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황정민·오만석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재미 돋네”

입력 2016-01-1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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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배우들이 노래와 연기를 하는 동안 어둡고 침침한 피트 안에서 반주를 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애환을 유쾌하게 그린 뮤지컬 오케피 출연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샘컴퍼니

■ 뮤지컬 ‘오케피’

배우들의 각양각색 단원 캐릭터 개성만점
‘웃음의 대학’‘너와 함께라면’ 미타니 작품
‘트럼펫’ 김재범 허세남 연기에 까르르∼


제목이 요상하다. 오케피. 만두피도 아니고, “무슨 껍데기야?”할 사람이 있을 법하다. 오케피는 ‘오케스트라 피트’를 의미한다. 영어단어를 자르고 붙여 국적불명의 토막말로 만들어 쓰기 좋아하는 일본식 표현이다.

소극장에서는 뮤지컬을 공연할 때 대부분 MR(녹음반주)을 틀지만 대극장에서는 라이브로 연주를 한다. 이 라이브 연주를 오케스트라가 맡는다. 100여 명에 달하는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달리 10∼20명 정도로 구성된 미니 오케스트라다. 악기의 종류도 다양하다. 바이올린, 플루트, 트럼펫처럼 클래식 악기도 있지만 전기기타·베이스, 키보드, 드럼도 동원된다. 미니 오케스트라지만 지휘자(주로 음악감독이 맡는다)의 지휘에 맞춰 일사불란한 연주를 들려준다. 물론 대부분의 연주는 무대 위 배우들의 노래 반주다. 오케스트라는 무대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럼 어디에서 연주를 하고 있을까. 바로 그 사각의 장소가 오케스트라 피트다. 오케피인 것이다.

무대와 맨 앞 객석 사이에 꽤 큰 구덩이(?)가 있다. 물을 뺀 수영장 같은 곳이다. 이곳이 오케피다.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오케피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사연과 피트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뮤지컬이다. 코믹극의 대가인 일본작가 미타니 코키(55)가 대본을 썼다. 한국 관객들에게도 큰 웃음을 안겨준 연극 ‘웃음의 대학’과 ‘너와 함께라면’의 작가이기도 하다. 오케피의 지휘자 역과 연출을 맡은 배우 황정민은 “나는 미타니의 왕팬”이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 악기만큼이나 각양각색 연주자들의 웃픈 일상 이야기

화려한 조명을 받는 무대, 배우들과 달리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어두침침하고 음습한 공간에서 연주를 한다. 같은 곡을 매일 반복해 연주해야 하는 일상이 지겹기만 하다. 심지어 뮤지컬을 혐오하는 연주자도 있다. 재즈 공연장에서는 여인들을 몰고 다니는 스타지만 술값을 벌기 위해 피트에 들어온 트럼페터(최재웅·김재범 분), 시장바구니를 들고 온 첼로 연주자(백주희·김현진 분), 연주보다 경마에 관심이 500배쯤 많은 색소폰 연주자(황만익·정상훈 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굳은 살’을 가진 하프 연주자(윤공주·린아 분), 지휘자의 ‘집 나간 아내’이자 오케스트라의 2인자인 바이올리니스트(박혜나·최우리 분).

연주하는 악기만큼이나 각양각색인 캐릭터들이 등장해 관객을 즐겁게 한다. 이들의 중심에는 내레이터 역할을 겸한 지휘자 황정민과 오만석이 존재한다.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마에스트로’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며 존경을 받지만 오케피의 지휘자는 그저 단원들에게 콘닥터(지휘자)의 준말인 ‘컨닥’으로 불릴 뿐이다. “컨닥! 여기 편곡 좀 다시 해 줘요”, “이봐 컨닥! 아까 낮에 당신한테 전화가 왔었는데 말이야” 하는 식이다.

‘컨닥’ 오만석의 연기는 언제 보아도 흥미롭다. 귀공자풍의 멋진 남자에 잘 어울리지만 코믹 연기도 잘 한다. ‘하프’에게 차여 연주 의욕을 상실한 ‘기타’로 인해 엉망이 되어 버린 오케스트라의 구세주로 등장한 ‘색소폰’ 황만익의 ‘능글 반, 순진 반’ 연기도 눈길을 끈다. ‘바이올린’ 최우리는 노래와 춤도 잘 하지만 대사 발음과 톤이 명징해 ‘듣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윤공주는 신뢰가 가는 배우. 은근히 4차원적인 ‘하프녀’ 역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돋보인 캐릭터는 ‘트럼펫’ 김재범이다. 코믹 캐릭터 연기에 정평이 난 배우이기도 하다. 김재범의 허세남 연기 하나 하나에 관객들이 자지러졌다.

일상 속에서 얻는 자잘한 감성과 재미를 좋아한다면 2시간50분이 게 눈 감추듯 사라질 듯. 후련하게 질러대는 노래, 눈부신 샹들리에 아래의 무도회, 화려하고 거대한 무대장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칼군무 스타일의 작품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산만하고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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