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p Of Life] ① 김호곤 전 축구협회 부회장 ‘1986 멕시코 월드컵 돌아보기’

입력 2018-03-30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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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곤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32년 전인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 국가대표팀 코치로 참가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으로부터 32년 만에 다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대표팀은 세계 강호들을 상대로 ‘창피만 당하지 말자’던 목표를 넘어서는 선전을 거듭했다. 스포츠동아DB

■ 월드컵 본선 첫 골·첫 승점도 몸을 던진 수비가 있어 가능했지!

스위스월드컵 0-9, 0-7 초라했던 시작
32년이나 걸려서 밟은 멕시코월드컵
본선 목표는 ‘창피만 당하지 말자’였어

상대 너무 강해 수비에 올인할 수 밖에
그 덕에 외신도 가능성 보여준 팀 찬사
신태용호도 수비조직력이 가장 중요


1954년 스위스월드컵.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때임에도 한국축구는 당당히 아시아대표로 이 대회에 참가했다. 첫 경기를 불과 10시간여 앞두고 결전지에 입성한 탓인지 당시 세계 최강 헝가리를 맞아 0-9로 참패한 데 이어 터키에도 0-7로 완패했다. 고된 출국길을 따라 초라한 귀국길이 이어졌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까지는 그로부터 실로 32년이 필요했다. 스위스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들도, 전란의 참화가 생생한 가운데서도 한국축구의 선전을 기원했을 팬들도 월드컵 본선에 다시 나서기까지 그토록 오랜 세월이 걸리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듯하다. 김호곤(67)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1986년 멕시코월드컵 현장에 있었다. 스위스월드컵을 끝으로 선배들이 밟지 못했던 꿈의 무대에 국가대표팀 코치로 섰다. 그로부터 또 32년이 흐른 2018년, 후배들은 한국축구의 10번째 위대한 도전을 앞두고 있다. 축구인으로는 드물게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 모두 성공적인 길을 걸어온 그에게서 한국축구의 어제와 오늘을 잇는 소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1986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 코치 시절 김호곤(가운데).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큰물’에서 놀 기회를 놓쳤다!

지금의 40대 이상만이 공유하는 기억일지 모른다. 1970년대는 흑백TV도 흔치 않던, 많은 것이 궁핍하던 시절이다. 그래도 당시 김호곤 전 부회장은 선수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맨발의 청춘’이었다. 동래고 졸업 후 먼저 실업선수(상업은행·1969∼1970년)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 뒤 또래들보다 2년 늦게 입학한 대학(연세대·1971∼1974년)을 거쳐 신탁은행(1975∼1979년)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기까지 줄곧 국가대표 측면수비수로 맹활약했다. 체계적 기록관리가 전무했던 때라 정확치는 않지만, A매치에만도 최소 124회(5골·대한축구협회 집계)는 출전했다.

선수시절 그에게 월드컵은 어떤 의미였을까. 김 전 부회장은 “월드컵 본선 경기가 TV로 중계된 적이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본 기억은 거의 없다”며 “세상이치가 그렇듯 큰물을 경험해야 더 발전할 수 있다. 축구에선 월드컵이 큰물이다. 나 역시 세계적 수준의 팀들과 몸소 부딪히고 깨지면서 성장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1986년이 되기까지 그 누구도 월드컵 본선을 경험해보지 못하던 때라 나 또한 그저 막연하게 동경했다”고 떠올렸다.

선수로선 월드컵 예선만 2차례 경험하는 데 그쳤다. 1974년 서독월드컵과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이다. 그 중 특히 아쉬웠던 때는 서독월드컵 예선. 김 전 부회장은 “호주와 최종예선에서 만났다. 1차전(시드니·0-0)과 2차전(서울·2-2)을 모두 비기는 바람에 홍콩에서 최종전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0-1로 져 본선 티켓을 눈앞에서 놓쳤다. 그 때 본선에 올랐더라면 세계축구의 생생한 흐름을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1986년 멕시코월드컵 본선 진출보다) 12년은 앞당겨질 수 있었다”며 잠시 말끝을 흐렸다.

‘큰물’에 대한 갈구! 국가대표로 수많은 국제경기에 나섰던 터라 선수시절 그에게 유독 강했던 ‘동기’다. 김 전 부회장은 “월드컵만큼은 아니지만 올림픽도 세계적 수준의 팀들과 겨뤄볼 수 있는 좋은 무대다. 서독월드컵보다 2년 앞서 1972년 뮌헨올림픽 때도 본선에 나갈 수 있었는데 말레이시아에 밀려 탈락했다. 뮌헨올림픽 본선에 올랐더라면 서독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회고했다.

