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강하면서 여린 옥주현표 프란체스카 ‘심쿵’

입력 2017-05-2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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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먼 다리에서 프란체스카(옥주현 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진작가 로버트(박은태 분). 불륜을 미화했다는 불편한 시선도 있지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두 사람의 사랑을 지극히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사진제공 ㅣ 프레인글로벌

■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심플한 로즈먼 다리…무대의 진수
1막보다는 2막이 인상적인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고 나온 평론가와 선배 기자의 평가가 상반된 것이 흥미로웠다. 한 명은 “상당히 볼만했다”라며 극 중 명대사를 줄줄 읊은 반면, 다른 한 명은 “지루해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관객들의 반응도 갈렸다. “1막은 지루했지만 2막은 매우 인상적이었다”라는 절충안(?)도 있었다.

그 경계선에는 ‘불륜의 아름다운 포장’이라는 시선이 존재하고 있다. 그 선 위에 서서 어느 쪽으로 한 발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이 작품을 대하는 개인적 가치와 무게감이 달라진다.

현실은 현실이고 예술은 예술이라는 생각이다. 가정이 있는 여인이 바람을 잔뜩 피우다가 막판 5분을 남기고 느닷없이 눈물을 펑펑 쏟으며 남편에게 돌아가 용서를 비는 것으로 마무리되던, 1980년대의 대량생산형 성인영화가 떠오른다. 당시는 “그들은 잘 먹고 잘 살았대요”식의 ‘디즈니적인’ 결말이 아니면 상영허가가 나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쇠파이프와 날선 회칼에 면죄부를 부여한 조폭영화들은 또 어떠한가. 뮤지컬은 뮤지컬이고 불륜은 불륜이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개막 초기부터 “무대가 예쁘다”라는 소리를 들은 작품이다. 배경이 되는 로즈먼 다리를 어떻게 구현했을까 궁금했는데, 과연 심플하고 효율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하루의 변화를 색감의 미묘한 조절로 표현한 조명도 좋았다. 오필영(무대디자인)과 이우형(조명디자인), 두 명장의 솜씨다.

로버트를 집으로 초대한 프란체스카가 분홍색 드레스를 꺼내 입고 나오는 장면이 참 좋다. 이 장면에 대해 배우 김현숙은 “분홍색 드레스는 프란체스카에게 웨딩드레스와 같은 의미가 아니었을까”라고 짚었다. 동감이다. 애잔하고 콧등이 시큰했다.

프란체스카를 맡은 옥주현은 이제 ‘예상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라는 느낌이다. 좋은 점도, 그렇지 않은 점도 있다. 옥주현이 잘 표현하는 여인상은 강한 쪽이다. 적에게, 권위에, 음모와 멸시에, 탄압에 맞서 꿋꿋하게 버티며 자아를 찾아 성장해 나가는 캐릭터는 옥주현만한 배우 찾기가 쉽지 않다. 엘리자벳, 마타하리, 위키드, 루돌프에서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프란체스카도 그랬다. 로버트와 도피할 것이냐, 가족으로 회귀할 것이냐의 갈림길에 선 프란체스카. 사랑이냐 주어진 삶에 대한 충실함이냐. 여기에 옥주현은 ‘운명의 개척’이라는 제3의 길을 하나 더 보여준다. 그래서 강하면서도 여린, 자유로우면서도 자유롭지 않음 역시 사랑하는 프란체스카가 탄생했다. 개인적으로는 ‘아픔’보다는 ‘슬픔’에 한 발 더 다가간 프란체스카였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여하튼 ‘맨발로 집안을 돌아다니는 프란체스카’, ‘요리하는 옥주현’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이런 점에서 박은태는 확실히 ‘사랑’ 쪽이다. 멋진 남자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예요’라는 오글오글 대사도 박은태가 하니 짜릿하다.

내 감상은 이렇다. 1막은 살짝 졸아도 좋다. 하지만 2막에서는 눈 크게 뜨고 집중하자.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눈빛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장면의 느낌은 통조림처럼 유통기한이 길다. 이런 건 다섯 번쯤 보아도 좋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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