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이희진 “베이비복스 해체 후 두려움 컸다”

입력 2015-11-25 0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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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진은 3년 전 세상을 떠난 반려견을 떠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베이비복스 활동 때부터 키운 반려견이다. 태어나 내 품에 와서 떠날 때까지 모든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더라”며 “소식을 듣고 촬영을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영화 한 편 찍은 것 같아요.”

배우 이희진은 1997년 데뷔 이후를 돌아보며 “파란만장했던 18년”이라고 표현했다. 참으로 롤러코스터 같은 세월이었다.

10대에 베이비복스로 데뷔해 누구보다 화려한 시절을 보낸 이희진.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팀이 해체됐고 그는 연기자로 전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수 시절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믿었던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받고 은퇴를 고민했다.

그러나 기나긴 터널에도 끝은 있는 법. 10여년 인고의 시간은 이희진을 단단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이제는 누구의 도움 없이 오롯이 홀로 우뚝 선 이희진. 비로소 진짜 ‘배우’로 거듭난 그가 속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놨다.


Q. ‘세상끝의 사랑’으로 스크린에 정식 데뷔했다. 첫 영화를 조연으로 시작했다.

A. ‘미연’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좋았다. 분량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분량이 적은 것과 상관없이 어둡고 차가운 작품에서 오는 ‘무게감’을 느끼고 싶었다. 출연을 결정한 데에는 김인식 감독님의 영향도 컸다. ‘얼굴 없는 미녀’와 ‘로드 무비’ 등 감독님의 독특한 전작들을 보면서 ‘한 번 뵙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만나보니 정말 친절하고 밝은 분이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점점 그의 작품 세계가 알고 싶어졌다. 나도 감독님처럼 ‘물음표를 남길 수 영화’를 하고 싶었다.


Q. 이전에도 영화 제의가 종종 들어오지 않았나.

A. 독립영화 출연 제의가 몇 번 있었다. 어두운 작품이 대부분이었고, 맞고 다치는 역할이 많았다. 하고 싶은 역할도 있었지만 회사 사정상 못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어렵게 스타트를 끊었으니 앞으로는 좀 더 폭넓게 많은 작품을 하고 싶다. 물론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Q. 베이비복스 해체 후 연기자로 전향했다. 그런데 활동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A. 멤버들과 흐지부지 헤어질 당시 20대 중반이었다. 태어나서 가장 힘들었을 때였다. ‘나는 이제 혼자 뭘 해야 하나’하는 두려움이 컸다. 사회성도 전혀 없는 데다 세상물정도 몰랐다. 혼자 부딪혀야 하는데 이길 힘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이 일을 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Q. 힘든 시절이었지만 개인 홈페이지에 남긴 글은 대부분 긍정적인 내용이더라.

A. 너무 괴로웠다. 그런데 바닥을 치고 나니 문득 ‘오늘도 내일도 똑같을 텐데 내가 사람들을 왜 피하지? 즐기자!’는 생각이 들더라. 일부러 주문처럼 더 긍정적인 글을 쓴 것이다. 예전에는 억지로 웃었다면 이제는 뭔가 즐거워도 화나도 힘들어도 웃게 됐다. ‘어떻게 하겠어 이게 현실인데… ‘즐기자’. ‘웃자’라는 마인드를 갖게 됐다. 이제는 웬 만큼 힘든 일이 아니면 아무렇지 않다. 예민한 편인데 많이 유연해진 것 같다.


Q.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뮤지컬과 연극을 통해 사람들 앞에 섰다.

A.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너무 싫고 무서웠지만 한 번은 도전하고 싶었다. 베이비복스 시절에도 뮤지컬을 해본 적이 있다. 관객들이 베이비복스의 이희진이 아닌 캐릭터 그 자체로 봐줘서 좋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가 생각나서 ‘이 기회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사랑은 비를 타고’(2008)의 오디션을 봤다. 다행스럽게도 내 연기를 보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더라.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정말 좋았다. ‘내가 너무 혼자만의 테두리에 갇혀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뮤지컬은 나에게 큰 터닝 포인트가 됐다.


Q. 그럼에도 한 번씩 무너질 때는 어떻게 하나.

A. ‘괜찮아’ 라고 혼잣말을 많이 한다. 힘들면 그냥 벽을 보고 혼자 이야기한다. 거울을 안 본다. 거울을 보고 얘기하면 울컥하게 되더라. 내 눈을 보다가 처량 맞게 울게 된다. 연기 연습할 때도 거울을 안 보고 한다.


Q. 작품을 해오면서 이제 좀 괜찮아졌나.

A. 괜찮아졌지만 사실 아직도 많이 참는다. 그러면 열꽃이 피고 홍조가 생기고 홧병이 나더라. 그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터뜨린다.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더라. 말을 안 할 거면 애당초 하지 말거나 아니라면 그 때 빨리 말하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나중에 얘기하면 또 그것도 상처가 될 테니까.


[인터뷰②에 계속]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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