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트&액세서리]사이즈‘딱’맞아야기능도‘딱딱’

입력 2008-04-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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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의식한다는 것은 결국 불편한 것이다. 시험 시간 중 선생님이 내 책상 옆에 서 있기라도 하면 ‘미국의 수도는 어디인가’ 따위의 문제에도 답이 생각나질 않곤 했다. 데이트 장소에 옛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이 감지되면 주스 컵을 쏟는다거나 하는 행동은 예사였다. “너, 왜 다리를 그렇게 떠냐?” 마주 앉은 친구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다리를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리를 떨고 있었던 게 아니라 구두의 뒤꿈치를 의자 다리에 탁탁하고 부딪치고 있었던 것이다.그 부딪침은 구두가 먼저 닿고 그 다음 내 발이 구두에 닿는 동작이었다. 분명히 적당히 맞는 구두를 샀었는데 구두 안에서 발이 ‘놀’ 정도로 커지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청담동의 한 구두 전문점을 찾았다. 구두를 벗어보라는 풍채 좋은 매니저의 말에 나는 약간 주저했다. 최대한 발을 뒤꿈치 쪽으로 밀어 딱 맞는 신발을 신고 온 척 했다.신발을 벗겨 안과 밖의 여기저기를 세심하게 살펴본 매니저는 “처음에 편하다고 헐렁한 구두를 고르게 되면 발과 함께 움직여 주지 않아 결국 피로감만 증폭시키죠. 가장 좋은 구두는 새로 산 양말처럼 딱 맞는거에요. 성산대교 아시죠? 성산대교처럼 발의 아치 부분을 아래에서 받쳐줘 편한 느낌을 주는 구두가 좋은 구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골라준 카라멜 컬러의 구두 ‘벨루티’는 정확히 내 발에 꽉 들어맞는 듯했다. 보통 신던 사이즈보다 한 사이즈 정도 작은 신발 때문에 거울 속의 나는 발이 더욱 작게 보이는 듯 했지만 오히려 비례가 잘 맞고 바지선도 깨끗하게 마무리되는 것이 전체적으로 훨씬 더 조화로워 보였다. 현재까지 기분 좋게 신고 있는 그 구두는 처음엔 다소 빡빡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마치 군대에서 군화를 처음 받았을 때처럼 너무 꽉 조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지만 돌 바닥도 걸어보고 비도 맞아 보고 하면서 서서히 나에게 맞춰오는 느낌이 들더니 얼마 후에는 완전히 궁합이 맞게 되어 지금은 오래 서있거나 걸어도 발이 퍼지는 느낌이 들지 않고 헐떡거림에 신경 쓰이게도 하지 않는다. 물론 더 이상 의자에서 뒤꿈치로 탁탁 소리를 내지도 않게 한다. ‘잘 맞는다’ ‘편안하게 맞는다’는 말이 남자의 구두에 관해 설명되어질 때에는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 같다. 처음 느낌이 발의 어느 부분도 닿지 않고, 어느 부분에도 긴장을 주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손으로 꽉 쥔 것 같은 적당한 긴장이 있지만 내 발 모양에 맞춰 충분히 변화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진 신발을 만났을 때의 느낌이 바로 잘 맞는다, 혹은 편안하게 맞는다로 얘기될 수 있다. 한승호 더페이스샵 브랜드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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