1986 멕시코 월드컵 이탈리아전 베스트일레븐. 사진제공|FIFA



● 창피만 당하지 말자!

1980년대는 컬러TV의 시대였다. 때맞춰 월드컵 본선 경기도 TV를 통해 안방으로 생중계됐다. 월드컵 본선을 향한 축구인들과 팬들의 열망 또한 커져갔고, 마침내 1986년 멕시코월드컵을 통해 ‘32년 묵은 한’은 풀렸다. 그러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1985년 3월 콸라룸푸르에서 벌어진 1차 예선 말레이시아 원정경기에서 0-1로 패한 뒤 A대표팀 문정식 감독이 사퇴하고 김정남 코치가 사령탑으로 승격됐다. 1980년 쿠웨이트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안컵부터 대표팀 코치로 데뷔해 자신보다 8년 선배인 김정남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바 있는 김호곤 전 부회장도 A대표팀에 코치로 합류했다.

김 전 부회장이 기억하는 예선 최대 고비는 역시 숙명의 한일전. 김정남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대표팀은 말레이시아를 홈으로 불러들여 2-0 승리로 설욕한 뒤 2차 예선 상대 인도네시아(홈 1차전 2-1 승·원정 2차전 4-1 승)마저 가볍게 제압했다. 이어 멕시코로 가는 최종관문에서 일본과 대결했다. 김 전 부회장은 “우리(축구인)도 그렇지만, 국민 모두가 일본한테만큼은 지면 안 된다는 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부담감이 컸다. 다행히 원정(1차전·2-1)과 홈(2차전·1-0)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며 미소 지었다.

32년 만에 밟은 월드컵 본선무대인지라 모든 것이 얼떨떨했고 새로웠다. 미지의 세계로 옮겨온 대표팀 구성원 모두에게는 극심한 부담감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더욱이 본선 상대 3개국은 말 그대로 쟁쟁했다. ‘축구천재’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 ‘빗장수비’로 유명한 이탈리아, 동유럽의 다크호스 불가리아였다(실제로 아르헨티나는 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1982년 스페인월드컵 우승국이기도 한 이탈리아는 무난히 16강에 올랐다). 본선 출전국이 24개라 각조 3위 6팀 가운데 상위 4팀에는 16강 티켓이 주어지던 때였지만, 1승도 꿈꾸기 힘든 최악의 조편성이었다.

김 전 부회장은 “세계축구와 비교하면 모든 면에서 뒤져있던 시절이다.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과 팀 전체의 경기력은 물론이고 정보력에서도 차이가 컸다. 하다못해 코칭스태프도 우리는 감독과 코치, 달랑 2명뿐이었는데 세계적 강팀들은 달랐다”며 “본선을 앞두고 정한 목표는 ‘망신만 당하지 말자’였다. 객관적으로 우리가 비기기도 힘든 상대들이었다. 전패를 각오했는데, 32년 전(1954년 스위스월드컵)처럼 큰 점수차로만 지지 않기를 바랐다”고 털어놓았다.

하나같이 벅찬 강호들과의 결전에는 어떻게 대비했을까. 김 전 부회장은 “모두 우리보다 강한 상대들이었기 때문에 김정남 선배도, 나도 수비조직력을 강조하며 준비했다. 수비를 잘하면 이기기는 힘들어도 비길 수는 있지 않나. 김정남 선배와는 이심전심으로 잘 통하는 사이인데,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본선 경기를 앞두고) 속으로 많이 떨렸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비수들이 잘 버텨줘서 망신은 당하지 않은 것 같다”고 자평했다.

첫 경기 상대 아르헨티나에 1-3(박창선 득점)으로 패한 뒤 2차전 상대 불가리아와는 1-1(김종부 득점)로 비겨 본선 첫 승점을 따냈다. 이탈리아를 맞아서도 선전했다. 최순호∼허정무의 연속골로 끝까지 이탈리아를 괴롭히며 2-3으로 석패했다. 월드컵 본선 첫 골과 첫 승점, 쉽사리 물러서지 않는 투지에 온 국민은 환호했다. 여러 외신과 세계적 전문가들로부터도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팀’이라는 찬사가 뒤따랐다.

