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16년만에 개막전 포수, KIA 이성우 인생 역전

입력 2015-03-3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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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포수 이성우는 개막전 포수 마스크를 쓰기까지 무려 16년의 시간을 보냈다. 방출과 트레이드의 아픔을 딛고 KIA 유니폼을 입었지만, 박경완 SK 육성총괄처럼 신뢰받는 포수가 되고 싶다. 지난해 8위에 그쳤던 팀 방어율을 낮추는 것이 올 시즌 최고의 목표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신고선수 5년…주목받지 못했던 야구인생
조범현 감독 시절 때 SK서 KIA로 트레이드
성실함 눈여겨 본 김기태 감독, 개막전 기용
“투수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포수 되고 싶다”

선택받은 선수들은 당연히 나가는 줄 아는 개막전이지만, KIA 포수 이성우(34)에게는 1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성남서고를 졸업하고 2000년 LG에 입단해 상무를 거쳐 SK(2006∼2008년)와 KIA(2008년∼)를 옮겨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주목 받지 못한 야구인생이었다. 신고선수 신분으로만 5년을 보냈다. 이성우는 “5년이면 아마 신고선수 기록일 것”이라며 웃었다. 28∼29일 KIA의 개막 2연전에서 이성우는 돋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출전 자체만으로도 어떤 여운을 줬다.


● “개막전이 왜 떨려요?”

어렸을 적부터 주인공이 자기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운동했다. 다만 주어진 임무는 잘할 책임감은 늘 잊지 않았다. 그러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LG에 입단하고 3년간 신고선수 신분이었어요. 상무 입대를 앞두고 있는데 방출 통보가 왔어요. 그때 상무에 합격하지 못했다면 현역으로 군대를 갔겠죠.” 야구를 못할 갈림길에서 기사회생했지만, 사회에 나오니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그때 SK에서 테스트 제의가 왔다. 합격했고, 다시 2년 가까이 신고선수 신분이었다. 정말 야구를 그만둘까 생각했을 때, 1군에서 콜업이 왔다. 2006년 7월의 어느 날이었다. 이성우는 막상 1군에 올라왔지만 단 1경기도 뛰지 못했다. 그러나 조범현 감독(현 kt 감독)을 만난 덕에 야구인생의 길이 바뀌었다.

이성우의 성실함을 높이 산 조 감독은 KIA로 옮긴 뒤 2008년 5월 2대3 트레이드로 그를 데려왔다. 이성우, 채종범, 김형철이 KIA로 갔고, 전병두와 김연훈이 SK로 옮겼다. 조 감독 밑에서 이성우는 생애 첫 1군 데뷔전도 치렀다. 조 감독이 떠난 뒤에도 이성우는 KIA에 남았다. 그리고 28일 KIA 에이스 양현종의 공을 받는 선발포수로 그의 이름이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 전광판에 찍혔다. “저보다 주위에서 더 불안해하지 않았나요? 차일목이 아닌 포수로 되겠냐고요? 그런데 저는 잠도 잘 잤고, 하나도 안 떨렸어요. 그동안 살아온 인생이 더 힘들었지, 개막 포수로 나가는 기회가 왔는데 왜 떨려요?”


● “이제는 팀 성적이 눈에 들어오네요.”

한편으로는 “김기태 감독님이 나를 정말로 쓸까”라는 궁금증이 늘 있었다. SK에 갓 입단했을 때 SK 주장이었던 김 감독은 저 하늘의 별 같은 존재였다. “KIA를 두고 리빌딩 이야기가 많은데, 혹시 나 같이 나이 많은 선수는 안 쓰는 것 아닌가”라는 남모를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겪어보니 감독 김기태의 가장 큰 매력은 공평함이었다. 이름을 따지지 않고, 훈련을 성실히 따라온 선수에게 먼저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성우의 꿈은 박경완(SK 육성총괄)처럼 투수에게 신뢰 받는 포수가 되는 것이다. “박 선배처럼 뛰어난 타격 성적을 낼 수 없는 선수라는 걸 잘 알아요. 그 대신 투수와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성우의 시즌 목표는 원래 100경기 출전이었다. 그러나 개막전을 치른 뒤 지난해 8위였던 팀 방어율을 낮추는 것으로 바뀌었다. 주전 포수로서 시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복덩이인 80일된 아들 찬휘, 언제나 곁을 지켜준 아내 나보리 씨를 위해 이성우는 포기하지 않는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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