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이제 V리그도 역사와 기록의 보전에 힘쓸 때

입력 2019-06-04 08: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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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1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프로배구 V리그를 대표하는 왼손거포 박철우(삼성화재)와 황연주(현대건설)가 개인통산 5000득점을 기록할 당시 입었던 유니폼과 배구화 배구공이 이랜드박물관의 스포츠명예의 전당에 기증되는 이벤트였다.

전시사업에 관심이 많은 이랜드 측에서 두 선수가 세운 위대한 기록을 기념하고 당시의 물품을 전시하기 위해 기증을 받았다. 이들은 “오늘 행사에 참가하고 보니 내 기록이 의미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시간이 지나면 기록을 잊겠지만 이런 식으로 남겨서 아끼고 기억시켜줘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아내 신혜인씨 두 딸과 함께 행사에 참가한 박철우는 “아빠 잘했어”라고 딸들이 축하해주자 더욱 기뻐했다. 황연주도 “(박철우)오빠 딸들에게는 아빠가 대단한 일을 한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나도 나중에 엄마가 배구선수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데 이런 기회가 생겨서 좋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5000득점 대기록을 세웠던 경기에서 제대로 된 세리머니도 하지 못했다. 경기 도중에 기록이 나와 경기를 중단할 수도 없었고 경기 뒤에는 팀이 진 상황이라 기록달성을 혼자만 좋아할 상황도 아니었다. 삼성화재는 박철우의 5000득점 달성을 기념하는 이벤트를 대전 홈 경기장에서 나중에 열었지만 하필 그 경기도 졌다. 이날 행사장에 참가했던 구단 관계자들은 이 정도로 선수가 자부심을 느끼고 알차게 행사가 꾸며질 것이라고는 예상 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이랜드 측은 다른 종목에서도 대기록을 세운 스타들의 동참과 기부를 유도하는 뜻에서 최대한 예우를 갖췄고 선수들이 기록에 큰 자부심을 갖게 했다. 박철우와 황연주는 “이런 행사가 계속 이어져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록달성을 축하하고 멋 훗날에도 기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제 V리그도 출범 20주년이 멀지 않다. V리그는 출범 10주년 15주년을 기념해 V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올스타를 뽑는 등의 이벤트를 했다. 이런 행사도 물론 해야 하지만 V리그의 발자취인 기록 달성의 순간을 영상과 기념품 기록 등으로 남겨야 할 때도 됐다. 아쉽게도 한국배구연맹(KOVO)과 V리그 구단들은 이런 쪽에는 아직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두 선수의 소속구단조차 5000득점 때의 유니폼 등을 따로 보관해두지 않았다. KB손해보험은 3000득점을 기록한 이선규를 기념해 핸드프린팅을 했지만 수원 훈련장에 둬서 대중이 쉽게 보기 힘들다. 구단별로 따로 보관하는 것보다는 한 곳에 모아야 보다 많은 팬들이 쉽게 볼 수 있다.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V리그 명예의 전당이 만들어진다. 만일 지금 구단이나 KOVO가 이를 준비할 여력이 없다면 의지를 가진 곳과 손을 잡으면 된다. 귀중한 자료를 기증할 수도 있고 위탁 보관시키는 방법도 있다.

V리그도 역사를 기억하고 존중하는 것에 신경을 쓸 순간이 곧 온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귀중한 자료가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만큼 과거와 역사 기록에 무신경한 채 오직 승리만 신경 썼다. 이참에 V리그도 역사박물관 혹은 명예의 전당 출범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길 권유한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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