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베이스볼] ‘KBO 왕조의 역사’-해태·현대·삼성&두산

입력 2019-10-29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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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통합우승으로 V6 달성한 두산. 스포츠동아DB

5년 연속 한국시리즈(KS) 진출, 3회 우승, 2회 통합우승. 2019년 한국프로야구를 통합 제패한 두산 베어스는 ‘왕조’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 김현수(LG 트윈스), 민병헌(롯데 자이언츠), 양의지(NC 다이노스)등 연이어 주축 전력이 팀을 떠났지만 두산은 흔들림 없이 2010년대 후반 리그를 지배하고 있다.

두산이 강팀의 지위를 지키고 왕조로 발돋움한 힘에는 여러 배경이 있지만 성공적인 신인 스카우트와 육성, 자연스럽게 이뤄진 세대교체가 가장 돋보인다. 매우 어려운 이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유지시킨 프런트의 전문성, 그리고 김태형 감독의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 2020시즌 이후 두산 주축전력 연이어 FA자격 획득

두산 왕조의 전성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어떤 왕조도 영원하지는 못했다. 두산 역시 2020시즌 이후 이후 큰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 정수빈을 시작으로 최주환, 허경민, 이용찬 등 팀 핵심 선수들이 연이어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획득한다. 공격적인 투자를 하지 않는 팀이기 때문에 얼마만큼 대체 자원을 키워내고 합리적인 계약을 이끌어내느냐에 따라 팀의 역사가 달라질 수 있다.

97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LG를 꺾고 대망의 V9을 이루어낸 해태선수들.


● 역대 왕조의 흥망성쇠

그렇다면 역대 왕조들은 어떻게 리그를 지배했고 어떤 이유로 정상에서 내려와야 했을까. 모기업의 변화, 달라진 외부환경 등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KBO의 첫 번째 왕조는 해태 타이거즈였다. 1983년 첫 우승 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1991년과 1993년, 그리고 1996·1997년에도 정상에 올랐다. 팀을 완벽하게 장악한 김응룡 감독의 공이 컸지만 해태가 장기간 정상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매년 공급되는 정상급 연고지 출신 유망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주일고, 군산상고, 광주상고(현 동성고) 등에서 배출된 특급 신인들은 1차지명 숫자에 제한이 없었던 1980년대 중반까지 팀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 잡았다. 1차지명 가능 인원은 1987년 3명, 1990년 2명, 1991년 1명으로 줄어들었지만 대신 고졸우선지명으로 전력보강이 가능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해태는 모기업의 경영악화 그리고 2000년 FA 도입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04년 한국시리즈 2연패에 오른 현대(위쪽)-2014년 4년연속 통합우승을 차지한 삼성.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스포츠동아DB


● 부자구단 현대의 비상과 몰락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막강한 전력을 자랑한 현대 유니콘스는 1998년과 2000년, 2003·2004년 정상에 섰다. 현대는 창단 때부터 막강한 자금력으로 아마추어 유망주를 싹쓸이 했다. 현금 트레이드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기업 현대그룹의 경영난 속에 역으로 FA 선수를 계속 뺏기며 몰락했고 야구 역사에서 사라졌다.

2000년대 초중반과 2010년대 전반기를 지배한 삼성 라이온즈 역시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을 때는 현대와 같은 현금트레이드를 활용했다. 대형 FA계약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6년 우승 이후 외부 FA 영입없이 2011년~2014년 4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육성에 공을 들인 성과였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삼성의 시대도 모기업의 지원방식 변화, 세대교체 실패로 막을 내렸고, 올해까지 수년간 계속 부진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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