오는 이야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한다. 일정한 서사의 구조를 갖춰 민간의 생활사와 풍습, 권선징악의 가치 등을 담은 이야기다.

고흥(전남)|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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