소득은 또 있었다. 김 전 부회장은 “본선을 앞두고는 중압감이 상당했다. 그래도 선수들이 잘 싸워준 덕분에 대회를 마치고 나선 자신감도 조금은 생겼다. 우리가 꾸준히 월드컵 본선에 오르고, 세계적 수준의 팀들과 싸우다보면 격차를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멕시코에 뿌려진 작은 밀알은 더디지만 착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내며 한국축구를 살찌우는 희망이라는 소중한 열매를 낳았는지 모른다.



● 2013년 이미 현장을 떠났다!

월드컵 본선에서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는 것은 모든 축구인의 꿈일 터. 김 전 부회장 역시 똑같은 꿈을 가슴 한편에 오랫동안 간직해왔다. 올림픽대표팀 감독으로 본선 8강(2004년 아테네), 클럽 감독으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2012년·울산현대) 등 괄목할 성과도 이뤘다. 그러나 A대표팀 감독직은 끝내 허락되지 않았다. 김 전 부회장은 “성격상 나는 뭔가에 연연하는 편이 아니다. 각급 대표팀 코치와 감독, 프로팀 감독으로 일하는 동안에도 ‘필요하면 나를 쓰라’는 원칙 하에 매달리지 않았다.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후보들 중에 내가 능력이 있고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면 (감독으로) 쓸 테고, 그렇지 않다면 그만이겠지’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물론 기회가 없진 않았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이후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다 낙마하자 김 전 부회장은 차기 사령탑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다. 그러나 전북현대 최강희 감독이 최종예선까지만 한시적으로 대표팀을 이끌기로 결정됐고, 다시 본선은 홍명보 감독 체제로 치르게 됐다. 김 전 부회장 역시 그 때를 대표팀 사령탑에 가장 근접했던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미련은 없다. 그는 “2013년 말 협회 부회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한동안 고민했는데, 그 때 이미 ‘이제 현장으로 돌아가기는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협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고백했다.

김호곤 전 부회장-신태용 감독(오른쪽). 스포츠동아DB



● 이제는 모두가 응원할 때!

김 전 부회장은 신태용 국가대표팀 감독이 2018러시아월드컵에서 목표한 바를 이루려면 수비조직력, 수적우위, 컨디션의 3가지 요소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개인기와 빠른 공수전환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본선에서 상대할 나라들은 다 우리보다 강하다. 그런 팀들을 상대로 성과를 내려면 역시 수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축구경기에선 90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우선은 수비가 안정돼야 한다. 또 지금 우리 대표팀의 가장 큰 문제로도 수비를 지적하지 않나. 공격은 괜찮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진단했다.

현대축구는 마치 컴퓨터게임을 옮겨놓은 듯 속도감 있는 전개가 특징이다. 이 때문에 한순간의 방심도, 머뭇거림도 허용되지 않는다. 김 전 부회장은 이를 상기시키며 “기술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강한 상대들과 싸워야 하는 만큼 공격을 하다 끊길 때는 순식간에 수비로 전환하면서 수적으로 우위를 확보해 상대를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 공격수라도 (수비전환과 강한 압박 가담에서) 예외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 전 부회장은 끝으로 “독일 같은 팀들은 한두 명의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다. 우리는 다르다. 11명 모두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싸워볼 만하다. 모든 선수가 좋은 컨디션으로 한 경기 한 경기 전력을 쏟아야 하는데, 갑자기 없던 힘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나. 코칭스태프가 모든 선수의 컨디션을 잘 점검하고 경기에 맞춰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 김호곤 전 부회장은?


▲생년월일=1951년 3월 26일(경남 통영 출생)

▲출신교=통영중~동래고~연세대

▲선수 경력=상업은행(1969~1970년), 연세대(1971~1974년), 신탁은행(1975~1979년), 국가대표(1971~1978년·A매치 124회 출전·5득점)

▲클럽 지도자 경력=신탁은행 코치(1980~1982년), 현대호랑이축구단 코치(1983~1987년), 연세대 감독(1992~1999년), 부산 아이콘스 감독(2000~2002년), 울산현대 감독((2009~2013년)

▲각급 대표팀 지도자 경력=아시안컵대표팀 코치(1980년), 멕시코월드컵대표팀 코치(1986년), 서울아시안게임대표팀 코치(1986년), 서울올림픽대표팀 코치(1988년), 바르셀로나올림픽대표팀 코치(1992년), 아테네올림픽대표팀 감독(2004년)

▲축구행정가 경력=대한축구협회 전무(2005년 10월~2008년 12월) 및 부회장(2014년 12월~2017년 11월)

▲주요 수상내역=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우승,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우승, 2004년 아테네올림픽 8강, 2012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올해의 남자감독상

정재우 전문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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