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살 ‘꼰대 상사’도 떼창…하나가 되기에 더없이 충분했다

입력 2018-12-17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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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가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영화를 관람하며 극중 그룹 퀸의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는 싱얼롱 버전 상영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사진은 영화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의 무대의상 차림을 흉내 낸 관객들의 모습.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흥행의 성지를 가다…본지 기자 싱얼롱관 체험기

처음 보는 관객들은 일반상영관으로
극장이 콘서트장…눈치볼 거 뭐 있나
가사 모르면 어때? 후렴만 따라불러
혼자보다는 여럿이 가서 즐겨야 제 맛
돈 스탑 미 나우! 불 켜져도 쇼는 계속

<‘보랩’ 싱얼롱 5계명>

1. 꼭 봐라 두 번 봐라
2. 나를 버려라
3. 가사는 거들 뿐
4. 혼영족 관람불가
5.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웸등포’ 혹은 ‘코블리’!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기아 난민을 돕기 위해 폴 매카트니, 레드 제플린, 엘튼 존, 데이비드 보위, U2, 필 콜린스 등 당대 최고의 팝 스타들이 모여들었던 곳. 무려 7만여명의 관객이 아프리카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으로 스타들의 노래에 맞춰 ‘떼창’하며 환호했던 곳. 전 세계 100여개국 15억 인구를 TV 앞으로 불러 모으며 팝 음악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무대가 됐던 곳. 1987년 7월13일 ‘라이브 에이드’가 펼쳐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이다.

지금, 한국의 영화 관객은 바로 그때 그곳, 웸블리 스타디움을 추억하며 서울지역 멀티플렉스 극장의 일부 상영관을 ‘웸등포’(CGV 영등포) 혹은 ‘코블리’(코엑스 메가박스)라 부른다. “그들이 쇼를 훔쳤다(They stole the show)”고 엘튼 존이 말했을 정도로 ‘라이브 에이드’ 무대를 달군 이들, 그래서 라이브 공연의 또 다른 전설이 된 그 무대 속 그룹 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싱얼롱 상영관이다. 스크린과 음향 등 첨단 시스템과 설비 속에서 관객이 영화를 보며 극중 노래를 따라 불러 여느 상영관보다 열기 뜨거운 상영관은 이제 ‘싱얼롱의 성지’가 되어가고 있다. 실제로 빈자리 거의 없는 상영관에서 관객은 콘서트장에 온 듯 야광봉과 탬버린으로 박자를 맞춰가며 흥겹게 빠져 들었다.

주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싱얼롱 상영관을 찾았다. 여기 소개하는, ‘오계명(五誡命)’이란 이름의 싱얼롱 상영 버전 ‘관람 팁(Tip)’은 ‘보헤미안 랩소디’가 일으킨 신드롬의 핵심과 문화적 코드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 우선 영화만 보라…왜 흥행할까

“탬버린 소리 때문에 몰입이 안 되네.”

한 관객은 영화가 끝난 뒤 극장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말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는 말이 목울대까지 차올랐다. 그렇다. 싱얼롱 상영관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처음 관람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몰입할 수 없다. 원어 노랫말 자막을 따라가자니 화면을 놓치고, 스크린에 시선을 집중하자니 노랫말 자막이 자꾸 이를 막는다.

영화는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중심으로 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음악에 대한 열정,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팝스타의 자리에 올랐지만 무대 뒤편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외로움에 시달린 프레디 머큐리 그리고 그와 함께한 퀸에 바치는 헌사처럼 보인다.

영화는 마침내 퀸의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서 절정을 맞는데, 싱얼롱 버전으로 영화를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이마저도 절대 빠져들 수 없다. 왜냐고? 대부분 객석이 ‘스탠딩’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일어서 몸을 흔들며 노래하는 이들의 뒷자리에서 스크린이 제대로 보이겠는가.

‘보헤미안 랩소디’를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일반상영관을 찾는 게 먼저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 ‘나’를 버려라…20∼30대의 힘

‘빰빠라밤∼, 빰빰빰빰빠라밤∼. 빠라라라밤∼. 빠라라라밤∼’.

투자배급사 이십세기폭스의 그 유명한 ‘팡파르’를 일렉트릭 기타 등 록 스타일로 편곡한 오프닝 필름이 흐르면 관객의 환호가 터져 나온다. 이어 ‘썸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가 영화의 시작을 알리며 관객의 입을 연다. 한쪽에서 들려오는 탬버린 소리가 겨울 극장의 흥겨움을 더 한다.

하지만 막상 노래를 따라 부르려니 쑥스러움이 밀려온다. 아무리 어두운 상영관이라지만 옆자리 움직임이 그대로 눈에 들어오니 더욱 그렇다.

