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은 그곳에서 밥을 먹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의 양태를 보여주는 척도다. 식탁은 가족이 모여 일상을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는 자리인 동시에 가장 많은 정보를 무리 없이 교환하고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한국 드라마에서는 유독 식사하는 장면이 많다. 한 때 대한민국 일일극에서 식사 하는 장면을 빼고 나면 식사 준비하는 장면, 식사 치우는 장면이 전부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에 대해 한 드라마 작가는 “인간의 삶 자체가 먹으려고 살고, 먹으면서 사는 것, 드라마는 그것을 보여줄 뿐인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라는 항변했다. 식사를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 아닌 드라마의 핵심 장면으로 보여주는 작가는 김수현이다. 그녀의 드라마에서 식사 장면은 단지 사건 전개의 구성이 아니라 생활상, 사회상, 주인공의 가치관까지 단박에 드러낸다. 살갑지 않은 말로 평생 아들을 구박만 했던 '사랑과 야망'의 강한 어머니는 남자와 여자의 겸상을 허하지 않았고, 당신이 아들 상과 함께 먹을 때 밥 그릇을 내려 놓고 먹었다. 대기업 회장 며느리로 들어가 시아버지와 남편만이 밥 먹는 내내 그림자처럼 서 있던 '불꽃'의 며느리, 박지현으로 분한 이영애는 "밥그릇 뺏어갈가 봐 아침 저녁으로 보초 서야 하잖아요"라고 일갈하며 서 있는다. 최근 방영 중인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김수현이 좋아하는 3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 마루에 앉은뱅이 식탁을 차려 놓고 모두 빙 둘러 앉아 세 끼를 먹는다. 놀라웠던 것은 리얼리티를 위해 카메라 전면에 배우의 등이 보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 막내 딸 영미는 대사가 있는데도 할아버지의 맞은편, 메라를 등지고 앉아 밥을 먹는다. 영미역을 맡은 이유리는 밥 먹는 연기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 편했을까? 아니면 모두가 기다리는 장면에 등만 나와서 불만이었을까? 현실 위에 구축된 가상이라면서 식사 때 모두 카메라를 향해 나란히 일렬로 앉아 숟가락을 뜨고, 원형 테이블은 아예 나오지도 않던 드라마의 식사 공간은 '엄마가 뿔났다'의 모습 이후 이후 작정한 연극 세트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저에서 쓰던 원형 식탁을 들고 청와대로 갔다고 한다. 상하 없는 좌석배치를 위해 원형 식탁을 쓰기로 했다는 것. 사실 원형 식탁에 상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그 자리에 계속 앉는다면 그 자리는 상석이 된다. 아버지가 계속 앉는 자리, 그곳이 상석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리, 그 존재감으로 생각된다면 사실, 네모인가 동그라미인가는 상관없을 것 같기도 하다. 상하 없는 분위기는 식탁의 좌석배치가 아니라 집안의 분위기가 만드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