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아카시아향따라간내동생꼭지

입력 2008-05-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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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도 언제나 그랬듯이 산행을 나섰습니다. 저희 집은 구미에 유명한 금오산 아랫마을에 있어서, 저는 매일 아침 좋은 공기를 마시러 금오산에 오르곤 합니다. 얼마 전 작은 산길에 아카시아 향이 가득한 걸 보고, ‘아 5월이 왔네’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5월∼ 아카시아 향이 진해지는 5월이 되면 저는 제 여동생 ‘꼭지’를 생각하곤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엄마는 제일 위에 아들 하나를 낳으시고 내리 딸을 셋이나 낳아서 할머니에게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할머니의 구박을 감당하지 못 해 시름시름 몸이 편찮으실 때였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제 여동생 꼭지가 엄마의 뱃속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네 번째 딸이었기 때문에, 꼭지는 태어날 당시에 그 누구의 축하도 받지 못 했습니다. 따뜻한 사랑도 느껴보지 못 했어요. 그게 서러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엄마가 몸이 아플 때 가진 아기라 그랬는지 꼭지가 3살이 되었을 때 알 수 없는 병으로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아버지가 초상집을 잘못 다녀와서 부정을 탄 것이라고 얘길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그 부정을 씻기 위해 붉은 팥고물 입힌 시루떡을 부뚜막에 올려놓고 조앙신을 찾으며 기도를 하셨습니다. 요즘 같았으면 바로 병원을 갔을 텐데, 무지했던 그 시골 사람들은 제대로 된 병명도 모르고 원인도 몰랐습니다. 그저 심하게 앓고 있는 꼭지를 어쩌지 못 해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조앙신을 찾고, 하늘과 땅을 향해 빌고, 그래도 효과가 없자 할머니는 당산 무당을 불러서 큰굿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어릴 때이지만 저도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대나무를 흔들면서 무당이 덩실덩실 춤을 췄고, 잠시 후 커다란 칼을 엄마 어깨 위에 올려놓고 뭐라 뭐라 주문처럼 중얼거리던 모습. 저는 우리 엄마가 저러다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했습니다. 옆집 명희 엄마 치마를 꼭 잡고 울기만 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할머니가 정성을 쏟고 엄마도 기도를 드렸지만 꼭지는 차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엄마는 할머니 눈을 피해 몰래 꼭지를 들쳐 엎고 읍내 병원으로 내리 달리셨다고 합니다. 오리가 넘는 황톳길을 걸어서… 달려서… 그렇게 병원을 다녔지만, 꼭지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40년 전 5월,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꼭지가 떠나던 날, 할머니가 안방에 앉아 계시고 엄마 아버지는 작은 방에 계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자꾸 누워있는 꼭지를 흔들어 깨웠던 일도 기억납니다. 그 때 엄마는 꼭지가 더 많이 아프다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저를 할머니 계시는 큰방으로 데려가셨고, 그때 할머니는 아버지를 붙잡고, 자신이 며느리를 구박해서 이런 불상사가 났다고 했습니다. 죄 많은 시에미라고 눈물도 보이셨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어린 딸이 마지막 입고 갈 옷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하셨고, 하얀 옥양목 바지저고리에, 하얀 버선까지 신기고, 잠자듯 누워있는 꼭지에게 입히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광목으로 싸서 아버지 지게에 얹으셨고, 그 위에 가마니를 덮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앞장서고, 엄마는 그 뒤를 괭이자루 하나 들고 따라 나서면서, 두 분은 그렇게 마을 뒷산 공동묘지에 묘비도 없는 작은 무덤을 만들고 내려오셨습니다. 내려오실 때 두 분 모두 평생 가슴에서 내려놓지 못 할 무거운 바윗덩어리를 하나씩 품고 내려오셨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엄마는 그 뒤로 자식을 둘이나 더 낳으셨고, 지금 저희 형제들은 육남매가 살고 있습니다. 엄마는 저희 육남매가 웃고 떠들고 있을 때마다 한번도 환하게 따라 웃지 못하셨습니다. 항상 먼저 세상 뜬 꼭지 얘기를 꺼내셨습니다. 그리고 머잖아 만나게 될 거라며 거친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셨습니다. 어렴풋하지만 저도 세 살 배기 제 동생 꼭지를 기억합니다. 몰랑몰랑했던 그 발바닥도 생각나고, 제 등에 업혀서 혀 짧은 소리로 ‘언니∼’ 하고 부르던 목소리도 생각나고… 유난히 머리가 까매서 햇빛에 반짝거리며 윤이 났던 기억도 납니다. 저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꼭지가 하늘 어딘가에서 저희 가족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5월만 되면, 이 언니의 가슴을 이렇게 헤집고 다니는 거겠지요. 경북 구미|서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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