관객은 대부분 20∼30대. CF 등 다양한 콘텐츠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며 너무도 귀에 익은 노래를 이들 젊은 관객들은 목청껏 소리 높여 불러댄다. 오죽했으면 “내가 퀸의 노래를 이렇게 많이 알고 있을 줄이야”라고 말하겠는가.

‘나’를 버려라! 눈치 볼 것도 없다. 어느 누구도 당신을 신경 쓰지 않는다.

이들은 이미 각자 흥겨움을 즐길 줄 아는 세대. 타인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이 쑥스러워 할 일 하나 없다. 젊은 관객들은 오히려 입을 떼지 않는 당신을 이상한 시선으로 노려볼 것이다.

정 어색할 것 같으면 맨 뒷자리를 예매하라. 그것이 뒤통수 덜 후끈해지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도 안 되겠으면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의 박자에 맞춰 남들의 시선에 보이지 않는 발이라도 굴러봐라.


● 노랫말을 외우려 하지 마라…음악의 힘


원어 노랫말이 자막으로 흐른다. 굳이 싱얼롱 상영관에 가기 전, 노랫말을 외우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귀에 익은 노래들. 팝음악을 듣고 자란 40대 이상 중장년층이라면 새록새록 떠오르는 멜로디에 절로 따라 부르게 될 것이다.

원어 노랫말 자막을 따라가기 어렵다면 또 어떤가. ‘We Will / We Will / Rock you / …’ ‘레디오 가가(Radio Ga Ga), 레디오 구구 / …’ 등 후렴구만 따라 불러도 흥겹다. 프레디 머큐리가 ‘솔 메이트’인 메리 오스틴에게 자신의 성적 성향을 고백할 때 흐르는, 메리를 위해 썼다는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Love of My Life)’를 콧소리로 따라 부를 땐 눈물마저 흐를 것이다.

그러니 굳이 노랫말 자막을 외울 이유가 없다. 다만 노랫말의 번역본을 미리 한두 번 보고 가면 더 좋을 것이다. 노랫말의 의미를 알면 극중 이야기의 감흥을 다시 한번 느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 혼자 가지 마라…소통의 확인

‘혼영’ 관객은 드물었다. 100여석의 상영관에 두세 명이나 될까. 맨 뒷자리(혹 쑥스러울까 그리 예매했다)에 앉아 입장하는 관객을 살펴보니 그랬다. 단체관람 역시 아직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싱얼롱 버전을 제대로 즐기려면 여럿이 가는 게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 노래를 함께 부르는 흥겨움은 혼자보다 여럿이 누려야 더 커지는 법. 노래방을 찾는 이유도 그것 아니겠나. 마침 앞좌석 30대 초반의 친구 사이로 보이는 네 여성의 모습이 보기에 흥겨웠다. 영화 속 대사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모두가 함께 음미해보는 것도 좋겠다.

연말이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이든 상관없다. 송년회에서 뭘 먹고 마실지 고민하는 직장인들도, 동창생들도, ‘보헤미안 랩소디’ 싱얼롱 버전으로 함께하는 건 어떨까. ‘꼰대’ 상사와, 그런 상사로 하여금 족족 한숨만 쉬게 했던 부하를 잠시나마 하나로 묶어주는 데 모두가 아는 노래만한 것도 없을 테니.


●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실화의 힘

영화는 스크린이 완전히 꺼지고 상영관에 다시 불이 켜질 때까지 이어진다. ‘돈 스탑 미 나우(Don’t Stop Me Now)’가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면 당신도 모르게 환호하게 될 것이다. 영화 속 이야기의 후일담이 되는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남겨진 이야기가 실제 사진과 함께 등장하는 순간이다.

싱얼롱 버전을 관람했다면, 당신은 한 시대를 열정적으로 살다 간 프레디 머큐리가 영화를 통해 안긴 감흥에 이미 빠져든 셈이다. 일부 사실과 다르거나 이를 극화하기 위한 허구의 설정이 작은 논란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그것이 지나친 왜곡이 아니라면 실제 삶을 그대로 담아낸 것은 다큐멘터리로서 족할 터이니.

퀸은 노래했다.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The Show Must Go On)고. ‘Don’t Stop Me Now‘에 이어 스크린에 불이 꺼지고 ‘The Show Must Go On’마저 잦아들면 누군가 소리칠 것이다. 그것도 그저 따라 외치면 된다.

“A-Yo∼!”

P.S ‘보헤미안 랩소디’ 싱얼롱 상영관에서 팝콘을 먹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노래를 따라 부르기에도 불편하고, 일어났다 앉았다 반복하다 자칫 내용물을 쏟을 위험이 크다. 그래도 간식이 필요하다면, 페트병 음료가 딱! 이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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