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사부모님미소에저도웃어요

입력 2008-06-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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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서 직장 다닌 지 어느덧 11년입니다. 공휴일이나 주말이면 더더욱 바쁘고, 가족과 함께 있어주지 못해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남편은 그런 제 마음을 참 잘 알아줍니다. 남편은 수시로 애들 데리고 집안 청소도 하고, 설거지통에 손도 담그며 “이 다음에 남자도 여자 일 다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배워둬” 이러면서 자기가 먼저 앞장서서 집안 정리를 했습니다. 같이 나이 먹어 가면서 요즘 몰라보게 남편이 달라져서 저도 참 기분이 좋습니다. 얼마 전 남편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그랬습니다. “오늘 시간 되면 국물 있게 열무김치 좀 담그면 어때?” 그래서 제가 먹고 싶은지 물었더니, “아니∼ 내가 아니라 어제 아버지께서 갑자기 열무김치 먹고 싶다고 전화를 하셨어. 며느리한테 직접 말씀하기 미안해서 그러신 것 같은데… 내일 당신 쉬는 날이니까 우리 좀 담그고 가져갈까” 물어봤습니다. 쉬는 날 아무 구애받지 않고 원 없이 잠 좀 자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내게는 사치인가 싶었습니다. 맛있어 보이는 열무 열 단 사고, 싱싱한 오징어 몇 마리 사서, 국물 자작하게 열무김치 담그고, 오징어 다져 동그랑땡을 만들었습니다. 안양 시댁에 도착했을 때, 아버님께서 저희 오기만을 대문 밖에서 왔다 갔다 하며 기다리시고 계셨습니다. 저희를 발견하고는 한숨에 달려오셨습니다. 아버님은 “뭐 그리 많이 들고 오냐”며 들고 있던 저희 보따리를 직접 받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저희보다 한발 앞서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방에는 몇 년 전에 관절 수술 받으시고, 몇 해 자리에 누워 계시는 어머님이 계셨습니다. 저희를 보시자마자 얼굴을 환하게 바꾸시며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저는 얼른 어머님 목욕부터 시켜드리고 새 옷을 갈아 입혀드렸는데, 제게 미안하셨는지 제 손을 따뜻하게 감싸주셨습니다. 저는 시장하실까봐 얼른 아버님께 큰 그릇에 갓 담아온 열무김치를 내어 드렸습니다. 어머님께는 고추장 크게 한 숟가락,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열무김치랑 같이 쓱쓱 비벼 한 입 넣어드렸습니다. “참말로 맛있네. 역시 우리 집 큰며느리가 최고여. 당신도 내 생각하고 같재?” 하시며 어머니가 저를 옆에 두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저는 원 없이 잠도 자고 못 만난 친구도 만나 수다도 떨고,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소풍도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 찾아뵙길 참 잘했다 생각을 했습니다. 1년 전 제가 감기 몸살 때문에 직장도 못나가고 며칠 끙끙 앓고 있을 때, 제가 동서들한테 전화해서 “시부모님 잘 드시는 밑반찬 몇가지 해서 이번에 좀 다녀오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형님! 저 바빠서 못 갈 것 같아요 저도 요즘 따라 이상하게 바쁘네요” 하기도 하고, “형님 저 음식 잘 못해요. 음식은 형님께서 하셔야 아버님 어머님 좋아하시죠” 하며 참 얄밉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때, 맏며느리란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걸 떠맡고 살아가야 하는 게 참 원망스러웠습니다. 그 때는 그냥 나 하나 참고 살면 집안이 조용해진다고 꾹꾹 눌러 참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더 잘해드리지 못 해 송구스럽습니다. 또 모시고 살지 못 해 죄송하고 그렇습니다. 솔직히 쉬는 날 마음 편하게 내 시간 가져본 적 없고, 잠 한번 실컷 자 본적 없습니다. 저도 많이 지치고 힘듭니다. 하지만 저를 많이 아껴주시는 시부모님 보면서 저는 다시 한 번 힘을 얻습니다. 다음 쉬는 날에는 아버님 어머님 좋아하시는 오이소박이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아버님 어머님 맛있다고 드시면서 웃으시는 모습, 벌써부터 제 눈에 선합니다. 저 한 몸 조금 희생하면 온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그 생각하며 저는 또 힘을 냅니다. 경기 고양|권기영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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