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년, 최고의 작품 ‘박하사탕’

입력 2019-07-10 06:57: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영화 ‘박하사탕’. 사진제공|이스트필름

과거 거슬러 오르는 기법 참신
설경구·문소리의 열연도 빛나


2000년은 20세기의 마지막 해였는가, 21세기의 시작이었던가. 그런 즈음의 혼돈이든, 또 다른 희망이든, 2000년 1월1일의 해는 평소처럼 떠올랐다. 바로 그날, 한 편의 영화가 각 세기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훑어 내리듯 관객을 만났다. 소설가 출신 이창동 감독이 1997년 ‘초록물고기’에 이어 두 번째 연출한 작품 ‘박하사탕’이다.

영화 ‘박하사탕’은 40대 중년의 나이에 막 들어선 김영호의 이야기. ‘야유회, 1999년 봄’으로부터 시작해 ‘소풍, 1979년 가을’로 막을 내리는 영화는 김영호의 20년 세월을 모두 7개의 잇단 에피소드를 과거로 거슬러 오르는 방식으로 펼쳐냈다.

산업화의 상징으로 불린 서울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스무살 청년 김영호는 진압군으로서 1980년 광주의 5월을 목격한다. 오인 사격으로 여고생의 목숨을 앗은 뒤 총상을 입은 그는 이후 삶의 중요한 상처로, 수많은 이들의 그것처럼, 5월을 기억해야 한다. 운동권 학생의 겁에 질린 똥의 흔적을 이제 경찰이 된 자신의 손에 묻히는 것이야말로 비극의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학생은 “삶은 아름답다”고 했다. 하지만 서서히 속물의 본성을 드러내고야 마는 김영호가 보기에 세상과 삶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그래서 때마다 괴롭히는 총상의 아픔은 새록새록 삶과 세상을 향한 자학의 정도를 더해갈 수밖에.

영화 ‘박하사탕’. 사진제공|이스트필름


그럴 때마다 나타나는 여자. 김영호의 순박했던 스무살 시절 감정을 나눴던 순임이다. 박하사탕 포장 일을 했던 순임은 더없이 순수하게 맑았다. 그는 그악스런 세상을 여전히 견뎌내라며 김영호에게 박하사탕을 건네곤 했다.

김영호 아니 그 또래 모든 세상 사람들이 겪어내고 버텨내고 살아내야 했던 질곡과도 같은 20년의 세월. 순수하고 맑았던 심성을 애써 외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들의 세월은 박하사탕의 톡 쏘는 첫맛처럼 묻어 두었던 상처를 후벼 판다. 달고 단 뒷맛은 결코 오래도록 남지 않아서 김영호는 철로 위에 올라 절규했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리고 한 줄기 흐르는 눈물. 회한 가득한 방울은 지독하게도 깊었던 자학의 늪에서 김영호를 구해내 순수하고 맑았던 시절로 되돌려 보낼 수 있을까.

김영호를 연기한 설경구와 순임 역의 문소리는 바로 그 순수하고 맑았던 시절로써 관객의 가슴에 가 닿았다. 그리고 이창동 감독의 뛰어난 연출과 신선한 이야기 구성은 2000년대 한국 리얼리즘의 효시를 이루는 힘이 되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