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아‘푸드온스크린’]‘라따뚜이’프랑스판된장찌개?

입력 2008-04-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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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아뮤즈 부쉬인 라따뚜이입니다.” ‘오뜨 퀴진’이라는 이름을 단 서울의 한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부드러운 거품이 올라와 있는 작은 야채 요리를 내며 웨이터가 한 말이다. 아뮤즈 부쉬는 ‘입술의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애피타이저 전에 그 날의 가장 신선한 재료를 써서 마련하는 주방장의 맛보기 음식을 말한다. 한식으로 치면 반찬이 나오면서 시키지도 않은 부추전이나 도토리묵 정도가 나오는 순서다. 아무리 정통 프랑스 식당이라지만 불어를 그대로 쓰는 걸 야단치는 어르신 손님은 없었을까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사랑의 레시피’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영화 ‘No Reservations’에서 캐서린 제타존스가 아침 일찍 시장에 나가 좋은 재료로 준비하는 스쳐가는 장면에서 잠깐 언급됐고, ‘프렌즈’에서 모니카가 요리사 면접을 위해 연어 무스로 만들던 아뮤즈 부쉬. 우리 나라에서는 대체로 ’주방장의 환영 음식입니다’라고 의역되어 식당에서 통용된다. 그런데 이날 웨이터가 내놓은 ‘라따뚜이’(Ratatouille)는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에서 즐겨먹는 전통적인 야채 스튜를 뜻한다. 지난 해 개봉해 화제를 모은 픽사의 애니메이션 ‘라따뚜이’가 장래 희망이 요리사인 꼬마들을 대거 양산할 정도로 인기를 모으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음식 이름이 한국에서 자연스레 통용될 수 있었을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의 힘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저 각종 야채를 마늘과 허브와 섞어 올리브 기름에 볶아 만든 프랑스의 평범한 시골 음식이 갑자기 굉장한 일품 요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라따뚜이는 정말 야채볶음, 혹은 야채찜일 뿐이다. 주방장은 부드러운 거품과 수란처럼 익힌 달걀을 함께 내었지만 입은 야채 볶음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물론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에서 이 단순한 맛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단순해서 오히려 잘 만들기 어려운 음식의 일종처럼 느껴졌다. 된장찌개는 많아도 자신들의 엄마가 끓여준 것과 같은 맛을 지닌 된장찌개는 찾기 어려운 것과 같았다. 때로는 우리 말로 도저히 바꿔 말할 수 없는 외국 말들이 있다. 발음도 어려운 아뮤즈 부쉬는 주방장이 선사하는 오늘의 환영음식으로 쓸 수도 있고 라따뚜이는 야채찜으로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단어 하나로 한 영화의 심오한 주제까지, 어느 드라마의 키득거리는 에피소드까지 떠오른다면 ”외국어지만 괜찮아”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야채찜 근처의 메뉴도 없는, 돈까스와 정식을 내는 양식당의 상호가 ‘라따뚜이’를 단 것이나 아뮤즈 부쉬 값을 따로 정산하는 프렌치 레스토랑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음식과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자칭‘호기심 대마왕’. 최근까지 잡지 ‘GQ’ ‘W’의 피처 디렉터로 활약하는 등, 12년째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전방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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