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의명물] 27년롯데팬이석우씨“롯데가‘가을야구’하면죽어도여한없소”

입력 2008-06-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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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직구장 1루 관중석 맨앞줄은 지정석 사직구장 1루쪽 관중석 맨 앞줄 한 귀퉁이에는 이석우(78·사진) 씨의 ‘지정석’이 있다. 혹시 다른 사람이 먼저 도착했더라도 이 씨가 나타나면 자리를 비워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같은 자리에서 롯데를 지켜보는 그는, 말하자면 사직구장의 일부분이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5일. 이 씨는 변함없이 양복을 차려입고 그 곳에 앉아있었다. 그는 올해로 27년째 롯데 팬이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금까지 롯데만을 바라봤다. 사직구장만 지키는 게 아니다. 기차를 타고 대구, 대전, 문학 원정까지 따라다닌다. 3남2녀를 함께 키운 아내가 진짜 인생의 동반자라면, 롯데는 ‘야구’라는 또 하나의 삶에서 그의 반려자 노릇을 했다. “롯데가 잘하니까 내가 세상사는 게 참 즐거워집디다.” 이 씨는 요즘 8년 만에 ‘행복’이 뭔지 다시 느끼고 있다. 롯데가 다 질 것 같던 경기에서 역전승이라도 하면 밥을 먹다 돌을 씹어도 기쁘게 삼킬 수 있을 정도다. 야구장에서 만난 젊은이들과도 막역한 사이가 됐다. 몇몇 청년들은 이제 그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 이대호·김주찬·강민호 내자식 같아 사실 롯데는 그의 ‘운명’이나 다름없다. “구도 부산이 내 고향 아닙니까.”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것. 그것이 그의 몸속에 롯데라는 유전자를 심었다. 이대호, 김주찬, 강민호 같은 선수들이 친자식처럼 느껴지고, 야구장 밖에서 에이스 손민한을 마주쳤을 때는 그저 손을 부여잡고 “건강한 몸으로 열심히 해 달라”는 말만 되뇌었단다. 이 씨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기자를 붙잡고 이렇게 물었다. “우리 롯데, 이번엔 진짜 가을에 야구할 것 같지요?” 대답 대신 “만약 그렇게 되면 기분이 어떠시겠어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말했다. “더 이상의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여한이.” 롯데의 ‘가을 야구’가 시작되는 날, 변함없이 그 자리에 앉아있겠다는 그의 눈가에 설핏 눈물이 맺혔다. 사직=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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