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조리‘펑고’척척“음메기살어”

입력 2008-04-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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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희기자‘야신’김성근에한수배우다
전날 회식의 후유증. 이불 속에서 10분이라도 더 꼼지락거리고 싶었다. “일단 보험부터 들고 와.” 비몽사몽간에 떠오른 김성근(66·SK 와이번스) 감독의 으름장에 자리를 털었다. 3월 12일 오전 9시 30분. 오후 1시 LG 트윈스와의 시범 경기를 앞둔 김 감독은 이미 문학구장을 지키고 있었다. “술 냄새…. 선수로서 자세가 안돼 있어.” 처음부터 혼이 났다. “야구를 해 본적은 있나?”“네. 대학 때 동네야구 좀…. 잘하면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시고 맘에 들지 않으시면 한대 때려주십시오.” 또렷한 정신은 아니었지만 자신 있었다. 1987년 빙그레 이강돈이 사이클링히트를 쳐냈던 그 날도 “술기운에 공이 수박 만하게 보였다”고 하지 않았나. 대학 시절 야구 동아리에서 입던 유니폼을 꺼냈다. 5년 만에 입어본 바지는 작았다. 더스티 베이커(59·신시네티 레즈) 감독이 “나이든 타자들이 배트를 시원스럽게 돌리지 못하는 것은 허리통이 굵어진 탓”이라고 했지만 무시하고 싶었다. ○“보험 들고 와!” 김 감독이 하사한 벨트와 야구화를 착용하고 그라운드에 나서자 박정권(27)과 정근우(26)의 수군거림이 귓전을 스친다. “누구죠? 개그맨 아닌가?” 서운할 짬도 없다. “빨리 빨리 와.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지.” 이광권(48) 코치의 불호령에 외야로 달려 나갔다. 스트레칭. 몸이 돌아가지 않는다. 몸풀기 달리기. 20m 거리를 몇 번 오가니 숨이 차다. “체험 하러 왔다며? 이건 아무 것도 아니야. 공을 한 번 맞아봐. 그게 진짜 체험이지.” 몸으로 때우는 거라면 자신 있었다. 그래, 한 번 맞고 그 느낌을 써보는 것도 괜찮겠다. 아차, 그런데 내가 보험은 들어둔 게 있었나? ○“일단 맞히기나 해” 첫 번째 훈련은 번트. 김 감독이 배트를 골라줬다. 타석에 서려는 순간 다시 부름을 받았다. 헬멧을 빠트렸다. 피칭 머신에서 공이 나온다. 큰일 날 뻔했다. 너무 붙어 있었다. 점점 더 빨라지는 미사일이다. 헬멧을 챙겨주어 감사하다. 또 나온다. 또 못 맞혔다. 공이 멀어 보인다.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한 발을 뺐나보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타임을 부르고 싶은데…. “휙.” 삼진이다. 5개만 더 하기로 했다. “훌륭한 타자는 범타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했다. 공을 두려워하지 말자. 홈플레이트 쪽으로 한 발 더 밀어 넣었다. 손목이 ‘징’ 울렸다. 해냈구나. 하지만 투수 플라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해 볼까. 배트를 약간 뒤로 빼면서 타구의 힘을 죽이려고 했다. 배트를 빼는 순간 연거푸 공이 지나간다. 마지막 1개가 남았는데 김 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짓을 한다. “도저히 안 되겠어.” 7개 중 단 2개를 맞혔다. 그나마 1개는 파울. 김 감독과 나란히 섰다. 서로 아무 말도 없었다. 딱 연인으로부터 버림받기 직전, 침묵의 시간이다. 겸연쩍어 먼저 말을 꺼냈다. “감독님, 번트 타구에 힘을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가 차다는 표정이다. “허 참, 일단 맞히기나 해.” ○ “넌 비밀 병기야” ‘난 이제 방출인가’하는 생각을 할 때쯤 SK 프런트가 포수 장비를 챙겨왔다. 마스크와 프로텍터, 레그가드를 착용하자 김 감독이 직접 공을 던져준다. 왼쪽, 오른쪽으로 크게 벗어나는 공이다. 이러다가 예정된 시간도 채우기 전에 선수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몸을 던졌다. 때마침 문학구장에 도착한 LG 코칭스태프의 시선이 이 쪽으로 쏠린다. “선수 테스트하는 줄 아나? SK가 비밀병기라도 숨겨두고 있나 싶어서 그러나봐.” 김성근 감독의 농담이 진담처럼 들렸다. 유니폼에는 풀물이 들어가고 있었다. 여전히 겨울 기운을 머금고 있는 인천의 바닷바람도 구슬땀을 식혀주지는 못했다. ○“공은 잘 잡네” 마지막 과제는 펑고. ‘야구의 신’은 ‘펑고의 신’이기도 하다. 잡을 수 있을 듯, 없을 듯 한 공으로 야수들의 약을 올린다. 배운 대로 최대한 낮은 자세로 몸 앞에서 공을 받으려고 애썼다. 몇몇 어려운 타구를 빼고는 잡아냈다. 불규칙 바운드된 공을 몸으로 막아내기도 했다. “공은 잘 잡네.” 그런데 이상하다. 왜 공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을까. 잠시 뒤 SK 내야수들에게 펑고를 쳐주는 김 감독의 모습을 보고 의문이 풀렸다. 아까 쳐주었던 펑고의 속도는 절반 수준도 안됐다. 마무리 만큼은 제자의 기를 살려준다. ○ “야구는 항상 똑같지가 않아” 번트에 대한 궁금증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 기회다 싶어 집요하게 묻자 김 감독은 배트 끝에서 15cm가량 떨어진 지점을 가리켰다. “타자는 이곳에 공을 맞혀야 하고 투수는 이곳에 공을 안 맞게 해야 되거든. 그런데 타자가 유일하게 그 윗부분으로 공을 맞혀야 하는 순간이 있어. 언제겠어? 바로 보내기번트를 댈 때야. 야구는 항상 똑같지가 않아.” 홀린 듯 멍하니 서 있자 김 감독은 머리를 살짝 때렸다. “잘못하면 때려달라며. 내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기자 한 번 때려봐. 수고했어.” 공손히 인사하고 나오는 길, 스승은 웃었다. 제자는 야구의 심오함을 되뇌었다. 문학=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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