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Black&White]상금제도입,개혁의신호탄?

입력 2008-06-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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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기원 소속 200여 명의 프로기사들은 ‘바둑발전위원회’ 발신으로 된 한 통의 서신을 받았습니다. 바둑발전위원회는 바둑계의 현안과 문제점, 개선·발전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취지로 지난해 6월부터 매달 한 차례씩 회의를 갖고 있는 순수 모임이지요. 한국기원 한상열 사무총장, 조대현 프로기사회장, 정수현 교수(명지대 바둑학과), 유창혁 한국기원 상임이사를 비롯해 언론, 학계, 업계 등 다양한 ‘바둑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신의 제목은 ‘기사 여러분에게 드리는 상금제 도입에 관한 제언’이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지금까지 프로기사가 대회에 나가 바둑을 두면 자동적으로 전원에게 지급하던 대국료를 없애고 대신 일정 순위 안에 든 사람들에게만 상금형식의 ‘돈’을 주겠다는 얘기입니다. 상금제는 사실 바둑이 아닌 다른 프로스포츠 종목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바둑계로서는‘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막상 ‘그래도 어떻게 …’가 가시처럼 걸려 목구멍을 막고 있던 문제였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는 결국 상금제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일부 프로기사들에 대한 고민이 되겠지요. 나이가 들어 기량은 줄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후배들에게 밀려 가뜩이나 설 자리가 마뜩찮은데 대국료마저 안 준다고 하니 중견기사들로선 볼멘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바둑발전위원회는 상금제 도입의 가장 큰 이유로 스폰서와 바둑팬의 강력한 시대적 요구를 들고 있습니다. 상금제는 나아가 ‘오픈제’와 연계되기에 외국의 프로들이 한국대회에 참가하는 일이 늘어날 경우 국내기전이 세계 메이저대회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 기대하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것은 ‘이대로는 바둑계가 안 된다’라는 위기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지요. 바둑발전회원회가 제도의 ‘피해자’들을 위해 제시한 대책은 연구수당 제도개혁, 기사복지기금 확대, 일자리 확대 등입니다. 매달 지급되는 연구수당을 연금화하고, 기전 예산을 올려 일정액을 프로기사들의 복지에 쓰겠다는 얘기입니다. 기원이나 회사 동호회, 문화센터 등을 통해 프로기사들에게 일거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같이 쉬운 얘기는 아닙니다. 특히 일자리 마련을 위해 한국기원이 전담부서라고 할 수 있는 보급팀을 신설했다는 얘기가 들려오지만 요즘 나라 경제사정을 비춰볼 때 앞날이 썩 순탄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둑계가 상금제에 대해 폭넓은 공론화를 결심했다는 점만큼은 팬들의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바둑계의 생존이, 팬들의 애정이 걸린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상금제에 대한 논의가 수십 년 간 개혁과는 담을 쌓고 살아 온 바둑계에 있어 새 바람의 신호탄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머지않아 팬들이 바둑판 앞에서 촛불을 들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요.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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