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아의푸드온스크린]차마침을뱉지는못하지만…같은효과

입력 2008-05-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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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카페에서 ‘여름이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 드는 모습이 눈 앞에 펼쳐졌다. 마주 앉은 두 여자가 번갈아 자기 앞에 있던 물잔을 상대의 얼굴에 뿌렸다. 자연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는 말처럼 두 여자의 난데없는 돌출행동은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그녀들은 궁금해하는 시선에 아랑곳 않고 얼음이 든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생크림이 엉킨 아이스 카푸치노로 추측되는 음료를 경쟁적으로 상대방에게 세례했다. 멀쩡하게 생긴 두 여자의 몰골은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레이저 광선을 쏘듯하는 눈빛은 당연한 수순. 이후 각자 상대에게 소리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리를 떠났다. 그 때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에 카페 안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드라마 찍으시네!” 드라마의 갈등 장면, 특히 불륜녀와 그 대상의 부인이 대면하는 장면의 90는 얼굴에 물 뿌리기로 절정을 맞는다. 차나 물을 마실 수 있는 모든 장소에서 만난 갈등의 당사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감정 상태를 컵에 든 물을 끼얹는 것으로 표현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드라마 ‘온에어’에서 오승아는 채리의 얼굴에 물, 커피 등을 다양하게 공급했고, ‘그래도 좋아’의 김지호에게는 고은미가, 고은미에게는 정애리가 물컵에 스냅을 줘 머리부터 가슴까지 흠뻑 젖게 하는 신공을 내보였다. 오죽하면 일본 한류 팬들이 ‘한국 드라마 이런 장면 꼭 있다’의 상위 순위에 "화 나면 상대의 얼굴에 물을 뿌린다"가 있을까! 화가 나는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나타낼 때, 왜 물을 사용하는 걸까? 있는 힘껏 뺨을 후려쳐도 되고, 아니면 핸드백으로 머리를 갈기면 더 시원할텐데. 그것도 아니면 테이블 위에 찻잔 등속들을 상대에게 모두 밀어붙이면 옷도 망가지고 그럴텐데…. 그런데 결론은 이럴 수는 없기에 물컵을 사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품위는 지키면서 상대에게 치욕감을 주고 자신이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 물을 끼얹는 것만큼 효과적인 행동은 없다. 한 상담 전문가는 '냉수 먹고 속 차리라'는 말을 할 때와 같은 심정이라고 표현했다. 또 한 심리학자는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똑같고, 상대가 내 얼굴에 침을 뱉은 것과 똑같은 심리 상태라고 조언했다. 또한 내 힘을 쓰거나, 내 손으로 상대를 만지는 것 조차 싫을 정도로 경멸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는 행동이라고 했다. 물론 대개 화는 나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물잔을 드는 게 보통이다. 침을 뱉어주고 싶다거나, 정신을 들게 하려 한다거나, 사후 처리가 신경쓰여 고민 끝에 물을 뿌리지는 않는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저렇게 젖은 채로 어딘가 가야할 텐데 참 치욕적이겠다’, ‘물을 뿌리고 나가는 사람은 계산도 하지 않던데, 그러면 젖은 채로 계산도 해야 하나?’ 여러 상황에서 참 창피하겠다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론 너무 전형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모두 다 같이 화가 나면 그렇게 한다는 것, 그것도 좀 웃기지 않나? 조 경 아 음식과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자칭‘호기심 대마왕’. 최근까지 잡지 ‘GQ’ ‘W’의 피처 디렉터로 활약하는 등, 12년째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전방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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