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떠난 거장을 젊은 거장이 추모하다

입력 2018-09-30 1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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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손열음. 사진제공|예스엠아트

건반 위에서 만큼이나 평소의 행보도 대담하고 도전적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씨. 올해는 정경화·정명화 대선배님들로부터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직을 이어받아 신선한 기획과 창의적인 프로그램으로 음악제를 더욱 빛나게 만들더니 곧 이탈리아 볼자노로 날아가 부조니 콩쿠르 예선심사위원장으로 맹활약해 주었습니다.

한국의 여름을 대관령에서 움켜쥐었던 손열음씨가 이제는 가을마저 ‘손열음의 계절’로 만들 생각인가 봅니다. 10월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시작해 27일 원주 백운아트홀까지, 10월 한 달 동안 모두 8번의 전국투어를 예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국투어는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투어와는 좀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우선 프로그램을 모차르트 일색으로 짰습니다. 손열음의 모차르트는 정평이 나 있지요. 2011년 손열음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결선에서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을 연주해 2등을 했습니다. 이때의 실황연주 영상이 전 세계적으로 유튜브 조회수 1100만을 달성했죠.

하지만 아마도 우리가 주로 손열음씨의 ‘모차르트 협주곡 21번’을 접하고 있는 것은 오닉스 레이블에서 발매된 앨범일 것입니다. 이 앨범에서 손열음씨의 연주를 받쳐준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은 인물이 거장 네빌 마리너 경이었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음악감독으로도 대중에게 익숙한 이름입니다.

손열음씨와 마리너 경은 다음 레코딩을 준비 중이었는데 2016년 10월, 마리너 경이 덜컥 세상을 뜨게 됩니다. 결국 이 거장의 마지막 레코딩 녹음은 손열음씨와의 ‘모차르트 협주곡 21번’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사진제공|예스엠아트


이번 전국투어에는 마리너 경과 마지막 녹음을 함께한 영광스러운 순간을 기억하고 그의 순수한 음악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손열음씨의 뜻과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전국투어를 함께 할 오케스트라를 선택하는 데에 굉장히 신중했다는 후문입니다. 클래식 음악팬들에게 ‘네빌 마리너’하면 연관검색어처럼 동시에 떠오르는 연주단체가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ASMF)’입니다. 현대적인 감각과 새로운 각도에서 악곡을 재발견했다는 평가를 받은 명연주 단체입니다. 네빌 마리너 경은 이 연주단체와 함께 숱한 명반을 남겼습니다.

손열음씨는 ASMF와 성격이 비슷한 국내의 오케스트라를 만나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오랜 고민과 수고 끝에 발견한 두 곳의 단체가 ‘오케스트라 앙상블 서울(OES)’와 ‘솔리우스 오케스트라’입니다.

OES는 2016년 정기연주회를 본 손열음씨가 “생명력이 있는 연주가 마음에 들었고, 함께 연주하면서 젊은 오케스트라의 지향점을 모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습니다.

OES가 우연히 마주친 보석이라면 솔리우스 오케스트라는 손열음씨의 음악적 동지이기도 한 김윤지(피아니스트·지휘자)씨가 실력 있는 솔리스트들과 창단한 신생 오케스트라입니다. 김윤지씨가 소망하던 소리를 명확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손열음씨는 이번 8차례의 전국투어 연주에서 OES와 3번, 솔리우스 오케스트라와 5번 협연합니다. 프로그램은 모두 모차르트로 채웠습니다. 손열음씨를 세계적인 건반의 여신으로 등극시켜준 협주곡 21번을 비롯해 8번, 14번 등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네빌 마리너 경 추모 2주기에 만나는 손열음씨의 전국투어. 거장은 떠났지만, 젊은 거장은 남아 그의 음악을 이어갑니다. 마치 손열음씨와 네빌 마리너 경의 전국투어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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