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사인 훔치기’ 사과, 그래도 남는 궁금증

입력 2018-04-2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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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했지만….’ 광주 원정에서 ‘사인 훔치기’ 논란에 휩싸인 LG가 19일 구단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야구팬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의혹은 여전히 남는다. 류중일 감독 등 LG 코칭스태프. 사진제공|LG 트윈스

최근 허벅지 안쪽에서 사인을 내지 않는 KBO 포수가 눈에 띈다. 투수가 잘 안 보이기 때문이다. 무릎 앞에서 코스, 구종에 관한 수신호를 보낸다. 손가락으로 암호를 걸긴 해도 선수들이라면 금방 패턴을 파악한다.

이렇게 보안이 취약함에도 포수들이 사인을 철저히 감추지 않는 주된 근거는 ‘주자들이 훔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선수들끼리, 감독들끼리의 ‘신사협정’이기 때문이다. KBO는 규정 26조 1항으로 ‘벤치내부, 베이스코치 및 주자가 타자에게 상대투수의 구종 등의 전달 행위를 금지한다’고 적시했다. 위반 시 즉시 퇴장이다.

그러나 현실세계는 ‘죄수의 딜레마’가 지배한다. KBO 구단들은 암암리에 타 팀 사인을 훔치려 애쓴다. 실제 전력분석팀, 코치의 업무이기도 하다.

이런 정황을 이해해도 18일 불거진 LG의 사인 훔치기가 격렬한 파장을 일으킨 이유는 묵시적 선을 넘어간 ‘노골성’에 있다. LG는 19일 ‘향후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반성하겠다’는 사과문을 냈다. 그러나 해소될 수 없는 궁금증은 남는다.


● 의혹 1 : LG는 왜 이렇게 드러내놓고 했을까?

LG는 18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덕아웃 뒤편 통로 벽면에 KIA 포수 사인을 ‘해독’한 A4 용지을 붙여 놨다. 문서는 곧 물증이다. 이런 행위가 처음이 아니었음을 반증한다. 사실 문서만 아니라면 걸릴 일이 아니었다. 이에 관해 야구인 A는 “말로 전하면 헷갈릴 수 있다. 현장에서 전력분석팀에 ‘편하게 문서로 하자’고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발각되면 일이 얼마나 커질지에 관한 상황인식이 결여된 셈이다. 뒤집어보면 그만큼 사인 훔치기에 관한 LG의 문제의식이 떨어졌다는 자인이다.

LG 류중일 감독. 스포츠동아DB



● 의혹 2 : 류중일 감독은 몰랐을까?

LG는 강력히 부인했다. 류 감독은 “내가 알았으면 당장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동아도 여러 루트를 취재한 결과, 류 감독은 몰랐을 것이라는 정황증거를 접했다. 야구인 B는 “현장 코치를 경험하면 안다. 감독에게 ‘사인을 훔치는 문서를 만들었다’는 보고를 할 리가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전력분석팀이 과욕을 부려 독단적으로 했다는 것 또한 덕아웃 생리를 아는 이라면 상상할 수 없다고 증언한다. “해당 코치들도 모르게 그런 문서를 만들고, 선수단에 공지할 순 없다”는 얘기다. 프런트가 사전에 알았을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


● 의혹 3 : 정말 도루 시도 때만 훔쳤을까?

규정 26조 1항은 주자의 도루 시도를 위한 사인 훔치기에 관한 내용이 없다. 즉 LG는 도의적 비판은 받을지언정, 규정을 위반하진 않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상당수 야구인은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놓지 않는다. LG는 “주자가 1루에 있을 때, 2루에 있을 때 사인이 바뀐다”고 타자를 돕기 위한 훔치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장 야구인은 “프로라면 그 정도 패턴 변화는 금방 파악한다. LG가 타자를 돕기 위한 용도로 문서를 만든 뒤, 발각되자 징계를 피할 수 있는 해명을 하는 것 아닌가”라고 의심한다.

LG의 사과문에는 재발방지가 담겨있다. 그러나 사태의 전모에 관한 고백은 빠져있다. 의혹이 남는 한, 진정성은 스며들지 못한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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